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 판결 이후에도 고통 가시지 않아’

▲ 계부로부터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썼던 편지 원문.

프롤로그

초등학교 2학년 때 땡볕 아래서 체육 시간을 마치고 교실로 들어와 물을 마시려고 하는데 받아놓은 식수가 동이 났다. 시간을 보니 수업 종 칠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수돗가에 갈 수도 없었다. 그런데 플라스틱 컵 하나에 물이 찰랑찰랑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얼씨구나 하고 들이마셨다고 한다. 

마시다 말고 그는 도로 토해내고 말았다. 누군가 컵 안에 독한 세제를 담아 놓은 것이었다. 일부는 이미 위장 속으로 들어간 뒤였다. 이 일 이후 그는 물은 항상 수돗가에서 마셨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목구멍을 훑고 내려가던 그 세제의 칼칼한 느낌과 냄새가 사라지지 않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이 불편해졌다. 차차 물에 대한 공포심까지 생겨 수영장이나 사우나탕 등도 멀리하게 됐다고 한다. 남들에게 그 연유를 얘기하면 뭘 그딴 것 가지고 그러느냐며 오히려 핀잔을 받았다고 한다.

설명하기 힘들고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상처 같은 게 있다. 특히 성범죄 피해자는 그 범죄의 특성상, 남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홀로 감내해야 한다. 이 괴로움은 오랜 기간에 걸쳐 피해자의 정신과 마음을 파괴한다. 따라서 아동 성범죄 관련 재판은 다른 범죄 심리와는 차별화된 피해자의 마음을 짚어가는 섬세한 판결이 요청된다. 

성추행 피해자가 보내는 대통령 앞 전상서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님께
저는 **여자 중학교 3학년 정성희(가명)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의붓아빠께 3년간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한달이면 20번 넘게 의붓 아빠께 불려가서 뽀뽀하자면서 제 입속에다 혀를 넣었고
저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닦으면 아빠 침은 깨끗하니깐 삼켜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새 아빠는 저의 가슴을 만졌고 제가 아프다고 하니깐 저의 가슴을 빨았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끼칩니다.
저희 언니도 입속에다 혀 넣고 언니의 가슴을 만진 적도 있습니다.
저는 지금 신경정신과에 입원중입니다.
대통령님
제발 도와주세요.
저희 엄마도 10년 넘게 성폭행을 당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4년째 우울증 약을 드시고 계십니다.
저희 오빠도 우울증으로 병원에 다닙니다.
지금도 저는 악몽을 꿉니다.
저희 가족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살려주세요 정말 억울합니다. 새 아빠가 감옥에 보내주세요.
저도 너무 힘듭니다. 저는 이제 미래도 희망도 없습니다.
새아빠를 제발 감옥에 보내주세요.
대통령이시면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으시잖아요.
(…)

성추행 피해 아동 학생의 증언의 신빙성

정성희 양은 의붓아버지로부터 3년간 성추행을 당했다. 최초의 피해를 입었다고 했을 때의 나이는 10살이었다.

다음은 관할 검찰청에서 2012년 의붓아버지 피고인에 관해 작성한 공소사실 기록 내용이다. 현재 이 사건과 관련해 두 건의 재판이 진행 중인 점과 피해자들의 추가 피해 방지를 위해 관련자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바꿨을 뿐 나머지는 그대로 인용했다.

피고인은 사실혼 관계에 있던 이진숙(가명)의 딸 피해자 정성희(여, 현재 12세)와 의붓아버지와 딸의 관계이다. 피고인은 의붓딸인 피해자가 어릴 때부터 같이 살면서 피해자가 피고인을 아버지로 따르는 것을 이용하여 피해자를 추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가. 피고인은 2009, (주소지 생략) 피고인의 주거지 안방에서 의붓딸인 피해자 정성희에게 물을 가지고 오라고 시킨 후 물을 가져온 피해자에게 “아빠 뽀뽀”라고 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뽀뽀하게 한 다음 피해자가 뽀뽀를 하면 혀를 입안으로 넣고, 손을 피해자의 옷 속에 집어넣어 가슴과 엉덩이를 만졌다.“

공소사실에 보면 피해자 정성희에 대해서 2010, 1011년 비슷한 가해를 가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피고인의 뜨거운 손길은 앞서 정성희의 언니 명희(가명) 양에게도 향했다. 다음은 공소사실 기록이다.

가. 피고인은 2005년. 여름경 (주소지 생략) 피고인의 주거지 안방에서 피해자 정명희(여, 16세)에게 물을 떠오라고 시켜 물을 떠온 피해자에게 ‘아빠 뽀뽀’라고 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뽀뽀하도록 한 다음 피해자가 뽀뽀를 하면 혀를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나. 피고인은 2009.6.~7.경 이진숙이 친구를 만나러 **에 간 사이에 피해자 정명희(여,20)에게 연락하여 저녁식사를 못했으니 와서 저녁식사를 해달라고 불렀다. 피고인은 같은 날 22:00경 (중략) 피고인의 주거지 안방에서 오뎅주머니를 사가지고 와 상을 차린 피해자 옆에 앉은 다음 피해자의 어깨를 팔로 감아 손이 피해자의 가슴에 닿자 잡을 듯이 만지는 동작을 피해자가 엄마 전화 핑계를 대고 일어나 나올 때까지 5초 정도 계속하였다.

두 피해자의 어머니 이진숙은 사실혼 관계에 있던 피고인의 추행 사실을 알고 부부싸움을 자주 하게 됐다. 그러던 2011년 피고인은 이진숙의 머리채를 양손으로 잡고 흔들어 방바닥에 넘어뜨리고 목을 조였다. 이 폭행으로 피해자는 약 2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상해를 입었다.

