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들 대다수 국익 거론 일색…누구 하나 범죄 심각성 언급 없어

 

▲ 2009년 이건희 회장의 원포인트 사면을 위해 열렸던 사면심사위원회의 회의록이 공개돼 파장이 일고 있다. ⓒ뉴시스

지난 2009년 8월 배임 등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사면심사위원회의 회의록이 공개돼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최근 기업인들에 대한 가석방 및 사면 논의가 한창인 점을 감안해 볼 때 이날 회의록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파급 효과가 주목된다.

지난 6일 <한겨레>는 법무부를 상대로 사면법에 따라 5년간 공개가 금지된 당시 이건희 회장의 ‘원포인트 사면’을 진행한 사면심사위의 회의록을 정보공개를 청구, 회의록을 입수해 전문을 공개했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1999년 2월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공정한 가격인 1만 4320원보다 현저히 낮은 7150원으로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현재 부회장)에 발행해 회사에 227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며 최종적으로 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받았다.

이처럼 당시 초미의 관심사였던 이건희 회장의 유죄 판결 여부는 결국 유죄 선고로 막을 내렸으나 4개월만인 2009년 12월 24일 회장 1인만을 위한 특별사면 심사위원회가 열려 사면을 결정, 큰 비난을 받았다. 이날 공개된 회의록은 당시 심사위원회에서 위원들이 주고 받은 내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사면심사위 위원 구성 보니
사면회의록 내용에 따르면 우선 사면심사위의 위원 구성부터가 특별사면을 염두에 둔 구성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사면심사위는 이귀남 위원장(법무부 장관)을 필두로 황희철 법무부 차관, 최교일 법무부 검찰국장, 주철현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 국민수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 등 내부 인사 5인과 유창종 변호사, 권영건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 오영근 한양대 법대 교수 등 외부 인사 4인 등 총 9인으로 구성됐다.

사면심사위의 위원장인 이귀남 당시 법무부 장관은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 당시 삼성으로부터 소위 ‘떡값’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았던 인물이다. 더군다나 이귀남 전 장관은 이건희 회장이 유죄를 판결받은 직후인 2009년 9월 법무부 장관으로 내정됐으며 당시 전임인 김경한 장관보다 11기수나 아래였고 당시 김준규 검찰총장의 사법시험 한 해 후배라는 점에서 상당히 파격적인 인사로 받아들여진 바 있다.

황희철 당시 법무부 차관은 2005년 11월 서울중앙지검 1차장 시절 ‘형제의 난’으로부터 촉발된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등 두산그룹 총수 일가의 수백억대 비자금 조성 혐의를 수사하면서 “박 전 회장이 IOC 위원이고 동계 올림픽 유치 등 국가적 현안이 있어 대책 업싱 구속할 경우 국익에 심대한 손상이 올 수 있다”며 특경가법으로 기소된 기업인 최초로 불구속 기소 방침을 밝혀 논란이 됐다. 이는 이후 이건희 회장이 사면됐던 이유와 매우 흡사한 모양새다.

주철현 당시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은 2005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부장검사 시절 이건희 회장을 비롯, 구본무 LG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 대한 참여연대의 ‘불법 대선자금 제공’ 혐의에 대한 고발에서 모두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당시 불법 대선자금 제공 사건은 소위 ‘차떼기’로 불리며 전 국민에게 충격을 준 바 있다.

최교일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은 이명박 정권을 관통했던 키워드인 경북 영주 - 고려대 출신이다. 2012년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과 관련, 대통령 일가가 연루되는 것을 우려해 땅 매입 실무자를 기소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큰 논란을 일으키는 등 이전부터 이명방 정권의 이해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 무리하거나 부실한 수사로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다.

최교일 검찰국장은 이명박 정부 들어 수원지검 차장검사에서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공안·선거 담당)으로 영전했으며 2008년 정연주 전 KBS 사장과 MBC <PD수첩> 제작진을 수사한 책임자였다. 그는 “수사때마다 물을 먹었다”는 평가에도 이후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승진해 심사위원회에 참석했다.

