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이용 후 뒤처리 미래 세대에 맡길 수 없다”

▲ 홍두승 위원장은 “세상에 완전한 것은 없다. 따라서 어떤 문제에 대한 최적의 합리적 해결책을 도출해내는 과정으로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가 사회 갈등을 풀 수 있는 하나의 사례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 시사포커스/홍금표 기자

지난해 4/16 세월호 참사가 터진 이후 안전 대책들이 쏟아져 나오자 또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냐는 짜증스런 반응이 나오고 얼마 안 있어 ‘소 잃고도 외양간 안 고친다’는 냉소까지 나왔다.

대형 사고나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어떤 사안에 대해 좀 더 신중하게 여러 뜻과 의견을 모아 합리적인 안을 도출하는 관행이 자리 잡혀 있었더라면 소중한 인명들이 속절없이 사라지거나 재산상의 손해를 입거나 하는 후유증을 피할 수 있었을 안타까운 사태가 되풀이되다 보니 이제는 정부 정책에 대해 불신의 파고가 높다. 이런 사태는 국민은 물론, 정책을 생산· 실행해야 하는 정부에게도 손해다. 시대적 과제로 비합리의 합리화가 요청된다.

우리는 이와 아울러 개인적인 삶의 영역에서도 소통이 불통에 가까운 시대를 살고 있다. 제3자의 시선에서 보면 자신 또는 자기 소속 집단만의 이해관계에 가려져 큰 그림은 보지 못하는 장님 아닌 장님처럼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소통이 이뤄지려면 타인의 의견을 경청해 그 뜻을 이해해야 하는 과정이 전제돼야 한다. 이 과정이 바로 공론화로서 어떤 공적인 일들을 실천하기 전에 이해 당사자들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듣는 절차다.

<시사포커스>는 지난 20일 오전 고려 대연각 빌딩 20층을 찾아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 홍두승 위원장을 만나 실로 폐쇄적인 이해관계가 복잡다기하게 얽혀 있는 한국 사회에서 공론화 과정이 갖는 일반적 의의에 관해 의견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방사성폐기물관리법 제6조의2항에 따라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에 관한 공론화를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추진토록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설치한 한시적 민간자문기구다.

다음은 홍두승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Q. 학창시절이나 청년 시절에 즐겨 읽었거나 특히 청소년들에게 권하고 싶은 종류의 책이 궁금하다.

A. 해외문물과 관련된 서적을 즐겨 읽었다. 젊은이들에게는 눈을 세계로 돌려 다른 나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우리와 다른 그들의 삶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을 많이 읽었으면 한다. 과거와 달리 나라와 나라를 구획하는 벽은 많이 허물어졌고 인적 교류도 활발해졌다. 이제 우리는 세계사회에서 힘겹게 경쟁해야 하는 형편이다. 해외 견문을 통해 얻은 지식과 안목은 우리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잘 인식하면 좋겠다.

여유가 생기면 외국 여행에 나섰다. 2004년 상반기 3주 동안 중미 시외버스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조그만 가방 하나와 고등학교 사회과부도에 의지해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서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등지를 돌아다녔다. 이들 나라들은 우리나라의 50~60년대를 연상시킨다. 그렇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외국 여행을 통해 모든 게 완벽한 곳은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 홍두승 위원장은 자신이 맡고 있는 자리와 의의에 대해 “속된 말로 잘 해야 본전이고 욕먹기 쉬운 자리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다. 사회학자로서 최선은 안 돼도 차선의 안이라도 도출할 수 있다면 나름대로 보람된 일이다”고 말했다. ⓒ 시사포커스/홍금표 기자

Q. 청소년기의 가장 큰 고민이 있었나? 있다면 그 시기는 어떻게 보내며 극복했는지?

A. 우리 세대에서도 상급학교 진학은 매우 중대한 일이긴 했지만, 지금처럼 아주 어린 나이부터 공부에만 몰입된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진학해서는 2학년 때까지 교회 합창 모임에 가입해 매주 연습하고 연말에는 발표회를 갖는 등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다. 그러면서도 대학 진학을 위한 학교 성적은 늘 걱정거리였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학교생활을 즐겼고, 3~4학년 때는 학업과 알오티시(ROTC) 훈련을 병행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학창 생활을 마음껏 즐기고 좋아하는 일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스런 일이었으나 젊은이들 특유의 장래에 대한 불안감은 늘 떨쳐버릴 수 없었다.

