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름 없는 풀뿌리 시민단체 위한 NGO재단 설립이 꿈”

 

▲ 이갑산 범시민사회단체연합 상임대표는 최근 새누리당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영입됐다. 이갑산 대표는 우파 시민단체들과 새누리당의 가교 역할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사진 / 홍금표 기자
정당이 혁신을 이루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 중 하나는 제도권 밖의 덕망 있고 유능한 인재들을 영입하는 것이다. 새로운 인재들을 영입함으로써 외연을 확장하는 것은 물론 당내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고, 국민적 기대 또한 높일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야 각 정당들은 사회 각계각층의 인재들을 영입하는데 공을 들이기 마련이다. 강력하게 당 혁신을 추진하고 있는 새누리당도 이 같은 의미에서 최근 인재영입위원회를 구성하고 새 피 수혈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새누리당 인재영입위원회는 총 24명 규모다. 그리고 위원장단은 대부분 전‧현직 국회의원들로 구성됐다. 그런데 이 가운데 드물게 시민사회 출신의 인사가 한 명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이갑산 범시민사회단체연합 상임대표다. 야당에서는 시민사회 출신의 인사가 인재영입위원회에 포함되는 경우가 익숙하지만, 여당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라 더욱 눈길을 끈다.

게다가, 이갑산 대표는 새누리당에 가입하지 않은 자연인 상태로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단에 들어갔다. 뼛속까지 시민운동가인 그는 차기 총선 공천 등을 바라고 인재영입위원회에 들어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당 가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그가 바라는 것은 보수성향의 시민단체들과 새누리당이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이다. 그가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 자리를 승낙한 것은 시민사회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정치권의 리더십을 보강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 발전에 유익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진보좌파 성향의 시민사회단체 출신 인사들이 이미 정치권에 대거 진출해 있는 것과 달리, 보수우파 성향의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는 것이 이갑산 대표가 가지고 있는 문제 인식이다. 이갑산 대표는 인재영입위원회에서 바로 이런 보수 시민단체들과 새누리당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시사포커스>는 12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범시민사회단체연합 사무실을 찾아 이갑산 대표와 만났다. 이갑산 대표는 사무실에 마주앉자마자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역사부터 풀어놓았다. 곁눈질로 본 시민사회운동의 역사가 아니었다. 그가 바로 한국 시민사회운동 역사의 산증인이었다.

<이갑산 범시민사회단체연합 상임대표와의 일문일답>

Q> 시민사회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나?
A> 87년 체제 이후 시작된 가장 큰 문제가 선거 문화라는 생각을 했다. 선관위가 권력의 편에 들어서 공정한 룰을 지키지 않으면 선거에 부정이 생기고, 민주화에 무제가 생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관위를 감시하자고 해서 생긴 게 공선협(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운동이었다. 경실련, YMCA, 흥사단 등 40여개 단체가 연대해서 시작한 게 공선협 운동이다. 그게 대한민국 최초의 시민단체 연대 운동이었다. 그때 저는 거기서 재정위원장을 맡았었다.

그렇게 시작된 시민운동이 불행스럽게도 암초를 만났다. 이전까지만 해도 시민사회가 좌우가 없었고 전부 하나였다. 그런데 94년에 참여연대가 만들어지면서 달라졌다. 대부분 과거 운동권에 있던 사람들이 모여서 참여연대를 구성했다. 태생적으로 좌 성향의 사람들로 구성돼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공선협 운동 하는 멤버들과 잘 융합이 안 됐다. 그런 가운데, 참여연대 쪽에서 낙천낙선운동이라는 총선운동을 했다. 공선협에서 이런 낙천낙선운동에 대해 토론을 했는데, 논의 결과 법률적 위반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참여연대가 주도하는 낙천낙선 운동에 우리는 다 빠지게 됐던 것이다. 당시 그 사람들은 법을 지키자고 했던 우리를 보수라고 말하고 탈법을 강행했던 자신들은 개혁적이고 진보적이라고 강변했다.

그래서 공선협 운동하던 사람들과 여러 시민단체들이 새로운 시민운동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하여 9년 전 157개 단체가 연합해 창립한 것이 한국시민단체네트워크였다. 이후 2011년, 무상급식 복지논쟁이 서울시장 재선거로까지 번지면서 보수시민사회에 ‘복지포퓰리즘반대국민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당시 국민운동을 이끌었던 분들과 여러모로 의기투합하면서 지금의 범시민사회단체연합이 탄생하게 됐다.

