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S에 제일모직까지…지배구조 개편 ‘가시화’

▲ 18일 제일모직이 성공적으로 유가증권시장에 안착하면서 차근차근 준비단계를 밟아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가 구체화되고 있다. ⓒ뉴시스

하반기 기업공개(IPO) 시장 최대어로 꼽혀온 제일모직이 18일 드디어 유가증권시장에 성공적인 첫 발걸음을 뗐다. 제일모직의 상장은 삼성SDS와 많은 면에서 닮아 있지만 지배구조 이슈의 핵심이라는 점에서는 차원을 달리 하는 진정한 ‘로얄로드’로 평가받고 있다. 여기에 한 달여만에 삼성SDS와 제일모직이 코스피에 연이어 안착하면서 ‘이재용의 삼성’ 역시 조금씩 구체화되는 모양새다.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위치한 제일모직이 18일 상장되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룹 승계 자금마련과 지배권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돼 향후 지배구조 개편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날 제일모직은 규정상 가능한 최상단인 공모가(5만3천원)의 200%(10만6천원)로 시초가를 형성하며 신고식을 치렀고, 시초가보다 6.6% 오른 11만3000원에 거래를 마치며 시장의 기대를 넘어서는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공모가 대비로는 113% 오른 금액이다. 지난달 상장한 삼성SDS 역시 시초가가 공모가(19만원)의 두 배인 38만원으로 형성됐지만 곧바로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져 나오며 상장 당일 하한가에 가까운 금액으로 장을 마감한 바 있다.

이날 제일모직의 시가총액은 15조2550억원을 기록, 단숨에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순위 14위에 진입했다. 장초반 급등락을 반복하며 불안정한 수급을 보였지만 오후부터 기관을 비롯한 국내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몰리면서 강세로 마감했다.

거래대금도 상장 첫 날 역대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날 제일모직의 거래대금은 1조3651억원을 기록해 삼성SDS가 세운 첫날 거래대금 기록인 1조3476억원을 경신했다. 이날 제일모직은 코스피 전체 거래대금의 26%를 차지했다

▲ 삼성그룹 지배구조에서 제일모직은 전 계열사를 아우르는 순환출자고리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 / 홍금표 기자

◆삼성SDS와 비교해보니...
제일모직의 상장은 여러모로 삼성SDS와 닮은 구석이 많다. 우선 상장 발표 시기가 비슷했고 지배구조와 얽혀 있다는 점도 같았다. 나란히 공모 청약에서 ‘대박’을 기록했고 헐값인수논란까지 함께 얽혀 있다.

지난 삼성SDS가 상장 첫 날 온갖 기록을 세웠던 것과 유사하다. 삼성SDS의 상장도 코스피 지수를 떨어뜨리는 효과를 낳았다. 단숨에 시총 5~6위권에 진입한 삼성SDS를 포트폴리오에 담기 위해 기관과 외국인이 다른 종목을 대거 매도하면서 코스피가 하락한 것이다. 코스피는 상장일 전날보다 0.78%(15.37포인트) 떨어진 1,945.14포인트에 거래를 마쳤다.

제일모직 상장 첫날 코스피 지수도 미국의 금리인상 우려에 더해 자금이 제일모직에 쏠리면서 몸살을 앓았다. 막판 낙폭을 대부분 만회했으나 한 때 1881.73까지 밀리면서 연중 최저치를 경신했다.

당일 코스피 거래대금에서 나란히 25%를 넘는 비중을 차지한 것도 닮은꼴이다. 삼성SDS 상장 당일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코스피 거래대금 5조원 가운데 삼성SDS물량이 약 1조 3400억원으로 코스피의 약 27%를 차지했다”며 “과거 삼성생명이 증시에 상장됐을 때 기록했던 1조 1000억원보다 더 많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제일모직도 상장되자 코스피 전체 거래대금의 26%를 차지했다

이밖에 높은 청약 경쟁률과 증거금 기록 경신, 공모가 선정 범위, 시초가 형성 등 많은 면에서 닮아 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헐값인수논란’을 함께 겪은 바 있고 이 부회장에게 수백배의 차익을 안겨준 ‘동지’라는 점이다.

이날 제일모직 상장으로 이 부회장이 48억원에 확보한 주식의 시장가치는 3조원을 넘어섰고, 삼성의 실질적 지주회사이자 자신이 최대주주인 제일모직을 통해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확실히 올라섰다. 이 부회장은 지난 1996년 제일모직(당시 삼성에버랜드) 지분 31.9%에 해당하는 전환사채(CB)를 인수하는데 들어간 자금 48억원으로 약692배에 달하는 차익을 거머쥐었다.

