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의 한 백화점을 찾은 모녀 고객이 아르바이트 주차요원을 무릎 꿇린 사실이 폭로되어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이번에는 대전의 한 백화점에서 여성 고객이 남성 점원의 뺨을 때리고 다른 점원들을 밀치는 등 행패를 부린 모습이 뉴스전문채널을 통해 공개됐다.

40대로 추정되는 이 여성은 의류판매장에서 옷 교환을 요구했으나 점원이 옷에 묻은 이물질로 인해 교환이 될 수 없다고 하자, 장소를 옮겨가며 카운터에 있던 물건과 옷을 바닥으로 던지고 고함을 지르는가 하면 폭행까지 저질렀다. 이렇게 난동을 부린 시간은 30분 정도라고 한다.

조현아의 땅콩 회항 여파가 아직도 살아 있기 때문인지 8일 오후 현재 모 유명 포탈에서 ‘가장 많이 본 뉴스’ 꼭지는 ‘백화점 점원 뺨 때린 갑질녀 등장’으로 많은 누리꾼들이 이 사건에 관심을 나타냈다.

도대체 새 옷에 어떤 이물질이 얼마나 묻었길래 교환될 수 없었는지, 아니면 교환될 수 없을 만큼 뭔가를 묻히고 와서 막무가내로 바꿔 달라며 폭행까지 행세했는지 그 자세한 속내는 잘 모른다. 이 사건에서 주목되는 점은 이 난폭한 손님을 둘러싼 점원들의 태도다. 무려 30분 동안 난동을 부릴 동안에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점원들은 가뜩이나 흥분한 손님을 상대로 말싸움이라도 시작했다간 점원도 사람인지라 흥분할지도 몰라 모두들 자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여기 3층 의류판매장에는 다른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 사람들을 손님으로 생각했더라면 신속히 상황을 끝내고 다른 손님들이 편안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게 해야 했다.

실제로 행패를 부린 여성 고객은 한 사람인데 반해 다른 손님들은 다수다. 영리성을 고려하더라도 재빠른 조치를 취해 다른 매장의 고객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했다. 경비를 부른다거나 아니면 높은 자리에 있는 책임자가 나타나서 흥분한 여성 고객을 진정시키고 달래야 했을 터인데 왜 30분 동안이나 이 매장은 거친 목소리와 폭행이 자행된 공간으로 변했을까.

다음으로 주목되는 점은 갑질 여성의 히스테리성 발작이다. 새로 산 옷이 무척 비싼 옷이었을까? 그런 비싼 옷에 이물질이 묻어서 옷을 사려고 들인 돈이 아까운 판에 바꿀 수도 없다면 이거 완전히 돈을 날려 버린 셈이 아닌가? 그래서 그렇게 참지 못할 정도로 화가 난 것일까? 그렇다면 이해 못할 바도 없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대화나 소통 자리에 억지를 부리고 발악하는 태도가 들어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과밀한 도시화가 진행 중인 한국에서 이는 참으로 심각한 문제다. 흔히들 묻지 마 살인은 원인이 없이 마구 죽이는 행위 같은 것처럼 말한다. 과연 그럴까? 묻지 마 살인은 원인이 있다. 살인자와 피살자 사이에 직접적인 살인이 매개될 만한 것을 찾지 못할 경우에 우리는 그것을 묻지 마 살인이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해서 원인이 없을까?

묻지 마 살인의 원인은 과도하게 쌓인 스트레스를 풀지 못해 그것이 분노로 응어리진 상태에서 저질러진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어가지만 전혀 못 풀어가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런 사람들이나 아니면 갑자기 충격적 사건과 맞닥뜨리게 된 사람들은 겉보기에 만만한 약자를 만나게 되거나 적절한 환경이 주어지게 되면 자신의 분노를 거침없이 발산한다. 그러나 분노를 억눌렀다가 전혀 엉뚱한 순간에 그것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새벽 산책길에 길 가는 여자들에게 그냥 칼을 휘두르기도 하고 생판 모르는 남의 집에 들어가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이는 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졌던 일들이다.

곧 대한민국 사회는 분노와 관련한 정서 처리에 미숙한 사회인 것 같다. 이는 분노를 표출하지 말란 뜻이 아니다. 오히려 제때 분노가 표출 안 되고 있으며 이 억압된 분노를 다스릴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묻지 마 살인에는 이런 사회로부터 받은 분노의 축적이라는 원인이 있듯이 도시 생활에서 벌어지는 우발적인 폭행과 살인에도 어떤 필연성이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도시 생활에 대해 알게 모르게 분노를 쌓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분노가 도시인들의 마음속에서 계속 쌓여간다면 볼썽사나운 백화점 갑질 사건이나 땅콩의 분노와 같은 사건은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다.

이제는 사회적 분노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개인적 분노를 다스려나가는 데 관심을 모아야 할 때이다. 개인의 분노는 개인 간의 소통의 부재와 이해의 단절에서 오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은 아마도 불특정 다수로 구성된 사회를 향해 표출돼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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