구조조정 돌입한 현대重, 협상 난항에 악화 일로

 

▲ 현대중공업(사장 권오갑·사진)이 일반직 노조의 설립으로 창사 이래 처음 복수노조 체제를 갖추게 됐다. 사진 / 홍금표 기자

지난해 창사 이래 최악의 적자를 기록한 현대중공업이 새해 두 번째 달을 앞두고도 2014년 임단협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사무직 직원들의 노조 결성으로 궁지에 몰리고 있다.

현대중공업 일반직지회(지회장 우남용)는 28일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노조창립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중공업이 정리해고를 철회할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남용 지회장은 “회사가 부실경영의 책임을 일반직 노동자에게 떠넘기며 구조조정의 칼날을 겨누고 있다”며 “희망퇴직 철회와 성과연봉제 폐기 투쟁에 금속노조와 힘을 모아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현대중공업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복수 노조 체제를 갖추게 됐다. 또한 지난 1987년 처음으로 생산직 노조가 결성된 현대중공업은 처음으로 사무직 노조를 갖게 됐다.

◆희망퇴직·연봉제에 반발 거세
현대중공업 일반직 노조는 최근 사측이 희망퇴직을 실시하면서 설립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지난 5일 권오갑 사장은 신년사 자리에서 현대중공업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겠다며 비상경영체제를 발표하고 회사는 본격적으로 구조조정계획에 돌입했다.

특히 현대중공업 측은 조직슬림화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사무직 중 과장급 이상 직원을 희망퇴직 대상자로 선정, 전체 과장급 6000여명 중 1500여명 규모로 희망퇴직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현대중공업의 전체 직원인 2만8000여명 중 5.3%에 해당하며 현대중공업의 희망퇴직은 첫 사례였던 2012년 10월 이후 창사 이래 두 번째다.

사측은 “희망자로 한정해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고 밝혔지만 대상 직원들은 “사실상 정리해고 수준”이라며 반발했다. 전 부서에 고르게 걸쳐 발생한 희망 퇴직 대상자들의 규모가 큰 탓도 있지만 ‘인력구조 개선 추진 일정’ 이라는 제목의 구조조정 계획 문건이 <CBS노컷뉴스>를 통해 알려지면서 과장급 이상 직원들의 여론이 크게 악화됐다.

21일 <CBS노컷뉴스>가 보도한 문건의 내용에 따르면 “1차 면담 이후 퇴직 불응자에게는 이달 26일부터 직무경고장을 발부하거나 인사위원회 회부 조치를 내리고, 2차 면담 이후에도 퇴직에 불응하는 직원은 고정적으로 실시하는 연장근로를 하지 못하도록 조치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최종 불응한 직원에게는 근무성적 불량 등의 이유를 들어 인사대기 조치를 내리고 이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퇴직을 권유할 것을. 5월 1일부터는 퇴직 불응자들을 전환 배치하거나 안식년·월 휴가를 보내도록 하라“는 지시조항이 덧붙여져 있다. 문건 내용이 알려지자 사실상 희망퇴직이 아닌 강제퇴직이 아니냐는 인식이 확산되며 과장급 이상 사무직 직원들을 중심으로 분노가 확산된 것이다.

희망퇴직 대상자인 한 과장급 직원은 “이 문건이 회사에 의해 작성됐다면 사측이 희망퇴직을 빙자한 정리해고를 실시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20~30년 동안 근무한 직원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행태에 많은 직원들이 분노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 현대중공업은 아직 기존 생산직 노조와의 협상도 마무리짓지 못한 상황에서 또 하나의 악재와 마주치게 됐다. ⓒ뉴시스

이보다 앞선 지난 17일에는 <아시아투데이>가 다른 내부 문건을 보도하기도 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성과등급에서 C·D등급을 받은 저성과자 및 직무경고자의 퇴직방침을 알리고 각 부서별로 한 자릿수 단위까지 명시된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2012년 첫 희망퇴직 당시 사측의 목표였던 2000명에 턱없이 못 미치는 100명만 신청했던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이번에 목표 달성을 위해 강경책을 펴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의견을 내놨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는 중에 근거 없는 문건이 돌고 있다”며 “회사에 불만을 갖고 있는 희망퇴직 대상자가 허위문건을 퍼트린 것으로 보인다”고 공식성을 부인했지만, 면담을 마친 과장급 직원들은 문건 내용이 자신들이 들은 내용과 비슷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상태다.

희망퇴직이 노조 설립의 큰 계기가 되긴 했지만 앞서 지난달 도입된 연봉제 역시 큰 불만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 역시 사무직 과장급 이상의 직원들이 대상이다.

<아시아투데이>에 따르면 기존의 호봉제와 달리 이번에 도입된 성과연봉제는 기본급 200만원 대비 800%에 해당하는 1600만원의 상여금 중 절반인 800만원을 업적금으로 전환해 성과 평가에 따라 차등분류하고 이를 근거로 연봉 및 퇴직금을 산정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성과평가에서 C·D등급을 받았다면 최저등급 가중치인 14.4%가 적용돼 상여금 절반인 800만원 중 28만원만 지급받게 된다.

여기에 현대중공업 측이 연봉제를 도입하면서 사무직 과장급 이상에 대해 최저등급 할당 비율을 늘리면서 최저등급을 받을 확률마저 높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내우외환’ 시달리는 현대중공업
이처럼 과장급 이상 사무직들의 반발이 커지자 사측과 임단협 협상을 벌이고 있는 기존의 생산직 노조가 발벗고 나섰다. 생산직 노조는 기본적으로 과장급 이상을 관리직으로 분류해 노조 가입을 허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사측과 치열한 협상을 벌이고 있는 현대중공업 노조 측은 지난 19일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무일반직 노조 설립이 가시화된다면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고 결국 26일 일반직 노조가 출범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일반직 노조는 생산직 노조와 서로 연대해 공동으로 교섭에 나서겠다고 밝힌 상태다.

가뜩이나 기존 생산직 노조와의 협상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현대중공업으로서는 부담이 더욱 커진 셈이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지난해 12월 31일 7개월여 만에 임단협 잠정 합의안을 마련하고 지난 7일 이를 찬반투표에 부쳤으나 조합원 1만6762명 중 1만390명(66.47%)의 반대로 부결돼 다시 협상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19년 연속 이어가던 무분규 기록이 깨지기도 했다.

현대중공업으로서는 당장 새 해를 맞아 지난해 창사 이래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던 것을 만회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노조 측과의 협상을 마무리 짓지도 못한 상황에서 일반직 노조까지 설립이 되면서 연초부터 삼중고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아울러 이번 일반직 노조 설립이 기존 생산직 노조의 협상에서 새 쟁점으로 거론되며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과 최근 노조 대의원선거에서 지난해 임단협 투쟁에 적극 나섰던 강성 기조의 조합원들이 대거 당선됐다는 점도 현대중공업 측으로서는 더욱 큰 걱정거리다.

이밖에 경영 악화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이재성 전 회장의 지난해 보수를 둘러싼 논란, 임원 감축의 칼바람 속에서 이뤄진 정몽준 전 의원의 장남 정기선 상무의 초고속 승진 논란, 해양·플랜트 부문의 통합을 두고 권오갑 사장과 최길선 총괄회장과의 갈등설 등 안팎에서 현대중공업을 흔들고 있는 이슈들도 여전하다.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적자만 3조원이 넘고 시총과 수주가 크게 감소하는 등 최악의 한 해를 보낸 현대중공업의 희망찬 새 해는 당분간 요원할 것으로 보인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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