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보호관찰소 서상길 책임관

그 날도 여느 때처럼 퇴근 무렵 일상적인 업무를 마무리하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서인지 문득 생각나는 이름이 떠올랐다.

이○○(남, 46세), 가족들로부터 외면 받으며 기초생활수급자로 혼자 외롭게 폐가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추운 날씨에 밥은 먹었는지! 술에 취해 넘어지지 않았는지! 등등 온갖 생각들이 떠올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화기를 들어 그에게 전화하였으나 “고객의 사정으로 당분간 수신이 정지되었습니다”라는 틀에 박힌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어떻게 할까! 그냥 오늘은 퇴근하고 내일 가볼까 망설이는데 어느덧 나의 발걸음은 대상자의 주거지로 향하고 있었다. 도착해 집 안으로 들어가 이○○씨 이○○ 씨 하고 이름을 불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그날따라 유난히도 일찍 날이 어두워, 귀신이 나올 듯한 폐가 뒷마당에 있는 대나무 숲이 음산한 칼바람 소리를 내고 있어 불러도 대답이 없는 대상자 집에 괜히 왔구나 하고 생각하며 음산한 집이 무서워 재빨리 빠져 나와 차를 타는 순간 ‘당신의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다’라는 나폴레옹의 명언이 라디오에서 흘러 나왔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나폴레옹의 불행, 잘못 보낸 시간, 보복…. 뭘까! 뇌리를 스쳤다. 혹시나 대상자가 술에 취한 채 폐가의 냉방에서 잠이 들었다면 하는 생각에 지금 뒤돌아서 가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먼 훗날 아니 당장 내일, 이 순간을 ‘잘못 보낸 시간’이라고 후회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컴컴하고 으스스한 폐가로 다시 돌아가 잘 보이지 않는 이방 저 방을 뒤졌다. 그러다 방 한쪽 쓰레기 더미 속에서 희미하게 사람 같은 형체를 발견하고 그의 이름을 서너 번 불렸지만, 대답이 없어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니 대상자 같아서 몸을 흔들어 깨웠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어 혹 죽었을까 하는 생각에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그의 어깨를 흔들며 “이○○씨 이○○씨” 하고 크게 소리치자 숨소리 같은 알아듣지 못하는 작은 소리가 매캐한 냄새와 함께 찬 공기를 타고 가물거리는 것 같았다.

처음엔 잠을 자나 했지만 대상자의 상태가 예상치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솔직히 나도 모르게 겁이 났다.

순간 떠오르는 119로 전화를 하여 신고를 하자 얼마 후 구급차가 도착했는데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던지!

3명이서 대상자를 들것에 올려 구급차로 병원에 호송을 하는데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는 구급대원의 말에 함께 구급차를 타고 인근 병원 응급실로 갔으나 담당의사는 대상자를 아는지 며칠 전에 두개골 파열로 치료를 받았고, CT 촬영결과 뇌출혈이 있어 오늘 병원에 오지 않았다면 사망했을 것이라고 했다.

대상자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침상에 누운 채 소변과 대변을 보았다. 그러자 간호사는 나에게 “보호자 분 오줌과 변을 치워주시고 환자복으로 갈아 입혀주세요”라고 하였다. 순간, 네가 보호자! 그래, 대상자는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았지….

나는 누워있는 그의 소변과 대변에 젖어 있는 옷을 벗기고 변을 닦아주고 환자복으로 갈아 입혔다. 잠시 후 의사가 하는 말이 현재 환자의 상태는 이 병원에서는 뇌수술이 어렵다며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여 재차 구급차로 전남대학교병원으로 갔으나 약으로 쓸려고 할 때는 개통도 보이지 않는 다는 말처럼 수술실이 다 차서 수술을 할 수 없다고 하여 또 다시 허탈한 마음으로 수술이 가능하다는 광주씨티병원으로 옮기게 되었다.

도착하자마자 의사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검사를 하고 수술실로 대상자를 들여보내자, 갑자기 긴장이 풀려서인지 대기실 의자에 풀썩 주저앉아 그저 수술이 잘 되기만을 바랬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왜 하나님은 나에게 보호관찰관이라는 직업을 주셨을까! 하는 상념도 해보았다.

예수가 태어난 12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를 사랑했던 예수의 삶처럼 어려움에 처해있는 이○○씨의 보호자로서 보호관찰관으로서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다면 나 또한 보람으로 행복한 하루를 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수술이 왜 그리 오래 걸리는지 초조한 마음에 안절부절하다 밖으로 나오자 하얀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평소에는 눈이 와도 덤덤했는데 오늘 따라 내리는 눈이 축복인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게 잘될 것 같은 느낌!

평소 믿음도 없었지만 난 기도했다. 대상자의 수술이 잘 되게 해 달라고….

몇 시간 뒤 수술을 마치고 나오신 의사 선생님께서 수술이 잘 되어 큰 고비는 넘겼는데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늦은 시간 뿌듯한 기분에 집으로 들어서자 아내로부터 왜 연락도 없이 늦게 왔냐며 한 소리를 들었어도 나는 흐뭇했다.

다음 날 걱정이 앞선 나는 출근하자마자 대상자가 있는 병원의 중환자실로 가서 의식이 약간 깨어있는 대상자에게 ”나를 알아보겠느냐?”고 묻자, 대상자는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목소리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나는 예수님처럼 살지는 못하지만, 이 뿌듯함을 간직하여 그의 삶을 닮아 진짜 보호관찰관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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