외부인사로 선임된 유창종 전 서울중앙지검 검사장은 2003년부터 대형로펌인 법무법인 세종의 고문 변호사를 맡았다. 법무법인 세종은 2005년 국정감사에서 심상정 의원이 삼성과의 밀착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으며 최근까지도 삼성그룹의 법무 대리인을 수 차례 맡아왔다. 지난해 초에는 이건희 회장과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과의 유산관련 소송에서도 이건희 회장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유 변호사는 2007년 삼성 특검에서 특별검사로 거론될 당시에도 당시 삼성그룹 비자금 비리 의혹으로 출국금지를 당한 황영기 전 삼성증권 사장이 법무법인 세종의 고문으로 알려지면서 법무법인 세종과의 연관성 때문에 홍역을 앓은 바 있다. 삼성 측 변론을 맡고 있는 대형 로펌에 소속된 전직 검찰 고위급 간부 출신이라는 점 때문이다. 또한 법무법인 세종은 이전에도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형사사건 변호를 맡은 이력이 있다.

또 다른 외부인사인 권영건 당시 재외동포 이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일 당시 이명박 후보를 외곽에서 지원한 선진국민연대 공동상임의장 출신인 것으로 알려져 대통령의 사면권 견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 바 있다.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은 심사 이후 1년 반 정도 후인 2011년 6월 이건희 회장이 1990년 선친인 호암 이병철 회장을 기려 만든 호암상을 시상해 눈길을 끌었다.

▲ 유죄 판결 이후 4개월만에 이건희 회장의 특별사면을 상신한 이귀남 당시 법무부 장관은 2007년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 사제단 등으로부터 삼성 떡검 리스트에 올랐던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뉴시스

◆회의록 살펴보니…‘이럴거면 왜 심사하나’
사면법은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에게 특별사면, 복권 등을 보고하기 전에 사면심사위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날 사면심사위의 회의는 ‘이건희 회장 1인 특별사면’ 절차의 정점이었다. 한 명만을 위한 사면 절차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회의가 열리고 5일 뒤인 12월29일 이명박 대통령은 “31일자로 이건희 회장을 특별사면 및 특별복권 한다”고 발표했다.

특별사면 안건을 제안하고 사면을 상신한 장본인인 위원장 이귀남 장관은 회의를 시작하면서 “이번 위원회는 2018년 동계올림픽의 평창 유치라는 국가적 중대사를 앞두고 국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이건희 IOC위원에 대한 특별사면, 상신의 적정성 여부를 심사하여 주십사 하는 취지에서 열게 됐다”며 운을 띄웠다.

최교일 검찰국장은 “국익 차원에서 명목과 실리를, 실용을 중시하는 현 정부 하에서 외국에서도 프랑스 같은 데서도 IOC 위원 자격 유지를 위해 사면해 준 그런 경우도 있고 현재 여러 가지 사정상 이건희 회장이 자격을 잃으면 우리나라는 IOC 위원이 없게 된다”며 재차 국익을 강조했다.

유창종 변호사는 “IOC 위원이 하나하나씩 사라지는 것이 얼마나 국익에 손실인가를 잘 알고 있다”면서 “지난 번 검찰수사로 인해 김운용, 박용성 씨가 결국 위원 자격을 상실하게 되지 않았느냐. 여기서 이건희 씨까지 위원 자격이 상실되면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동조했다. 여기에 “국제 기업경쟁이라는 축구장에 나가서 뛰는 우리나라 몇 개 대기업들 이거는 우리가 좀 미워도 속상해도 세계무대에 나가 싸워 이길 수 있도록 다리 묶은 것을 풀어주는 것이 맞다”며 찬성 입장을 밝혔다.

특히 유창종 변호사는 회의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국익을 거론하며 찬성 의견을 표했다. 유 변호사는 “2018년 동계올림픽은 정말 중요하다”며 “현재 경제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데 삼성이라는 주전멤버의 발에 뭘 채워놓고 뛰라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유 변호사는 “동계올림픽을 초장부터 거론하면 거부감이 생길 수 있으니 우선 IOC 위원 제명이 코앞에 닥쳤으므로 이왕 해 줄거면 빨리 해주고 여기에 동계올림픽까지 코앞에 있으니 빨리 해 주자는 식으로 정리되는 것이 더 많은 국민을 석득하는 면에 있어서 낫지 않겠느냐”며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은 “이런 전례가 있느냐”며 “조금 빠르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며 국민들의 시선을 우려했지만 결국 “이제 때가 때이니 만큼 생각이 들어 찬성을 한다”고 밝혔고 권영건 재외동포 이사장 역시 “우리의 가치와 실익 사이에서 객관적으로 혼돈스러웠다”면서도 “검찰, 법무부, 청와대가 상당히 고민을 했을 테니 국민 정서가 불리하든 아니든 간에 좀 아쉽고 개운하지는 않지만 찬성하겠다”며 결국 찬성했다.