Q. 위원회 활동을 하면 각계각층의 사람을 만난다.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다. 어떻게 푸나?

A.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이 뜻대로 되나? 보통은 사람들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는 것을 좋아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을 때 술에 의존하는 것은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다. 스트레스의 원인으로부터 가능한 한 생각을 멀리하고자 다른 일에 몰입하곤 한다.

Q. 위원장을 맡고 있다. 어떤 게 좋은 리더십인가?

좋은 리더십은 조직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좋은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 리더 자신의 생각을 조직원들이 따르도록 주입하기보다는 조직원 스스로가 해답을 찾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모두 다 전문가가 되지 않겠나? 조직원 자신이 리더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고 이를 존중하는 것이 리더의 덕목이 아닐까 한다. 일방적인 지시만 내릴 경우 조직원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역량을 발휘하기보다는 리더의 눈치만 보는 일이 더 많아진다.

Q. ‘공론화’라는 말을 듣고 생각난 게 요즘 세계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극단주의’ 또는 ‘근본주의’ 문제다.

A. 1983년 대테러 협상 전문 위원으로 활동했다. 위원들은 외국어 사용 가능자, 중동 전문가, 사회학자, 폭발물 전문가 등이 참여했다. 근본주의를 이해하려면 1968년 파리 학생운동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시 운동은 중상류층의 대학생 지식인들이 주도했다. 반제국주의, 반미, 반재벌 구호가 넘쳐나던 시기였다. 여권 및 페니미즘, 인종차별 금지, 베트남 반전 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였다. 당시 ‘검은 구월단’, ‘바더-마인호프 그룹’, ‘붉은 여단’ 등의 활약은 이 시대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테러는 크게 세 종류로 나뉘는데 앞서 말한 테러 조직들은 이념적이었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나 모택동주의, 트로츠키주의 등에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7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들 이념적 테러조직들은 서서히 스러지다가 소멸했다.

종교·종족적 성격을 띠는 테러는 과거 북아일랜드의 IRA나 스페인의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수단이었다. 지금은 이들 나라들은 어느 정도 문제가 해결돼 조용하다. 현재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문제다. 일부 종교에서 광신적 경향을 띠는 사람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이들은 모든 현안문제를 앞에 두고 자신의 신념을 우선시 한다. 자신들의 이념에 맞는 목적이 정당하면 수단도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데 자신들의 신념만 내세우면 해결점을 찾기 위한 대화를 시작조차 할 수 없다.

▲ 오는 6월까지 운영 시한을 남겨 놓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 홍두승 위원장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그동안 사용후핵연료에 대해 설명하고 국민들의 이해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며 “앞으로는 원전 소재 지역민과 환경단체들의 의견을 더 적극적으로 취합, 구체적인 의제를 중심으로 의견을 종합적으로 집약해 (정부 당국에) 최종 권고안을 도출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사진=시사포커스/홍금표 기자

Q. ‘공론화’가 가정부터 사회의 온갖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사회 갈등을 풀어가는 방식으로까지 공론화의 방법론이 확대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 가능성과 현재 드러난 한계에 대해 듣고 싶다.

A. 비판과 비난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위치라서 처음부터 공론화 위원장의 일이 쉬울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특히 원자력발전과 관련된 정책을 둘러싸고 정부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은 것도 한 원인이라 본다. 속된 말로 잘 해야 본전이고 욕먹기 쉬운 자리지만 누군가는 맡아서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다. 사회학자로서 최선은 안 돼도 차선의 안이라도 도출해 낼 수 있다면 나름대로 보람된 일이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다수의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최적의 안을 찾아낼 수 있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여러 가지 갈등 문제는 공론화 과정을 통해 풀어나갈 수 있는 좋은 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용후핵연료 관리문제는 국내의 사회·경제적 여건, 환경문제, 국민수용성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핵 확산금지 문제와 관련된 국제정치적 요소 등 국내외 상황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안이다.

