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銀 “파이시티 상품 피해자 보상한다…371억원 소요 예상”

▲ 프로젝트 ‘파이시티’의 채권단이 최근 부지 재매각 의사를 밝혀 새 주인의 등장 여부에 관심이 모아졌다. 사진 / 홍금표 기자

강남 노른자 땅으로 알려진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복합유통단지를 건립하는 프로젝트 ‘파이시티’의 채권단이 최근 부지 재매각 의사를 밝혀 새 주인의 등장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파이시티 사업은 2005년 추진 초기부터 총 사업비만 2조4000억원으로 예상되면서 부동산 투자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시공사와 시행사가 차례로 쓰러진데다 이명박 정부 시절 정권 실세가 개입한 인허가 로비사건까지 더해져 끝내 지난해 10월 파산 선고를 받고 ‘비운의 사업’으로 좌초되는 듯 했다.

하지만 최근 우리은행 등 채권단이 파이시티 프로젝트 사업의 부지였던 양재동 화물터미널 땅을 공개 매각하기로 결정하면서 다시 이목이 집중됐다. 해당 부지는 공시지가만 6000억원대에 육박하며 강남에서도 입지가 좋은 곳으로 손꼽힌다.

이와 관련해 매각 자문사 삼일회계법인은 “다음 달 초 매각 공고를 내고 오는 3월 경쟁입찰을 실시할 계획”이라며 “부지가 매각되면 어떤 식으로든 개발 사업이 다시 추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파이시티 프로젝트’ 왜 좌초 됐나
‘파이시티 프로젝트’의 당초 시행사였던 파이시티(옛 경부종합유통)는 원래 부지 소유주였던 진로그룹이 외환위기로 쓰러지자 경매에 나온 9만6000㎡ 규모의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를 2004년 1월 매입했다.

이어 파이시티는 이 부지에 백화점, 쇼핑몰, 오피스빌딩, 물류시설 등을 포함한 국내 최대 규모의 복합유통단지를 세우는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예상 사업비가 총 2조4000억원으로 추산됐지만 부지가 강남의 금싸라기 땅인 점이 고려돼 금융권에서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방식으로 파이시티에 1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융통해줬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이란 자금을 빌리는 사람의 신용도나 다른 담보 대신 사업계획, 즉 프로젝트의 수익성을 보고 자금을 제공하는 금융기법을 일컫는다.

하지만 초기 예상보다 인허가가 지연됐고,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닥치자 금융 비용이 겉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이에 시공사였던 성우종합건설이 2010년 4월, 대우차판매가 그해 6월 재무구조 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다. 파이시티도 계속된 자금난으로 인해 2011년 1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채권단은 다음해인 2012년 포스코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하고 사업을 재추진했지만 당시 정권 실세가 파이시티 인허가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나오면서 파이시티 프로젝트는 또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사업 인허가와 관련해 청탁을 받은 혐의로 이명박 정부 시절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이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지난해 10월 22일 서울중앙지법 제3판사부(재판장 윤준 수석부장판사)는 파이시티 사업의 시행사 (주)파이시티와 (주)파이랜드에 파산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현재 (주)파이시티 등의 부채총액이 자산총액을 현저히 초과하고 있고 갚을 시기가 다가온 채무를 변제할 수 없는 상황인 데다 건축 허가도 취소돼 개발사업을 추진할 수 없게 됐다”고 판시했다.

2005년부터 시작된 파이시티 사업은 사실상 어마어마한 수의 개인투자자를 양산했다. 2007년 8월 하나USB자산운용(옛 대한투자신탁운용)이 파이시티에 투자하는 펀드를 만들었고, 우리은행이 이와 관련된 특정금전신탁상품을 1459명에게 총 1900억원어치를 판매했다.

특정금전신탁은 고객이 특정기업의 주식이나 회사채, 파생상품 등에 투자해 자금을 운용해 달라고 맡기는 금융상품이다. ‘개인맞춤형 상품’이라는 점 때문에 인기를 모은 바 있지만 신탁재산의 운용실적에 따라 이익 배당이 바뀔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원금이 보장되지 않을 수 있으며, 예금자보호법에 의하여 보호되지 않는 점이 단점으로 꼽힌다.

▲ 우리은행이 파이시티 특정금전신탁의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이 제안한 분쟁조정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사진 / 홍금표 기자

◆ 피해자 보상 어떤 수순 밟나?
파이시티 프로젝트 실패로 대규모 개인피해가 발생하자 해당 신탁상품과 관련해 ‘불완전 판매’ 의혹이 일었다. 이에 금감원은 특별검사를 실시해 부실판매 정황을 적발, 지난해 9월 우리은행에는 기관주의 처분을 이순우 전 행장에게는 경징계를 내렸다.