당시 제일모직은 삼성 계열사들을 상대로 CB를 발행했지만 계열사들이 인수를 포기하면서 이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등 이건희 회장의 자녀들에게 인수권이 넘어갔다. 이 부회장은 당시 제일모직 CB를 주당 7700원에 사들였는데, 당시 인수가를 18일 시초가와 비교하면 주당 약 14배의 상장차익을 거둔 셈이다.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사장이 거둔 차익도 만만치 않다. 두 사람은 각각 1045만6450주(7.75%)씩의 제일모직 지분을 보유중인데, 이날시초가 10만6000원 기준으로 할 경우 각자 1조1084억원어치의 주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3남매가 나눠가진 제일모직 주식은 총 5228만2400주(38.74%)로, 18일 시초가 기준 지분가치는 5조 5419억원에 이른다.

삼성SDS 상장 당시 불법 차익 환수 논란이 크게 일었다. 삼성SDS 상장 직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오너일가 3세들은 280배에 달하는 차익을 실현한 것으로 나타났고 이 부회장은 재계 4위 주식부자로 뛰어올랐다. 상장일 종가기준으로 이 부회장의 삼성SDS 보유지분(11.25%, 870만 4312주) 가치는 2조 8506억원에 달한다. 3.9%(301만 9959주)씩을 각각 보유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패션부문 사장도 각각 9886억원을 얻게 됐다. 이들 3남매의 총 지분가치는 4조 8280억원에 달했다.

당시에도 1999년 삼성SDS의 BW(신주인수권부사채)의 헐값 매입이 큰 화두가 됐다. 삼성SDS 등에 빠르면 이 부회장의 삼성SDS 주식 평균 매입가격은 1218원, 이부진·이서현 사장은 1628원이었다. 2009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및 이 전 부회장, 김 사장 등은 특검 재판을 통해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으나 이들의 이익은 환수할 방법이 없어, 정치권에서는 불법 시세차익을 환수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박영선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일명 ‘이학수 특별법’(불법이익환수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학수란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당시 헐값 매입에 동참한 김인주 삼성물산 사장(132만 2189주)과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320만여주)의 지분가치도 각각 4330억 1000만원, 1조 480억원에 이르게 됐기 때문이다.

삼성SDS와 제일모직의 차이점이 있다면 바로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다. 냉철하게 판단하면 삼성SDS는 지배구조와 관련이 없다. 보유하고 있는 핵심 계열사 지분이 없어 이 부회장이 언제든지 팔 수 있는 지분이다. 다만 지배구조 개편 및 경영권 승계에서 실탄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었고 사업 분야 역시 장밋빛 전망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제일모직은 지배구조에서 차지하는 ‘급’이 다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이 부회장은 계열사 지분 확보나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삼성SDS 지분을 팔 가능성이 높다”며 “반면 제일모직은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고 향후 지주사 전환이나 계열분리를 대비하기 위해 끝까지 보유할 주식”이라고 말했다. 사업 분야의 전망이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표 주가가 공모가의 두 배 이상까지도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 와병중인 이건희 회장이 건강을 회복중인만큼 삼성이 당장 지배구조 개편의 칼을 꺼내들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년 말까지는 경영권 승계가 구체적으로 윤곽을 드러낼 것이라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뉴시스

◆지배구조 개편 중심에 선 제일모직
이처럼 이 회장이 얻은 것은 막대한 상장차익 뿐만이 아니다. 그는 제일모직을 통해 사실상 삼성그룹 전체의 지배권을 거머쥐게 됐다. 삼성그룹은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와 삼성카드를 통해 다른 계열사들을 거느리는 형태의 지배구조를 띠고 있는데, 제일모직은 삼성생명 주식 19.34%를 보유한 2대주주다. 삼성생명 최대주주는 20.76%를 갖고 있는 이건희 삼성회장이다.

결국 제일모직 주식을 확보한 뒤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만 넘겨받으면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이미 제일모직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한 이 부회장으로서는 삼성SDS와 제일모직의 상장차익을 활용해 삼성생명의 지분을 확보하는 절차만 남겨둔 상태다.

현재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복잡한 순환출자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나 삼성물산·삼성생명 등을 활용한 지주사 체제전환 가능성은 그간 끊이지 않고 제기돼 왔다. 신규순환출자 금지법이 지주사에 각종 세제혜택을 제공하고 기업들의 지주사 전환을 장려하는 점도 삼성의 지주사 선택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준다.

이 부회장은 현재도 제일모직 지분으로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지배할 수 있지만 이 같은 지배구조는 금산분리 강화 흐름과 부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정한 한계를 지닌다. 이 때문에 삼성이 선진 지배구조 구축을 요구하는 사회적 흐름에 맞춰 지주회사 전환을 대안으로 적극 검토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이다.

이같은 점에서 이날 제일모직의 상장이 순환출자구조의 본격적인 해소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날 제일모직이 상장하면서 몇 개의 순환출자고리가 사라져 이같은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제일모직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대주주(지분율 23.2%)로 올라 있는 유일한 삼성 계열사다. 게다가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전기·SDI·물산-제일모직으로 이어지는 삼성 지배구조의 중핵이기도 하다.

