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김원일 사무총장, 좋은 먹거리 착한 유통 추진

▲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김원일 사무총장은 새해 덕담을 부탁하자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고 보통 옛것을 익혀 새 것을 배운다는 뜻인데 ‘온’은 따뜻하게 한다는 뜻도 있어요. 저는 이렇게 풀이해 봅니다, 따뜻함이 없으면 옳게 배운 것이 아니다, 옛 것을 따뜻하게 익혀서 새 것을 알자”고 말했다. ⓒ시사포커스/홍금표 기자

다사다난했던 2014년을 하루 남긴 30일 오전, 공기좋고 물 좋은 경기도 남양주 조안면 재재기로에 있는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사무실에서 김원일 사무총장을 만났다. 현재 슬로푸드 운동을 하고 있는 나라는 150여개국이 넘지만 협회를 둔 나라는 10여개를 꼽을 정도다.

한국슬로푸드협회는 2013년 약 53만명이 운집한 ‘아시오 구스토’ 대회를 통해 이 세계적인 운동의 새로운 구동축으로 떠올랐다.

<시사포커스>는 새해를 목전에 두고 김 사무총장으로부터 ‘좋고 깨끗하고 공정한 음식’의 상호 공유와 누림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에 대해 들어 보았다.

다음은 김원일 사무총장과의 일문일답.

Q. 청소년들에게 권하고 싶은 종류의 책이 있다면?
A. 저는 『음식 문맹자, 음식 시민을 만나다』라는 책의 일독을 권하겠습니다. 이 책은 저희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에서 발간한 첫 번째 책인데요. 국제슬로푸드 운동을 우리나라에 최초로 본격적으로 소개하신 분이자 저희 협회 초대회장이신 김종덕 교수(경남대 사회학과)님이 저술하셨어요.

책 제목에 왜 ‘음식문맹’이란 말이 들어갔느냐 하면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에 무지한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참치캔 하나만 예를 들어도 요즘 청소년들 중 참치가 정말 어떻게 생겼는지 잘 알고 있는 학생들이 얼마나 될까요. 또 참치캔 겉에 있는 성분표에 영어인지 뭔지 이해하기 힘든 말과 함께 된 칼로리만 나온 것만 봐 가지고선 도대체 이 음식이 나한테 어떤 도움이 될지 잘 알 수 없죠.

▲ 김원일 사무총장은 우리는 사실 우리가 매일 먹은 음식에 대해 무지한 측면이 있다며 먹거리 위기 시대에서 음식문맹자에서 음식시민으로서 자각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시사포커스/홍금표 기자

또 우리는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도 잘 모릅니다. 음식이 생산될 때 들어가는 에너지와 폐기되는 에너지가 얼마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지구의 산소라고 하는 아마존의 엄청난 산림들이 훼손되고 있는 이유도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음식과 관련한 다양한 무지들에서 벗어나자는 취지에서 저술된 책이 『음식 문맹자, 음식 시민을 만나다』입니다. 자신이 먹는 음식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나 특히 청소년들에게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청소년기는 누구나 고민을 많이 하는 시절인데요.
A. 제가 내성적인 성격이 고민이었습니다. 이게 고민돼서 배문고에 입학해서 1학년 때 밴드부에 들어갔어요. 밴드부에서 유포니엄이라고 튜바 비슷하게 생긴 악기를 연주했어요. 악기와 악기 사이에 음색을 이어주는 그런 구실을 합니다. 거기서 활동하면서 거친 선배들과 생활하다 보니 내성적인 성격이 많이 완화됐습니다.

Q. 혹시 스트레스가 쌓일 때 그것을 단박에 깨는 ‘필살기’가 있으신가요?
A. 10년 전 2004년도에 제가 위암 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요. 담배는 가끔 했지만 술은 거의 안 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중병이 걸린 게 이상해 생각해 보니 스트레스를 받긴 받았나 봅니다. 다만 의식을 못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지금도 스트레스를 잘 의식하지 못합니다. 제가 남의 말에 대해 수긍을 잘 하는 편입니다. 이번 ‘2014 슬로푸드 위크’ 행사 준비 차 기업 후원을 받으려고 돌아다녔습니다. 담당자들이 전부 “요즘 경제가 어렵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런가보다 하고 그냥 수긍을 했습니다.

