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걸작'이 이를 수 있는 최고지점

"반지의 제왕" 3부작이 영화사에서 차지할 수 있는 즉각적인 위치란, 많은 비평가들의 열화와도 같은 격찬을 뒤로하고, 주로는 마케팅적 측면, 프로덕션상의 측면에 국한되어 있다. 과연 '미완의 이야기가 1년에 한 편씩 등장하는' 위험스런 공개패턴이 망각적 성향이 강한 영화관객들에게 적용될 수 있을까, 그리고 3시간대의 서사 엔터테인먼트가 데이비드 린의 전성기 이후 40여년 만에 다시금 부활할 수 있을까. 이런 제한된 측면에서 보았을 때 "반지의 제왕" 3부작은 놀랄만한 성취를 거두었고, 너무나도 위험한 도박에 성공한 것이기에 그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힘들 듯한, 대단히 독보적인 업적을 남겼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3부작이 가질 수 있는 '즉각적인' 영화사적 위치이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조금 더 나아가, 영화라는 쟝르의 속성과 미래를 내다보는 시선을 추가시킨다면, "반지의 제왕" 3부작은 '서사 엔터테인먼트'의 가능성을 그 한계까지 실험한 대담무쌍한 시도였으며, 영화라는 쟝르가 지닌 복합적인 기능을 동시다발적으로 증폭시켜 지난 수년 간 안이한 방향으로 진행되던 엔터테인먼트 영화에 새로운 답안,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기념비적인 프랜차이즈의 종장인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편은 3부작을 통털어 가장 완성도 높은 구조와 프로덕션 통제를 이룩해낸 케이스이자,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에픽에 어울리는 가장 이상적인 마무리로 칭찬하고픈 작품이다. "왕의 귀환" 편은 "반지원정대"와 "두개의 탑"이 지닌 각각의 특성을 결합시킨 듯한 영화이다. "반지원정대"의 경우 50년대 고전 서사극이 지니고 있던 패턴,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모험적인 시도로 여겨지는 패턴인 '중심사건을 설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플롯의 진행만 이루어진' 전면적 스토리텔링에 도전한 케이스로 여겨지며, 반면 "두개의 탑"은 이와 정반대로, 3시간에 이르는 상영시간에 비해 현격히 제어된 플롯 전개량을 지니고 액션과 상황묘사만으로 관객들의 흥미를 이끌어내는 테크닉에 도전한 케이스로 여겨진다. "왕의 귀환" 편은 바로 지난 2편에 걸친 이 두 갈래의 방향성을 동시에 취한 모습이며, '막대한 전개량'과 '막대한 액션 묘사량'을 프랜차이즈 중 가장 긴 상영시간을 통해 면밀히 소화하고, 지난 두 편의 성격을 함께 끌어안은 채 "반지의 제왕" 원작이 지닌 다면적인 성격을 일축해내고 있다. "왕의 귀환" 편이 단점없는 완벽한 걸작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3시간 반에 이르는 상영시간을 거머쥐고도 미처 소화해내지 못한 요소들도 분명 존재한다. 주로는 인물의 성격화와 이에 따른 인물 간의 관계설정에서 몇몇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특히 에오윈과 아라곤의 관계변화는 거의 우스꽝스러워 보일 정도로 간략화되어 이해조차 되지 않을 정도이며, 띄엄띄엄 등장하는 아웬과 아라곤과의 관계도 감정이입의 맥이 끊긴 상태로 비약되어 설득력을 확보해내지 못한다. 스미골의 성격화 역시 이야기 초반에 배치된 '과거시제의 전개' 탓에 오히려 혼란스러운 느낌을 주며, 사루만의 '의도된' 부재도 어딘지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반지'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모두 끝나고 난 뒤, 사족처럼 붙어있는 호빗들과 샤이어의 에피소드들은 그 자체만으로 보았을 때 이야기의 거대한 틀을 천천히 아우르는 좋은 효과를 낳고 있지만, 지나치게 빈번한 상황종료적 설정의 반복과 이야기의 성격상 그닥 어울리지 않는 감정의 과잉 등으로 인해 집중된 정서의 폭을 무리하게 넓히고, 또 흐트러뜨리는 역효과를 낳고 말았다. 그러나 이런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왕의 귀환" 편은 대단한 작품이다. 프랜차이즈의 종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한 편의 구분지어진 영화로도 충분히 호감을 사며 그 존재이유를 명확히 하고 있는 작품이다. '펠레노 평원'에서 펼쳐지는, 메머드와 검투사들, 그리고 죽은 자들의 영혼이 한데 어우러진 어마어마한 액션 씬을 보라. 프로도, 샘와이즈와 생사의 격투를 벌이는 거대한 거미 셸롭과 마치 서치라이트처럼 불빛을 뿌리며 감시하는 사우론의 '눈'은 또 어떠한가. 이토록 원작 그대로의, 오히려 원작보다도 더 펄프적인 감수성을 마음껏 과시하고 있어도, 이는 피터 잭슨이 설정한 특유의 진중한 톤과 톨킨이 설정한 주제의 무게감을 동반하여, 독특한 무드의 독특한 세계관을 새롭게 형성해내고 있다. 그리고 1편에서 프로도, 2편에서 아라곤, 그리고 3편에 이르러서는 샘와이즈를 통해 각 편의 주제와 중심을 대변시킨 아이디어는 각 편의 개성과 방향을 뚜렷이 해주었을 뿐 아니라, 다각적인 원작의 전체 주제를 '세차례의 과정을 통해' 귀납적으로 거둬들이는 데 확실한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피터 잭슨과 재능있는 각본팀은 톨킨 원작의 성격을 확실히 파악했을 뿐 아니라, 이를 영화로서, 그리고 '3부작 영화'로서 풀어나갈 방법에 대해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그 뛰어난 상상력으로, 두 눈을 멀게하는 화려한 비쥬얼로, 사방으로 뻗은 전개과정을 통해 얻어질 수 있는 무게감으로 관객을 철저하게 압도하고 있는 이런 작품에 대해, 소소한 단점들과 실수, 잘못된 계산 등을 언급하는 것은 오히려 적절치 못한 일일 수도 있다. 이 영화는 이미 관객들을 '전혀 다른 곳'으로 인도해내는 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극장의 비좁은 좌석에 앉아서도 백일몽을 꿀 수 있었고, 큰 정서적 감흥을 얻었으며, 아마도 영원히 이 영화가 보여준 세계를 잊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화가, 더 나아가 모든 예술이 꿈꾸는 '상상의 이입'이 가장 이상적으로 이루어진 예가 아닐까.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편은, 앞서 언급한 단점들, 불완전한 면모 탓에 불후의 걸작으로 남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세기 동안 이처럼 '위대한 경험'을 안겨준 많은 불완전한 영화들이 그러했듯, 관객들 품에 오래토록 남아 지속적인 사랑을 받을 것임에 분명하며, 결국 영원한 '관객들의 클래식'으로 자리잡아 '역사에 기록될 영화'를 뛰어넘는 또다른 영역을 확보해낼 것임에 분명하다. 이문원 기자 fletch@empal.com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