▲ 이갑산 범시민사회단체연합 상임대표는 뻣속까지 시민운동가다. 우리 시민사회단체 역사의 산증인이기도 한 그는 이름도 없는 풀뿌리 시민사회단체들을 지원하는 NGO단체를 설립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 사진 / 홍금표 기자

Q> 범사련이 그럼 여전히 우파 선거운동만 하나?
A> 범사련은 환경, 교육, 복지, 소비자, 통일, 문화 등 12개분야 267개의 시민단체들로 구성되어 있다. 산하 단체가 발행하는 신문도 5가지나 된다. 범사련 안에는 보수우파적 성향으로 구분되는 단체도 있지만 합리적인 진보적 성향의 단체나 인사들도 있다. 범사련이 유권자운동의 일환으로 선거 때마다 펼치는 ‘좋은 후보’ 운동은 여야 보수진보 가리지 않고 시민과 유권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자 노력해왔다.

매번 여당출신후보뿐만 아니라 야당 출신후보들도 ‘좋은 후보’로 선정된 이유이다. 진영논리에 입각하여 우리 편은 마냥 옳고 상대편은 마냥 틀리다는 주장이나 활동은 생명력을 오래 가질 수가 없다고 본다. 그것은 진영의 운동이지 시민운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올바른 시민운동의 가치에서 볼 때 잘못되었다면 여야 가리지 않고 비판해 왔다. 이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Q> 진보성향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가?
A> 일단 너무 좌 편향적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정부를 타도의 대상으로 보는 운동은 지양돼야 한다. 물론 모든 진보성향의 단체가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연못물을 흐리듯이 국민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 광우병 촛불시위, 한 1년을 발목 잡지 않았나. 지금은 아무도 믿지 않지만, 당시 미국산 수입 소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고 하면서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었다.

소고기 성분이 들어간 라면을 먹어도 죽는다고 해서 어린이들이 공황상태에 빠져 울고불고하지 않았나. 시민운동을 앞세워 반(反)미 반(反)정부투쟁을 벌인 나쁜 사례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박근혜 정부 들어 세월호사태가 터졌을 때, 모든 국민이 그 애통해 하고 슬픔에 빠져 있는데, 그걸 또 빌미로 해서 반(反)정부 투쟁을 기획하고 확산시키려고 하는 일부 세력들의 반(反)사회적 경향에 대해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시민운동도 아니고 시민단체도 아닌 것이다. 기본적으로 시민운동은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마치 법위에 군림하는 독재자처럼 나라의 기강을 무너트리고 사회의 혼란을 부추기는 세력은 시민운동에서 영원히 추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합리적인 진보와 개혁적인 보수가 보조를 맞추어 대한민국의 시민운동을 한 단계 발전시켜 나가기를 소망해본다.

Q> 이갑산 대표께서는 왜 제도권으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나?
A> 굳이 꼭 내가 들어가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나.(웃음) 저마다 자기 자리가 있고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큰 틀에서 보았을 때 올바른 시민운동을 바로 세우고 기틀을 잡는 것이 제도권으로 들어가는 것 이상으로 큰일이라고 본다. 역사적 맥락에서 우리 사회를 일류국가의 반열에 올려놓는 가치 있는 운동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물론, 능력 있고 뜻 있는 분들이 정치권에 들어가는 것을 장려하고 권장할 것이다. 하지만, 상호 시너지를 내는 차원에서 고려해야지 시민운동을 팔아 개인이 정치적으로 출세하려는 의도가 우선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Q> 어떤 계기로 새누리당 인재영입위원회에 들어가게 됐나?
A>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동안의 시민사회경험을 통해 수많은 인재들이 제 주변에 있을 거라는 판단이 주효하지 않았겠나.(웃음) 농담이다. 제 생각엔 사심 없이 인재를 추천하고 평가할 수 있는 개인적인 조건을 본 것 같다. 그동안 그렇게 살아온 인생역정도 한 몫 한 것 같고. 잘 봐준 것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활동을 해서 좋은 인재가 정치권에 많이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볼 생각이다. 김무성 대표하고의 인연이 오늘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되는데, 지난 대선과정에서 김무성 대표를 만나 김지하 선생의 박근혜 후보지지 기자회견을 제안했고 함께 노력했었다. 당시 김대표에게서 정치적인 리더십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매력을 많이 가지고 있는 분이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상호 호감을 느꼈던 것 같다.