사용후핵연료 관리 현안은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가치판단과는 별개의 주제로 다뤄져야 한다. 사용후핵연료는 이미 나와 있고, 또 원자력발전소가 가동되는 한 앞으로 계속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같은 위험물질을 안전하게 보관, 처분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국민적 지혜를 모아 찾아보자는 것이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충분한 논의와 숙고를 통해 최선의 안을 도출하고 있다. 우리 위원회는 여러 의견에 대해 개방적이다. 위원회 참여를 원치 않는 단체의 의견과 주장에도 항상 귀 기울이려고 노력한다.

Q. ‘공론화’는 실타래처럼 각종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한국 사회에서 상당히 도전적인 문제 제기다. 보통 우리는 치부를 가리고 싶어 한다. 반면 공론화는 문제의 속까지 투명하게 드러내자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해 당사자들의 심리적인 반발이 예상된다.

A. 공론화위원회라는 형식으로 문제해결을 위해 접근하고자 한 것은 아마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공론화가 추구하는 것은 일부의 의견이 아닌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대상으로 가능한 여러 방안을 모아서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반대 의견과 지역 갈등도 표출되고 있고 일부 지역이나 단체에서는 공론화 과정에 참여하는 것조차 꺼리고 있다. 이러한 갈등들이 수많은 대화를 통해 숙성되고 녹아들면서 합리적인 방안이 나오리라 기대하고 있다.

청년들과 대화하는 가운데 원전 이용을 선택한 적이 없는데 왜 미래 세대가 책임져야 하는지 묻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주부 참여자는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폐건전지도 해당되냐고 묻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환경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국내 환경론자들의 공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 가운데도 온도차가 있어 온건파와 강경파 등이 있다. 반핵을 주장하는 이들 중에는 농산물이나 어패류가 당할 피해, 집값 하락 등 보상의 문제에 집착하는 이들도 있다. 이 모든 것이 공론화의 대상이 될 수 있다.

▲ 홍두승 위원장은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새해에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를 되새기며 모두가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우리나라와 국민 모두에게 좋은 일이 많이 펼쳐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 시사포커스/홍금표 기자

Q. 핵을 놓고 그 이용 자체를 반대하는 쪽과 필요성을 인정하는 쪽으로 진영이 갈려 있는 양상이다. 이런 평행선 같은 갈등이 공론화를 통해서 풀릴 수 있을까 회의적 시각도 있을 것 같다.

A. 원자력 에너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친핵, 반핵, 탈핵과 같은 쟁점을 떠나 우리가 안전하게 관리해야 할 사용후핵연료는 현재 원자력발전소 부지 내에 저장돼 있고, 시간차를 두고 저장용량이 포화상태로 다가가고 있다.

공론화위원회는 반핵, 친핵의 논리와 관계없이 우리 눈앞에 쌓여 있는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에 대한 국민의 이해도를 높이고, 의견을 수렴하는 활동을 진행해야 한다.

지금까지 위원회는 130여회의 회의와 토론회 등을 진행했다. 환경단체들도 사용후핵연료 관리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관리방안과 그에 선행되는 조건들이 때로 상충되고 있지만 좀 더 깊은 관심과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방안이 도출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공론화는 과정의 문제다. 소수가 반대할지라도 절차가 맞는다면 따라야 한다.

Q. 6개월 가량 남은 위원회 활동 기간 중 꼭 성취하고 싶은 과제랄까 프로젝트가 있나?

A. 그동안 위원회 활동에서 사용후핵연료에 대해 설명하고 국민들의 이해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면, 앞으로는 원전 소재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들의 의견을 좀 더 적극적으로 취합할 것이며, 구체적인 의제를 중심으로 의견을 종합적으로 집약해 최종 권고안을 도출해 내고자 한다.

원전 이용 혜택은 우리가 보고 뒤처리는 미래 세대에게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세대가 책임지고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기에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의견 개진을 부탁한다.

Q. 독자 여러분들에게 덕담 한 마디 부탁드린다.

A. 이 세상 어디에 쉬운 일이 있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본다. 새해에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를 되새기며 모두가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우리나라와 국민 모두에게 좋은 일이 많이 펼쳐질 것으로 생각한다.

/홍두승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장 주요 이력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부지선정위원 겸 여론조사소위원장('05)/대통령 직속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국망선진화추진위원회 위원('10)/통일부 한독통일자문위원회 회원('11~'13)/국가통계위원회 민간위원('13~현)/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80~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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