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연인 조승우와의 호흡에 이어 정신지체아가씨로 변신한 강혜정

친부(親父)와 정사를 치러야 했던 ‘올드보이’의 미도, “50만원만 줘요, 자 줄게”라고 도발하는 ‘연애의 목적’의 홍, 그리고 “내 참 빨라”라고 무구한 웃음을 짓는 ‘웰컴투 동막골’의 여인까지··· 지금까지 강혜정은 ‘불량’과 ‘백치’사이를 왕복해왔다. 극단을 가로지르는 그녀의 캐릭터는 스물네 살 나이에 비해 도드라진 서명을 충무로에 새겼지만, 동시에 일상 속에서의 강혜정 연기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것도 사실이다. 그런 강혜정이 그 동안 트레이드마크였던 비일상적 캐릭터로부터 한층 현실 속으로 가까이 와 있다. “옛날에는 ‘이건 영화야, 이거거든’하는 생각이 딱 드는 굵고 센 영화들, 역할들이 좋았어요. 근데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을 치유해주는 영화가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됐어요. 제 전작들과는 느낌이 좀 다르지만, '도마뱀'은 사람들을 치유해줄 수 있는 영화예요.” 강혜정이 굳이 ‘치유’라는 단어를 쓴 건, '도마뱀'이 사랑의 현실에 지친 관객들에게 순수한 사랑에 대한 따뜻한 판타지를 불러일으킨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인 듯했다. ♥ 조승우와 연인 연기할 줄 몰랐어요··· 그를 '도마뱀'에 참여하게 한 조승우는 연인이기에 앞서 배우로서 강혜정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조승우씨의 연기를 처음 본 건 영화 '하류인생'에서였어요. 'YMCA 야구단'에서는 설마 저 사람인 줄 상상도 못했어요. 괴물 같았어요. 아직 연인이 되기 전이였는데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보면서 저 사람 정말 연기가 무섭다고 생각했죠. 이성을 가지고 있는 짐승이라고 느꼈어요." 18년 동안 한 여자를 좇는 남자와 18년 동안 한 남자만 그리워하는 여자의 로맨스로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고 그저 사랑하기만 하는 순수한 연인의 이야기 도마뱀, 실제 연인으로서 조승우가 조강의 역할을 해주느냐고 묻자 "승우오빠는 요… 그렇죠. 조강 같은 면이 많아요. 그런데 실생활의 모습이 영화에 도움이 되진 않았어요. 오히려 '배우 조승우'의 놀라운 집중력이 제게 많은 영감을 줬어요. 가령 키스를 하는 장면에서 감정 조절이 쉽지 않았는데 오빠가 가이드하는 대로 따르니 장면이 확 살더라구요.”라며 치켜세웠다. ♥ 가진 게 없는 사람은 '독기'라도 있어야 다양한 캐릭터의 주인공 강혜정이 새 영화 '허브'에서는 7살 정신지체 3급의 아가씨로 변신한다. 또 다시 비 일상의 배역. '작품은 운명 같은 인연'이라는 스스로의 표현대로 강혜정에겐 정해진 배우의 길이 따로 있는 것일까. 쉼 없는 강혜정에게 연기는 생을 관통하는 그 무엇이였다. "나문희 선생님이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하셨다고 해요. 그런 대배우임에도 작가나 감독님이 어떤 것을 요구하면 다른 사람이라면 "어, 무슨 이야기인 줄 알았어"라고 할텐데, 선생님은 "응, 고민할게. 노력할게"라고 하신데요. 그 말이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울컥했죠. 아직도 더 높은 곳을 보신다는 생각, 평생 나도 그러려고 해요." 작은 체구의 그녀에게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연기를 삶으로 바라보는 여유의 강함이 느껴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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