국민수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은 아예 “IOC 위원은 다 사면한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며 “국익을 위해서 한다고 생각하면 편할 것 같아 찬성한다”고 발언했고, 주철현 범죄예방정책국장은 권영건 이사장의 의견에 동의한다며 “법원에서 많이 봐준 것 같은데, 법무부에서 또 봐주는 것으로 생각이 들지만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회를 맡은 황희철 법무부 차관 역시 “전쟁을 하는데 우리가 장수의 발목을 묶고 하는 게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다”라며 “공직자가 부패하다면 어떤 이유에서든 용납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경제인이 국익을 위해서 열심히 하다가 문제가 되면 국익에 위배가 되지는 않아야 하지 않겠느냐” 국익을 강조했다.

그나마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사면 논의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오영근 한양대 법대 교수 정도였다. 오영근 교수는 “사면이 되면 IOC 위원에서 제명되지 않는 것이 확실하냐”며 재차 물은 뒤 추가 발언을 통해 “(찬성이 아닌) 정치적으로 신중 검토 의견으로 하겠다” 정도로 마무리했다.

▲ 최근 들어 경제인들에 대한 가석방 및 사면 논의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이건희 회장의 사면심사 회의록이 공개되자 재탕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사진 / 홍금표 기자

◆‘답정너’ 사면심사위 면모 밝혀져
인터넷 신조어 중에 ‘답정너’라는 말이 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된다’는 의미다. 회의록을 살펴보면 이미 애초부터 심사의 의지는 찾아볼 수 없고 사면심사위가 말 그대로 답을 정해놓은 ‘답정너’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회의록의 내용에 따르면 전체적으로 1~2명을 제외하고 모두 이건희 회장의 사면에 국익과 전례가 있었다는 점 등을 거론하며 찬성의 뜻을 적극 밝히는 모습이다. 어느 누구 하나에서도 이건희 회장이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거나 국민들의 반감을 적극 대변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면이 너무 빠른 것 아니냐” 또는 “1인만을 위한 사면이 있었느냐”라는 질문 역시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사면 논의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국민들이나 시민단체가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걱정하는 취지에서 비롯된 질문들이었다.

사면심사위는 법무부 장관의 특별사면 상신이 적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심사·자문하는 기구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면심사위 위원들은 되레 이 회장 사면의 명분과 이유를 앞다퉈 대는 데 급급했다. 예상되는 여론의 비판을 무마할 홍보대책도 대신 걱정해줬다. 마치 대언론 홍보전략회의 같았다. 여기에 위원들은 회의록이 공개될 경우의 파장을 묻는 등 본인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모습도 보여 빈축을 사고 있다.

회의에서 ‘원포인트 사면’에 대해 관련 사례가 있었다고 주장한 것도 무리한 주장이라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간사였던 권익환 당시 법무부 형사기획과장은 ‘KAL기 폭파범’ 김현희 씨 등 ‘원포인트 사면’이 전에도 8차례 정도 있었다고 설명했지만 이는 대부분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해 준 사례였던 것으로 나타나 이건희 회장의 경우와는 크게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들어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등 기업인들의 가석방·사면 논의가 잇따라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주로 내세우고 있는 이유가 국익과 경제활성화인 점을 감안해보면 이건희 회장에 대한 사면회의록이 주는 시사점은 상당하다.

가석방심사위원회도 사면심사위처럼 법무부 장관 소속이라는 점에서 국민들은 큰 신뢰를 보내지 않고 있다. 추후 설 특사와 3.1절 특사에 대한 공방전이 뜨거워지고 있는 가운데 이건희 회장에 대한 사면회의록이 어떤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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