삼성은 지난해 12월부터 계열사 합병을 통해 당시 30개에 달하던 그룹 내 순환출자 고리를 14개로 줄여 왔다. 여기에 이날 제일모직 상장을 통해 이를 다시 10개로 줄였다. 제일모직 상장 과정에서 삼성카드가 보유 지분 5% 전량을 매각하면서 ‘생명→카드→제일모직→생명’과 ‘생명→전자→카드→제일모직→생명’ 등 네 개의 순환출자 고리가 동시에 사라졌다.

삼성SDI가 보유 지분 절반(4%)을 남겨놓기는 했지만 향후 해당 지분을 마저 처분할 경우, 추가로 순환출자 고리가 끊어진다. 아울러 삼성전기도 제일모직 지분 4%를 처분에 나서면 순환출자 고리는 더 줄어든다. 비금융계열사끼리, 또는 비금융계열사과 금융계열사 간에 얽혀 있는 순환출자 고리가 사라질수록 삼성그룹으로서는 향후 지주사 전환 과정이 보다 수월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삼성전기(3.7%), 삼성SDI(3.7%), 삼성물산(1.4%)이 보유한 제일모직 지분을 매각하면 순환출자 고리는 ‘물산→전자→SDI→물산’ 1개만 남고 이후 이 고리만 끊어내면 순환출자 정리가 끝난다. 삼성은 구체적인 시나리오에 대해 모두 부인하고 있지만 향후 2~3년 내 이 작업을 마무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제일모직이 상장돼 있으면 계열사들이 지분을 매각할 때 헐값 매각 논란이나 특혜 시비를 피할 수 있어 지분 매각이 훨씬 수월하다”고 말했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지주사 전환의 유력한 시나리오는 제일모직 상장 이후 삼성전자를 분할한 뒤 제일모직과 합병하는 것이다.삼성전자를 투자담당 지주회사(가칭 삼성전자홀딩스)와 사업을 맡는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하고 삼성전자홀딩스와 제일모직을 합병해 삼성 지주사를 출범하는 방식이다.

삼성전자가 대규모 자사주 매입에 나선 점도 지주사 전환 가능성을 부추기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조원대 자사주를 매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해 시장에서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삼성의 대규모 자사주 매입은 7년 만의 일이다. 자사주 매입이 끝나면 삼성그룹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29.85%(계열사·특수관계인 17.63%+삼성전자 자사주 12.21%)까지 올라간다.

자사주는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지렛대 역할을 한다. 자사주는 통상 의결권에 제한을 받으나 삼성전자가 홀딩스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을 하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분할 과정에서 자사주를 투자회사에 귀속시키면 의결권이 부활하기 때문이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인적분할 때 자사주를 지주회사에 주면 의결권이 부활해 사업회사에 대한 지분율을 높일 수 있다”며 “큰 돈을 들이지 않고 삼성전자가 지주사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삼성전자 투자회사와 사업회열사의 분할 비율을 2대 8, 제일모직과 삼성전자 투자회사의 합병비율을 1대 3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이 부회장의 경우 현재 삼성전자 지분이 0.6%에 불과하지만, 제일모직과 삼성전자홀딩스가 합병하게 되면 7∼8%대의 지분을 확보할 것으로 점쳐진다.

◆남은 건 ‘칼’ 빼들 시기뿐
이미 제일모직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한 이 부회장으로서는 상장차익을 활용해 삼성생명의 지분을 확보하는 절차만 남겨두게 됐다. 삼성SDS가 상장하기 전부터도 여러 시나리오가 제기된 바 있으나 당장 지배구조 개편의 칼을 꺼낼 것으로 보고 있는 전문가들은 많지 않다. 게다가 제일모직과 삼성SDS의 상장으로 10조원에 달하는 차익을 거둔 점 때문에 당장 주식을 처분해 지배구조 개편에 착수한다면 거센 비난에 직면할 것이 뻔하다.

따라서 재계는 이건희 회장이 건강을 회복중인 만큼 이 부회장이 향후 절차를 서두르기 보다는 사업구조 재편 등 다른 작업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제일모직 상장으로 삼성그룹 승계를 위한 굵직한 밑그림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한동안은 계열사 합병과 매각, 신사업 발굴 등 이재용 시대의 삼성을 만드는 일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반면 내년 초부터 삼성의 승계작업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 시각도 있다. 이 부회장의 삼성화재 지분 취득과 삼성SDS상장, 삼상테크원, 삼성종합화학 매각, 삼성전자 제일기획 자사주 매입 까지 한 달 사이에 벌어졌다는 점 때이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은 무산됐지만 내년 합병을 재추진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한 증권 관계자는 “제일모직 상장이 완료되면 내년부터는 삼성그룹과 계열사 내 지분 이동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며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시나리오는 워낙 많지만 시장에서는 내년안에는 경영권 승계가 마무리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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