이 일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은 **지방법원 **지원에서 ‘징역 2년 6월 및 자격정지 1년에 처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피고인과 검사는 각각 이에 불복, 항소했다. 올해 초 **고등법원의 판결문에 나온 항소 이유를 보면:

피고인은 피해자들이나 피해자들의 어머니 등의 진술이 모두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했고, 검사는 원심의 형이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는 이유로 항소했다.

피고인의 항소 이유는 아동 성학대 범죄에서 가해자가 자신의 범행 사실을 부인할 때 흔히 들고 나오는 논법이다. 아동 성범죄 가해자 측은 피해 아동의 미성숙한 점을 들어 진술의 신빙성을 문제 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성범죄의 특성상 피해자의 진술의 신빙성이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 판결 과정에서 악용되면 피해자의 고통이 연장, 심화되게 마련이다.

2012년 이 사건 피해자 진술에 대한 검증에 들어갔다. 다음은 관할지방법원에서 피해자를 상대로 작성한 검증 조서의 일부다. 재판 검증팀이 질문하면 피해자가 답변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이를 보면 피해 아동의 진술이 어른들의 선입견과는 달리 나름대로 일관성과 논리성을 갖추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재판부 소속 검증팀과 피해자 간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문. 이제 아빠 일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물어볼게. (…) 이 일이 최근에 있었던 게 아니고 예전에 있었던 거잖아, 그런데 갑자기 그때까지는 아무 얘기가 없다가, 너무 갑자기 고소를 하게 됐어, 왜 그 전에는 이런 얘기를 누구한테 한 적이 없어?
(…)
답. 그냥 다른 아빠들도 그런 줄 알고요. 저는 쉽게 그냥 넘어가 버리고 그런 일이 있으면 그냥 넘어가고 아빠가 가끔씩 용돈도 주시고 그러거든요. 엄마 몰래 주시고 돈 주면서 말하지 말라고 그러셨거든요, 그래가지고.
(…)

문. 그러면 언제 ‘아빠가 나한테 하는 행동이 좀 이상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
답. 뽀뽀할 때요. 혀 넣은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싫어요, 그게. 아빠는 저한테 침 삼켜도 된다고 막 그러시는데 저는 그게 싫어요, 더러워요 그런 게. 남의 침을 막 그렇게 삼키는 게 굉장히 싫잖아요.
(…)

문. 얼마나 자주, 만약에 한 달로 쳐볼까? 한 달에 몇 번 정도나 아빠가 그렇게 뽀뽀 하자고 했지?
답. 거의 매일요.
(…)

문. 그럼, 거의 매일. (…) 아빠가 부르면 안 갈 수는 없어?
답. 안 오면요 뭐라고 해요.

문. 뭐라고 하시는데?
답. 서운하다고 해요. 막 그러면서 아빠가 부르는데 왜 안 오냐면서 그래요.
(…)

문. 아빠가 그렇게 만질 때 아빠는 어떻게 했어? 일단 너무 여러 번이니까 아빠가 처음 혀를 집어 넣고 뽀뽀 한 날에 아빠가 누워 있었어? 아니면 앉아 있었어?
답. 누워 있을 때요. 누워 있을 때 아빠가 배 위로 올라오라고 했어요. 배 위로 올라갔어요.
(…)

문. 그러면 만질 때 바닥에 엉덩이 다 닿게 앉아 있었어?
답. 무릎 꿇고 엉덩이 위로 올리고

▲ 피해자의 심리상태에 대한 전문의 소견서.
 

항소심 집행유예 5년 판결…법리에 맞나

고등법원은 항소심에서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에게 징역 3년 및 자격정지 2년에 처한다. 다만, 이 판결 확정일부터 5년간 자격정지 2년에 처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 나름대로 법리에 입각해서 선고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과연 이 판결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실형을 피한 성추행 범죄자는 거리를 활보하며 잘 살고 있다고 한다. 피해자들은 마음에 억울함과 한이 남아 아직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이런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피해자와 가족들이 있을까?

시민모임 발자국은 지난 6월 이 판결에 대한 의견서를 통해 “파렴치한 범죄자에게 엄중한 국가형벌권을 행사해야 할 검사는 일부 중한 범법 사실에 대해 잘못 의율하여 공소를 제기하고 1심과 항소심 재판부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인정하고도 공소사실을 변경하도록 적극적으로 석명권을 행사하지 않았고 불합리한 양형을 적용하여 나이어린 피해자들을 4년의 기간 동안 6회에 걸쳐 강제추행한 계부에게 집행유예라는 경미한 판결을 하였습니다”라고 비판했다.

<우창> 법률사무소의 윤석희, 선지현 변호사는 지난 5월 의견서를 통해 “존경하는 대법관님, 피고인은 자신의 범죄를 전혀 반성하지 아니하고, (피해자의 어머니가) 돈 때문에 피해자들을 이용하여 자신을 추행으로 고소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육체적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여아들이 성추행을 당했다는 이 사건 본질을 흐리고, 진실을 은폐하고 있습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들의 어머니는,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두 딸에게 여성으로서 지우지 못할 상처를 준 것은 아닌지 괴로워하며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특히, 피해자 *** 양은 이제 성적으로 예민한 시기인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4년째 미술치료를 받고 있기는 하나, 너무 어린 나이에 충격적인 일을 겪은지라 앞으로 평범한 여자로 살아갈 수 있을지 너무나 걱정이 됩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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