▲ ‘2014 슬로푸드 위크’ 행사에 선보인 가평발효밥상. 제공=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Q. 그래 후원은 받았습니까?
A. 기업과 기관에서 후원을 받아 행사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Q. 사무총장이면 많은 사람과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좋은 리더십이란 어떤 걸까요?
A. 자신의 입장보다는 상대의 입장이나 필요에서 일을 추진해 나가는 겁니다. 일을 일방적으로 한 사람이 주도해 나가기보다 상대방과 같이 해 나가려는 마음이 모이면 일이 더 잘 추진될 겁니다. 저는 이렇게 일을 해나가는 방식에 ‘네트워크 리더십’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싶습니다.

Q. 국제 슬로푸드 운동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A. 1986년 이탈리아 로마의 스페인 광장 유적지 앞에 맥도날드 점포가 만들어진다고 하자 지식인들이 모여서 반대했습니다. 대표적인 패스트푸드 점이 이탈리아의 역사적 장소 앞을 차지하게 놔 둘 수 없다고 생각했지요.

그때 ‘빠르다’를 뜻하는 패스트란 말에 대응해서 ‘느리다’는 뜻의 ‘슬로’란 말이 떠올랐죠. 그러다 ‘슬로’란 말이 인류 문명 차원에서도 큰 함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차차 이해되기 시작했어요. 현대 문명을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느림’의 의미, ‘과정 중시’의 삶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뜻과 실천으로 확대됐어요.

국제슬로푸드협회는 1989년 파리에서 창립됐습니다. 이탈리아 와인 전문가 카를로 페트리니가 진두 지휘했지요. 창립 선언문의 골자는 느림의 철학을 바탕으로 인간 본연의 질서를 회복하자는 것이었습니다.

Q. 국제슬로푸드 운동의 규모는 어느 정도입니까?
A. 현재 전세계 153개국에 걸쳐 약 10만명의 열성 활동가들이 있습니다. 슬로푸드 운동이 중시하는 것은 ‘지역 단위 활동’의 강화입니다. 지역을 기반으로 해서 활동하는 단체들이 전세계에 약 1,500개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약 30여 단체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작년 10월 1일부터 6일까지 슬로푸드 아세아 오세아니아 대회(AsiO Gusto)를 남양주에서 치렀습니다. 30여개국이 참여했고 53만명이 몰려 대성황을 이뤘습니다. 이 행사는 저희 슬로푸드한국협회에서도 뜻 깊은 족적을 남겼습니다. 이탈리아에 있는 본부로부터 한국의 역동적인 활동을 보고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슬로푸드한국협회가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의 본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한국협회에 대한 신뢰도가 높습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이런 협회가 10년 먼저 생겼지만 국제적인 활동이 미약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 슬로푸드 활동가들은 다이내믹한 모습을 보여 지금은 저희가 이 국제 운동의 한 축을 이끄는 입장에 있습니다.

과제는 중국입니다. 과연 중국의 음식 문화가 변할까 하는 것은 세계적인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 ‘2014 슬로푸드 위크’ 미각 교육에 참여한 시민들의 모습. 제공=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Q. ‘슬로푸드’ 운동이란 일종의 음식과 관련된 시민운동인데요. 이 운동에서는 현재의 식문화가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A. 앞으로 식량위기의 심화가 예상됩니다. 미국식의 소비 생활이 유지되려면 3.9개의 지구가 필요하고, 한국식의 소비 생활이 유지되려면 2.5개의 지구가 필요합니다. 곧 이런 식의 소비 패턴으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겁니다. 지속가능한 삶을 준비하려면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조성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덜 투입된 음식을 먹는 것이 하나의 대안입니다. 우리가 먹는 것은 후손들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해마다 생명체의 약 27,000종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생물 다양성이 획일화로 치닫고 있는 겁니다.

