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어린이집 네살바기 원생 폭행 사건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한 판국에 친족 간 성범죄 사건 재판에서 주목할 만한 판결이 내려졌다. 울산지법 제1형사부 김원수 재판장은 겨우 초등학생인 의붓딸을 여러 해 성폭행해 온 의붓아버지(59)에게 징역 10년형을 선고했다. 이 의붓아비의 죄목은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 처벌 특례법) 위반으로 친족 관계에 의한 강간’이었다.

성폭력 처벌 특례법은 제1장 총칙 제1조를 보면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그 절차에 관한 특례를 규정함으로써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보장하고 건강한 사회질서의 확립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의붓딸을) 건전하게 양육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성적 욕구의 해소 수단으로 보아 범행했다”며 “피해자에게 미칠 정신·육체적 영향, 피해자가 감내해야 할 고통이 크다”고 양형 이유를 밝혀 ‘피해자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보장’하는 성폭력 처벌 특례법 제정 목적에 상당히 부합하는 판결임을 알 수 있다.

아동을 상대로 한 친족 간 성범죄 사건에는 공통된 요소가 있다. 가해자는 어린 피해자를 자신의 성적 욕망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마치 성인용품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이 범죄는 적발되지 않는 이상 중단되지 않는다. 공동의 주거지에서 어린 피해자와 어른 가해자가 동거하다 보니 하루에도 여러 번 성추행이 저질러질 수 있다. 따라서 가해자가 초범이란 이유로 집행유예 판결을 내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둘째, 어린 피해자는 어른 가해자의 공간을 벗어나면 어디 갈 데가 없다. 그러니 네가 그렇게 오랫동안 당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어 라는 식으로 피해 아동을 몰아붙여선 안 된다. 어린 피해자들은 어디 가서 자신이 처한 고통스런 상황에 대해 말하기도 겁이 나고 자신이 없다. 인천 어린이집 원아 폭행 사건이 알려지게 된 것은 피해 아동이 가족에게 알렸기 때문이 아니라 이를 지켜본 다른 원생이 집에 가서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렸기 때문이다.

이 폭행 사건보다 그 범죄의 성격이나 영향력 면에서 더욱 집요한 성범죄를 당한 어린 피해자는 괜히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이 모든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 하고 ‘자신의 마음을 갉아먹는’ 자책까지 하는 일도 발생한다. 이때 가해자는, 절망으로 무기력 상태에 빠져 상황이 굴러가는 대로 가해자의 뜻에 체념하면서 더 큰 고통을 기피하려고 하는 어린 피해자의 심리를 교묘하게 철저히 이용한다.

셋째, 사법 당국의 심리 과정에서 피해자가 홀로 겪어야 했던 고통은 대체적으로 무시되는 반면 부쩍 가해자의 인권이 주목을 받는다. 어린 피해자는 수사나 법 전문가들 앞에서 묻는 말에 제대로 말도 못하고 피해 사실에 대한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이때 가해자 쪽이 나서서 이것은 전부 나를 모함하거나 아니면 돈을 뜯어내려는 수작이라고 반격한다.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법원 제 523호 법정에서 재판부는 이병헌을 상대로 공동공갈을 친 혐의로 기소된 걸그룹 글램의 멤버 다희와 모델 이지연에게 각각 징역 1년과 1년 2개월을 선고했다. 이 두 여성은 이병헌의 음담패설 동영상을 몰래 찍어 50억을 주지 않으면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다 철퇴를 맞았다.

그러나 이런 식의 공갈은 영악스럽게 머리를 굴리는 이들에게나 가능한 발상이지 세상 물정 몰라서 어른이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그대로 따라 하는 피해 아동들은 이런 범죄를 저지를 엄두도 내지 못한다. 설령 주변에 누가 그렇게 사주해서 시키는 대로 한다고 하더라도 어디에선가는 진술할 때 모순점이나 허점이 발견된다. 이에 반해 이로정연(理路整然)하게 자기 입장을 변호하는 가해자는 교묘한 화술로 재판부로부터 최대한의 정상참작을 끌어내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받고 유유히 거리를 활보하는 일이 잦다.

이런 가해자가 10년 수형생활을 한다고 해서 피해자가 입은 심신의 생채기들이 아물어지느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피해 아동은 10년도 넘는 시간이나 평생 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아동 대상 친족 간 성범죄의 특성에 비쳐 볼 때 앞서 울산지법의 징역 10년 선고가 중형이라는 일부 의견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  

영국의 역사가이자 소설가인 H.G. 웰즈(1866~1946)는 “가정이야말로 고달픈 인생의 안식처요, 모든 싸움이 자취를 감추고 사랑이 싹트는 곳이요 큰 사람이 작아지고 작은 사람이 커지는 곳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는데, 이 의붓아버지는 2012년 당시 11살이던 의붓딸과 함께 음란영화를 시청하는 것을 포함해 수차례 폭행과 추행을 반복했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