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은 한국 사회가 정윤회 관련 문건 유출, 조현아 ‘땅콩 리턴’ 사건,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으로 요동쳤다. 이번 달이 끝나면 이제 2014년도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이 시대를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이제 후손들의 눈과 손으로 평가될 것이다.

갈래를 잡기 힘들 정도의 대형 사건들이 줄줄이 터져 나오던 지난 22일 서울북부지검 윤중기 부장검사 형사3부는 2008년부터 지난 7월까지 11차례에 걸쳐 여제자들을 추행한 교수를 구속 기소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구속된 이는 한국 최고의, 꿈의 대학이라고 하는 국립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ㄱ교수였다. ㄱ교수는 지난 2008년부터 올해 7월까지 11차례에 걸쳐 자기가 직접 가르치는 여제자들을 대상으로 한 상습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됐다.

ㄱ교수는 주로 제자와 둘이 있을 때 피해자들의 가슴이나 엉덩이를 만지거나 깊이 껴안으려고 했다고 한다. 이러한 강제 신체 접촉과는 별도로 ㄱ교수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지속적으로 보고 싶다거나 일대일로 만나자고 강요를 한 다른 8명까지 해서 피해자는 현재까지 모두 17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ㄱ교수의 눈에 자신에게 배움을 청하러 온 젊은 여대생이나 대학원생들은 제자라기보다는 그저 ‘생물학적인 여자’로 보였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만일 ㄱ교수가 자신이 가르치는 여제자 중 한 명과 숙명처럼 불가항력적인 사랑에 빠졌다면 사람들이 이 사건을 보는 시각은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사건을 가만히 뜯어보면 교수가 기회만 주어지면 여제자들을 성적으로 희롱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피해 여성들에게 자신의 교수라는 직위를 노골적으로 강조하면서 추행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제자의 입장에서는 어쨌거나 자신의 진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교수가 자신의 몸을 성적 대상화했다는 것을 알고서 모욕감에 상처를 받았으면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검찰의 기소내용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이 사건은 교수와 제자의 관계가 스승에 대한 존경 및 제자에 대한 돌봄이라는 본질적 신뢰성은 잃어버린 채 그저 억압적인 권위 내지 권력의 위계질서에 기초한 성적 가해자와 성적 피해자의 관계로 전환됐다는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그대로 노정시킨 것이다.

ㄱ교수는 교단에서 지난 배움의 과정을 통해 자신이 배우고 익힌 지식을 전달하는 데는 전문가였을지 모르나 자신의 금도를 넘어선 행동으로 인해 제자들이 느꼈을 아픔이나 분노, 좌절감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음이 확실하다. 만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다면 수년에 걸쳐서 상습적으로 그런 짓을 자행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교육자 또는 선생은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다. 우리 모두는 한때 학생이었기에 잘 알고 있다. 학생들은 교육자 또는 선생의 일거수일투족을 통해서 세상을 보고 평가한다. 만일 교육자가 자신이 책이나 교수의 강연을 듣고 보고 해서 복사하듯 머릿속에 집어넣은 지식을 그저 앵무새 기계처럼 제자들에게 전달하면서 제자들을 성적 대상화 내지 돈벌이 수단 정도로만 본다면 한국 사회의 비정상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 틀림없다.

서울대학교 당국 역시 이 사건에서 책임이 없다 할 수 없다. 교수 임용 조건에 교육자로서의 자질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지표를 마련하고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이런 성범죄 관련 사건이 터질 때마다 교수들끼리 서로 알고도 모른 척 봐주며 대충 넘어가는 관행의 용인이 교육자로서 과연 올바른 태도인가 하는 점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아울러 피해자들은 은폐된 성범죄는 재발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피해 여성 자신만 입 다물고 참고 견디면 무사히 졸업하거나 월급을 받고 다른 회사로 옮기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성범죄 피해자가 있으면 이미 다른 사람이 피해를 당할 조건이 싹트고 있는 것이다. 모든 범죄는 사회적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교육은 한 나라의 주춧돌이다. 주춧돌이 부실하면 그 위에 어떠한 화려한 건축물이 세워진들 언제 무너질지 몰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 사회 구성원이 불안해진다. 주춧돌에 금이 가고 있는데 임시 땜질하듯 나오는 미래에 대한 모든 정책과 담론들은 공허하지 않은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지록위마(指鹿爲馬)’가 뽑혔다고 한다. 사슴을 가리키면서 말이라고 해야 하는 괴이한 착란 증세가 교육계에도 만연돼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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