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한류 성공하려면 장인의 개성 지켜줘야”

▲ 이광희 원장이 태어난 경북 의성 금성면 산운리에 위치한 산운(山雲) 마을은 의성을 대표하는 고택촌으로 영천이씨의 집성촌이기도 하다. 세월도 쉬어간다는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도시 속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여유의 소중함을 절감했는지도 모른다. 제공=정민 이광희한복

명품 한복 디자이너이자 ‘정민(姃玟) 이광희 한복·침구’의 이광희 원장은 경북 의성 출신이다. 이 원장이 태어난 금성면 산운리에 위치한 산운(山雲) 마을은 의성을 대표하는 고택촌으로 영천이씨의 집성촌이기도 하다. 이 원장이 중학교 2학년에 전기가 들어왔고 산운 어르신들은 기차는 시끄럽다며 철도를 허하지 않았다.

그렇게 고집스럽게 시류와 타협하지 않고 지켜온 마을이기에 초연한 단아함이 살아 숨 쉬고 있는 반촌(班村)으로도 이름이 높아가고 있다. 모나지 않은 부드러운 자연의 색이 감싸고 있는 산운마을의 맑은 정기는 이 원장의 디자인에도 스며들어 은은한 담백함이 돋보이는 명품 한복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원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취임식 때 입었던 한복의 복(福)자를 디자인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다음은 이광희 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Q: 21살 때 서울로 오시기 전까지 산운 마을 생활은 어떠셨는지요?
A: 마을의 전통이 도시 문물을 쉽게 받아들이는 편이 아니었어요. 주로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저희가 집성촌이다 보니 알고 보면 다 친척이지만 또 친구들이었습니다. 마을 사정을 잘 모르면 이해하기 힘들지요. 저는 항렬이 높은 편에 속했습니다. 친구들은 저를 아지매로 불렸죠. 친구들이 저희 집에 많이 놀러 왔고 지금까지 만나는 친구들도 많아요.

어머니는 삼베로 길쌈을 하셔서 어려서부터 바느질과 꽤 친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머리 속에서 뭘 만들어야겠다고 마음 먹고 일을 하면 결국은 그와 똑같이 만들어냈던 것 같아요. 단 원하는 것을 만들기 전에 아주 많은 생각을 했지요.

Q.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낸 산운마을의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항렬을 중시하는 마을이었으니까 지금 돌이켜 봐도 질서가 잘 잡혔다는 인상입니다. 요즘은 장유유서의 규범이 많이 무너진 것 같은데요. 어른들이 되려 자녀들의 말을 듣는 세태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받은 교육과 도시화와 함께 진행된 젊은 세대에 대한 교육의 차이도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젊은 세대는 할 말 안 할 말 다해서 오히려 오해가 쌓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일례로 예단(禮緞)을 보내야 할 때도 ‘괜찮아’라고 말하면 그냥 이를 생략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소통의 오해에서 빚어진 것 같습니다. 예단이란 남의 집에 호적을 올리는 과정에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단순히 허례허식 측면에서만 따지지 말고 그 깊은 의미를 살렸으면 싶어요. 혼(婚)으로 맺어지는 양가의 상호 인정과 존경의 표시로 보면 어떨까요.

▲ 한복의 아름다움은 선에도 있지만 일시적인 흐름일 수 있다며 이광희 원장은 한복의 근원적인 미를 ‘여유로움’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 시사포커스/홍금표 기자

Q: 산운마을 시절에 고민거리 같은 것은 없었나요?
A: 내가 뭘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그거였어요. 바느질을 하면 팔자가 세진다잖아요. 여자들이 일하면 남자들이 일을 안 하게 되니까 나온 말 같아요.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아쉬운 점이 있는데요. 공부를 많이 하고 싶었는데 잘 안 됐어요. 친구들은 모두 큰 도시로 유학을 갔지요. 남들은 저를 보면 여성적이란 말을 자주 하는데 사실은 만드는 것을 아주 좋아하고 건축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습니다.

Q.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결하세요? 
A. 저는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편인데 스트레스라는 게 나랑 잘 맞지 않는 상황이나 사람을 만날 때 발생하잖아요. 그런데 저 사람은 저런 성향을 가졌지, 라고 인정하면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Q.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한복 일을 하셨나요?
A. 21살 때 서울 북아현동에 올라와 잠시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다 31살 때부터 등촌동 등지에서 가게를 열고 한복을 짓기 시작했어요.

Q. 당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같은 게 있나요?
A. 50대 후반의 한 부인이 찾아오셨어요. 여의도 갑부로 기억하는데 소문 듣고 왔다고 하더군요. 내가 치마·저고리 원단을 골라주니까 쓱 보더니 ‘학교 어디 나왔느냐’고 묻더군요. 저는 학교에서 한복 디자인을 배우지 않았어요. 독학을 했어요.

Q. 다른 옷과 차이나는 한복의 아름다움이 있다면요.
A. 흔히 한복의 미는 선이라고 합니다. 일리 있는 말이에요. 그러나 한복의 선도 유행하는 디자인의 한 흐름입니다. 복식사를 들여다보면 우리나라에 각진 옷들이 많았어요. 오늘날의 둥그스름한 선 대신에 직선 형태가 많았지요. 한복 고유의 아름다움을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형태에서 찾기 보다는 오히려 저는 ‘여유’에서 디자인의 출발점을 삼고 싶어요. 한복의 미는 여유, 그 여유에서 오는 풍성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유행이란 얘기가 나왔으니까 한 마디 덧붙이자면, 요즘은 한복 짓는 집이 청담동에 몰려 있는데요, 저는 한 12~13년 전 한복 디자인이란 말조차 잘 쓰지 않았을 때 짧은 고름을 시도해 봤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이 소리 소문 없이 드러나지 않는 유행이 돼 있었어요.