금감원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근거는 우리은행이 신탁상품 판매 시 상품안내장에 ‘연 7.9% 확정수준’ 등과 같이 구체적인 근거가 없음에도 예정수익률을 부당하게 제시했고, ‘원금 상환가능성이 매우 높다’ ‘100% 원금보장’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안전한 상품’등의 표현을 사용해 투자자들을 현혹했다는 데 있었다.

금감원 금융분쟁조정위 역시 우리은행이 고객보호의무를 위반했다는 점, 신탁계약 기간을 부당하게 연장했다는 점을 들어 분쟁조정 신청자들에게 원금의 30∼40%를 배상하도록 하는 내용의 조정안을 내고 이것을 은행 측에 통지했다.

그러나 은행 이사회가 배상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하면서 조정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은행 측은 판매 당시 투자위험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으므로 불완전판매의 잘못이 없다며 금감원과 입장 차이를 보였다. 또 분쟁조정 절차보다는 원칙적으로 개별 소송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우리은행과 금감원, 피해자의 입장차이가 첨예하게 대립되던 중 마침내 지난 16일 우리은행은 임시 이사회를 열고 파이시티 특정금전신탁의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이 제안한 분쟁조정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이에 피해자들은 은행 측 배상액 40%, 파이시티 부지매각 회수금액 30%, 기존 투자 회수금액 등을 모두 합쳐 총 투자금액의 최대 80%를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즉 1억을 투자한 피해자의 경우 최대 8000만원까지 돌려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우리은행 관계자는 “은행 측이 불완전판매 잘못을 인정했다기보다는 소비자보호 차원에서 40%를 물어줘야겠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참여연대의 장흥배 경제조세팀장은 “그동안 금융당국은 금융소비자 보호에 미온한 태도를 보여왔지만 (이번에) 적극적으로 조정에 나서 이례적으로 높은 원금 회수가 가능해졌다”면서 “이는 동양 사태 이후 불완전 판매 문제가 사회 이슈로 부각된 영향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분쟁조정위에 직접 이의를 신청한 사람은 22명이다. 하지만 이번 조정 결정에 따라 투자 피해자 1400여명 전체에 똑같은 배상 방침이 적용된다. 우리은행의 배상 예상 총액은 371억원이다. 우리은행은 다음달 5일까지 이의신청자로부터 조정안에 대한 수용의사를 수렴하고, 의사에 따라 배상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배상이 이뤄져 다행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해당 프로젝트의 개인 투자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금융당국과 은행의 결정을 받아들인다는 입장이다.

20일 우리은행 파이시티 투자 피해자 대책위에 따르면 현재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세 가지다. 40% 내외로 예상되는 우리은행 측의 배상안을 수용하는 것,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소송으로 끌고 가는 것, 파이시티 부지가 감정가보다 높은 가격에 팔리기를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첫 번째 안을 고려 중이다. 은퇴 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했던 투자자가 많았던 만큼 경제적 압박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 싸움을 더 길게 이어나갈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권영일 우리은행 파이씨티 피해자 협의회 고문은 “중국 업체가 해당 부지를 매입한다는 소문이 이미 오래전부터 돌았다”면서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해당 부지가 기대 이상으로 높은 가격에 매각 될 것이라는 기대를 버렸지만, 일부는 끝까지 가 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권 고문은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보상안을 수용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억울함이 풀려서가 아니라 지쳐서 받아들이는 것”이라며 “당시 우리은행은 고령의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보름동안 판매하는 대박상품’이라는 식의 홍보를 해 돈을 끌어 모았다. 그 결과가 8년여 만에 반토막 난 노후 준비 자금이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 중국업체의 파이시티 부지 매입여부와 관련해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업계에서는 각기 다른 예상을 내놓고 있다. 사진 / 홍금표 기자

◆ 중국업체, 부지 매입할까
이처럼 몇몇 개인 피해자들이 오매불망 중국업체의 파이시티 부지 매입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중국 개발업체가 부지 매입에 참여할 가능성에 대해 엇갈리는 주장을 내놨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삼일회계법인이 중국 부동산 관련 그룹을 포함한 중국 기업을 대상으로 투자안내서(IM)을 작성해 배포할 계획으로 알고 있다”고 넌지시 언급했다.

반면 건설업계에서는 “STS개발과 중국 개발업체 등이 부지 매입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도 “부지가 넓고 사업 인허가 문제도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라 파이시티 부지를 매입할 개발자가 쉽게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고 말했다.

개발업계 관계자는 “인수 희망자가 나타나도 다시 인허가를 받고 사업을 일정 궤도에 올리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대기업 등이 부지 매입 때 투자에 함께 참여하겠다고 확약하는 방식이 아니면 개발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시사포커스 / 진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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