▲ 이갑산 범사련 대표는 지난 대선 당시 김지하 시인의 박근혜 후보 지지를 이끌어낸 장본인이다. 당시 김지하 시인의 지지는 박근혜 후보에게 덧씌워져 있던 부정적 이미지들을 상당부분 해소시키는 역할을 했다. 사진 / 홍금표 기자

Q> 새누리당이 가장 혁신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A> 늘 주장하는 게 소통이다. 그 다음으로 언급해야 하는 것이 시민사회에 대한 마인드이다. 시민사회와 소통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국민과의 소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달리 정치적 이해관계 없이 시민들과 호흡하기 때문에 투명하게 민심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 시민사회다. 선진국일수록 건강한 시민사회를 많이 육성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진국일수록 정부와 시민사회가 거버넌스 차원에서 서로 협력하며 파트너를 이룬다.

우리나라는 기형적으로 진보적 시민사회는 거대하게 성장한 반면 보수적 시민사회는 상대적으로 왜소하기에 이를 데 없다. 보수 정치권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진보적 시민사회가 건물을 세우는 등 뿌리를 내린 반면에 보수적 시민사회는 이명박 정부와 현 정부를 거치면서 더욱 피폐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시민사회와 거버넌스에 대한 마인드를 옳게 확보하지 않고서는 선진국이나 일류국가는 어불성설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새누리당이 대오각성해야 하는 지점이다.

Q> 향후 계획이나 목표를 말씀해달라
A> 범사련이 창립된 지 만 3주기가 됐다. 연말에 범사련 상임대표를 사퇴하고 2선으로 물러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총회에서 1년 임기가 더 연장됐다. 저는 한국 NGO재단을 만드는 작업을 여기서 해야 한다. 내 꿈은 정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한국 NGO재단을 만들어 풀뿌리 시민단체 몇 십 개가 같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YS 정권 때는 경실련이 빌딩을 지었다. DJ 때는 환경운동연합이 힘을 받아 프레스센터 전 층을 쓸 정도로 환경재단을 만들었다. 노무현 때는 참여연대가 정동에 빌딩을 지었다. 자기네들 개인단체들을 위해 빌딩을 짓고 돈을 모으고 했는데, 큰 단체는 저렇게 백화점처럼 커져 있다.

그런데 풀뿌리 시민단체는 5명, 10명이 지역에서 정말 열심히 봉사한다. 우리 범사련 소속 단체는 이름도 없이 저 바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교통봉사, 장애인돌봄 등 풀뿌리 시민단체가 우리한테는 수백 개가 있다. 이 사람들이 조그만 공간 하나 만들어 운영할 힘이 없어서 봉사자들이 일을 하고 싶어도 공간이 없는 상황이 많다.

적어도 20~40개 정도는 방 한 칸씩이라도 주는 NGO재단 빌딩을 갖고 싶다. 그런 점에서 인재영입위원회에 시민사회에 있는 사람들을 당과 연결시키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싶어 당에 가입하지 않는 조건에서 그러겠다고 한 것이다. 시민사회 인사들을 새누리당에 좀 수혈하는데 기여하고 싶어 인재영입위원회에 들어가게 됐다.

▲ 이갑산 대표는 통일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범사련은 신년 중요 계획 중 하나로 탈북자들에 대한 지원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범시민사회단체연합

Q> 덧붙여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다면
A> 범사련의 신년 계획 중 중요한 하나가 탈북자 지원사업이다. 탈북자들이 남한에 오면 돈벼락이라도 맞을 것처럼 환상에 젖어서 오는데, 막상 오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체제에 물들어 있던 사람들이 자본주의 무한경쟁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삶이 굉장히 어렵다. 지금 2만 7천여 명 탈북자들이 남쪽에 와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처음 정착금 등 지원금이 있었을 때는 그래도 좀 괜찮았지만, 그것 역시 쉽게 까먹어 버리고 3D 업종에 해당하는 업에 종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분들은 그런 게 불안하고 못마땅한 것이다.

 탈북자들이 자립해서 남한에서 잘 산다는 말이 나와야 북쪽에 또 다른 사람들이 남한을 그리워하게 되는데, 그렇지 못하게 되면 남한에 대한 환상이 깨져버리게 된다. 탈북자를 흔히 먼저 온 통일이라고 말하는데, 이 사람들이 잘 못살면 앞으로 통일돼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이 사람들이 탈북해서 남한에 오니 참 잘 살더라’ 그런 소문이 북에 울려 퍼져야 통일이 앞당겨진다고 본다. 그래서 금년부터는 우리 시민단체가 그 분들의 가이드가 돼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사업을 할 생각이다. 우리 국민들이 진심을 가지고 그분들을 도와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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