▲ 이광희 원장이 운영하는 ‘정민 이광희 한복·침구’의 안. ⓒ 시사포커스/홍금표 기자

Q. 저는 한복 한류가 세계 패션계의 한 축을 담당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 어떤 일이 선행돼야 할까요?
A. 한복에 대한 선입견이 해소될 필요가 있습니다. 작년에 TV로 일본 설날 특집 프로그램을 보니 젊은이들이 모두 기모노를 입고 나왔더군요. 그런데 우리나라 국영 방송 국악 프로그램인데, 여자 아나운서가 양장을 입고 나왔어요. 국회의원 중에도 한복 입은 사람이 드물더군요. 보통 양복만 입어요. 그래서 저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한복을 입고 나온 정치인을 지지하자고 카카오톡을 보낸 적이 있어요(웃음).

어느 학교 학생이 한복 디자인을 차용해서 교복을 만들어 입고 다니는 학교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교복에 한복 디자인을 적용하는 것도 한류를 위해서 활성화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맞춤형 개량 한복의 보급도 좋은 일입니다.

전통 문화 지원 차원에서 정부 지원 대출이 조금 있는데 이보다는 오롯이 개성적인 한복을 만들고자 하는 한복인들이 자생할 수 있는 틀, 이를테면 한복 디자인을 세계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나간다면 우리나라 전통 문화를 알린다는 면에서나 경제적인 면에서나 훌륭한 성과를 볼 것이라고 생각해요.

▲ “한복은 입은 사람을 돋보이게 하고 귀하게 보이도록 지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디자인뿐 아니라 원단 소재, 색상 등을 두루두루 고려해야 합니다.” ⓒ 시사포커스/홍금표 기자

Q. 후배들이 한복 장인이 되려면 어떤 마음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A. 무엇보다도 하고 싶어서 해야 합니다. 하고 싶지 않으면 지탱하기 힘이 드는 게 현실입니다. 요즘은 결혼 관련 컨설팅 회사가 한복 사업도 벌이고 있습니다. 컨설팅 회사들은 한복을 업으로 삼아온 이들을 홍보를 해준다며 중간에서 상당한 이득을 보고 있습니다.

이들의 힘이 점점 막강해지니까 아예 1억씩 선불하는 한복인도 있다고 들었거든요. 이렇게 되면 한복 수요가 한쪽으로 몰려 홀로 한복 짓는 업을 하시는 분들과 소비자들과의 인연이 멀어져 서로 고립될 수가 있잖아요. 그렇게 되면 사람 하나하나의 멋을 살려주는 한복을 만들고자 하는 장인들의 경제적 여건은 계속 나빠질 겁니다.

이런 상황이니 정부 관계 당국이 한복 한류라는 큰 틀에서 신경을 써주셨으면 합니다. 한복인들의 자유 정신이 위축되고 형편이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요즘은 청담동에서도 문을 닫는 한복집이 많다고 듣고 있습니다.

Q. 그렇다면 컨설팅 회사와 별도로 뜻있는 한복인들이 뜻을 함께 하는 방법은 없었나요?
A. 한복 조합을 만든 적이 있었어요. 정부 인가를 받았지요. 그런데 대량으로 원단을 구입하고 보니까 이 집 저 집 가도 다 똑같은 한복이라 결과는 생각보다 별로였어요. 지금은 한복 바느질을 중국에서 해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 이광희 원장은 <마파도2>의 이상훈 감독의 신작인 『한복 입은 남자』의 한복 의상 디자인을 맡기로 했다. 150억의 제작비를 들어가는 『한복 입은 남자』는 한중 합작으로 제작돼 내년에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 시사포커스/홍금표 기자

Q. 한복을 지을 때 원칙 같은 게 있으신가요?
A. 한복은 사람을 귀하게 돋보이는 옷입니다. 그러려면 디자인뿐 아니라 원단 소재, 색상 등을 두루두루 살펴야 한복 입은 사람의 장점과 안 보이는 아름다움까지 살려주게 됩니다.

Q. 신정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한복을 입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요.
A. 어른들은 한해를 계획하고 설계하는 시간입니다. 단아하고 소박한 색상의 한복을 입으면 좋을 것 같아요. 아이들은 발랄하고 쾌활한 느낌을 주는 한복을 입으면 남녀노소가 잘 어울리지 않을까요?

Q. 앞으로의 특별한 계획이 있으시다면?
A. 영화 <마파도2>의 이상훈 감독이 10년에 걸쳐 쓴 『한복 입은 남자』라는 책의 영화, 드라마 제작이 확정됐어요. 한중 합작으로 한 150억 들여 만든다는데 의상을 맡게 됐어요. 영화 시나리오가 나오면 그걸 보고 의상 디자인에 몰입할 것 같습니다.

Q. 끝으로 새해 덕담을 해주신다면?
A. 손님이 한복을 하러 오시면 서로 많은 시간 대화를 나눕니다. 그 시간에 손님의 내면과 친해지면 이런 한복이 어떨까 하고 제안합니다. 그러면 손님도 자신이 원하는 한복을 말합니다.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하면서 한복의 디자인, 색상, 원단 소재 등을 결정해 나갑니다. 새해는 모든 일들이 이런 식으로 이뤄진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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