미국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사업이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대형 마트들도 철수하고 신선한 야채 하나 먹기 힘든 지역이 발생했습니다. 그때 뜻있는 사람이 이런 ‘음식 사막’에서 실험 삼아 도시농업을 시작했고 생산물을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에게 싼 값에 공급했습니다. 

지구의 식량위기, 생물다양성 위기는 '따뜻한 식문화'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식량이 아니고 나눔입니다.

Q. 슬로푸드 운동의 구호랄까 철학 같은 게 있나요?
A. 첫째로 모든 생명은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좋고(Good), 깨끗하고(Clean), 공정한(Fair) 음식을 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혀에만 좋은 것이 아니라 몸에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깨끗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이 말의 속뜻에는 지구에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또 공정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을 생산하는 농부들에게 적정한 대가를 지불해 줘야 합니다.

Q. 슬로푸드 운동이 활성화되면 한국 사회에 어떤 변화가 올까요?
A. 우리 입, 미각은 특정 맛에 획일화돼 있습니다. 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공장에서 우리가 먹는 음식을 획일적으로 찍어내기 때문입니다.

입맛의 다양성이 중요합니다. 입맛이 달라지면 영양적인 면은 물론 우리 심리적인 면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지난 ‘2014 슬로푸드 위크’에서 입맛 행사를 가졌습니다. 예컨대 전통주를 서로 맛보고 그 맛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면서 죽어 있던 미각을 살려 존재감을 부여해주고 자연스럽게 음식물의 재배·생산·제조 과정에 흥미를 갖게 되면서 대화가 풍성해졌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음식문맹자가 아닌 ‘음식시민’임을 자각해 나가는 겁니다.

입맛을 다양하게 한다는 것은 공장산업형 유통구조가 만든 획일화된 입맛의 고착화한 구조를 깬다는 의미는 물론, 맛의 다양성의 원천이 되는 농산물의 다양성, 생물의 다양성을 지지한다는 뜻도 깔려 있습니다. 이러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지역 농업 기반과 착한 유통이 결합해서 지역 경제의 활성화를 가져온다는 분배 효과도 있습니다.

▲ 김원일 사무총장은 2015년 상반기에 “발효식품협동조합을 조직하고, 슬로푸드 프렌즈 인증제를 활성화해 먹거리 생산자와 음식시민과의 유통 구조를 개선할 계획이며 2015 아시아-오세아니아 슬로푸드 세계대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시사포커스/홍금표 기자

Q. 2015년 을미년에 준비하고 있는 사업이나 프로젝트가 있겠지요.
A. 저희 슬로푸드한국협회의 목표는 ‘따뜻한 밥상 행복한 공동체’의 구현입니다. 꾸준히 지역 단위 음식 생산자와 음식시민을 연결해주는 작업을 강화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슬로푸드 생태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첫째로 발효협동조합을 세워 좋은 먹거리의 유통이 좀더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할 생각입니다. 둘째는 ‘슬로푸드 프렌즈’라고 착하고 깨끗하고 공정한 음식을 제공하는 가게를 인증하고 그 가게들을 저희 홈페이지에 올려서 어느 지역에서든 음식 소비자가 이들과 연결되도록 할 계획입니다. 셋째로 2015년에 아시아-오세아니아 슬로푸드 세계대회를 2013년에 가졌던 행사의 공과를 따져서 더 내실 있게 개최해 볼 예정입니다.

Q. 새해 덕담 한 마디 해주신다면
A.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고 보통 옛것을 익혀 새 것을 배운다는 말인데 ‘온’은 따뜻하게 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풀이해 봅니다, ‘따뜻함이 없으면 옳게 배운 것이 아니다, 옛 것을 따뜻하게 익혀서 새 것을 알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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