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성 총리 탄생…"2006판 정치권 4·19혁명"

지방선거 중립내각 첫 시험대… 靑, 힘 실어줄듯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총리인 한명숙 총리체제가 출범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58년만에 탄생한 첫 여성총리는 타 분야에 비해 여전히 여성의 참여가 저조했던 정치분야에 여성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헌정사의 새장을 연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벌써부터 한 총리가 여성 특유의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경직된 당·정·청 관계와 대야 관계를 원만히 풀어나가는 국정운영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국회는 4·19 혁명 45돌인 19일 본회의를 열고 한명숙 총리 내정자 임명동의안에 대한 무기명 찬반 투표를 실시해 찬성 182표, 반대 77표, 기권 3표, 무효 2표로 가결처리 했다. 그러나 한 총리의 앞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한 총리 "여·야 온 국민과 함께 어울림의 항해를 하자" 한명숙 총리는 임명동의안이 통과되자 "국민들의 애정과 성원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야당과 여당, 모든 국민들이 타고 있는 대한민국호가 균형잡힌 어울림의 항해를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 총리는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 종료 후 개최된 열린우리당 의원총회에 참석, "첫 여성총리로서 대한민국호가 나아갈 때 어울림의 항해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한 총리는 이날 표결 결과에 만족한 듯 "대한민국의 첫 여성총리라는 역사적 자리에 서게 된 데는 국민들의 애정과 성원이 뒷받침됐다고 생각해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다소 상기된 목소리로 인사말을 시작했다. 한 총리는 지명 과정에서부터 임명 동의안 표결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지원해준 당에도 감사의 뜻을 전한 뒤, 청문회 자리에서 국민들을 향해 "이견이 있다고 해도 화합하고 조정해나가는 어울림의 항해를 해야 한다"며 통합의 리더십 발휘를 강조했다. 이를 위해 한 총리는 우선 눈앞에 닥친 5·31 지방선거를 깨끗하고 엄정하게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면서, "선거기간 동안에는 위기라든지 급박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당정협의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 총리는 "이제 제가 총리를 얼마나 잘 하느냐가 우리나라가 잘 되느냐, 또한 우리당이 얼마나 지지를 받느냐와 연계돼 있다고 본다"는 말로 당과 국민의 변함없는 지지와 성원을 호소했다. 2◆5·31 지방선거 첫 시험무대 한 총리의 첫 시험 무대는 불과 40여일 앞으로 다가온 5·31 지방선거가 될 전망이다. 한나라당이 한 총리가 지명된 후 줄곧 당적이탈을 요구해온 것이나 한 총리가 청문회에서 "공식선거운동 기간 중에 당정협의를 일절 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지방선거 문제는 돈 안쓰는 선거 풍토가 비교적 정착되고 있지만 끊이질 않는 공천비리 의혹과 여야의 폭로전이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다. 양극화 해소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속도를 내고 있어 농민과 노동자의 불안감도 점차 고조되고 있다. 여기에 최근 불거진 독도 주변해역 탐사 문제와 역사 교과서 왜곡 등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 가능성, 좀처럼 개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북핵 문제 역시 부담이다. 여기에 강력한 카리스마로 공직사회를 완전 장악했던 이 전 총리의 빈자리를 메워나가는 것도 당면 과제다. 5선 의원의 관록과 여당 정책위의장을 지낸 정책통인 이 전 총리에 비해 한 총리의 무게감이 다소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또 인사청문회를 통해 국정운영 능력에 대한 확실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고, '정권 말기의 레임덕'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서둘러 잠재우는 것도 급선무다. ◆'부드러운 카리스마' 야당에도 통할까? 한 총리는 헌정사상 첫 여성총리는 상징성 외에도 향후 여야 관계는 물론 국정운영에도 많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우선 참여정부 출범이후 줄곧 대립각을 세웠던 여야 관계에 화해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대변되는 신임 한 총리의 스타일이 여야 관계에서도 빛을 발할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여야 화해 분위기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도 이미 감지됐다. 한 총리는 "한나라당은 국민이 뽑은 제1 야당으로 존중한다"며 이 전 총리와는 다른 색깔을 나타냈다. 과거 박근혜 대표를 '독재자의 딸'이라 언급한데 대해서는 "표현 자체는 적절치 않았다. 유감을 전하고 싶다"며 사과하기도 했다. 한 총리는 또 한나라당의 끈질긴 탈당 요구를 받아들이진 않았지만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다. 법정 선거운동 기간에 당정협의나 공약발표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 야당의 체면을 세워줬다. 야당을 국정운영의 한 파트너로 인정하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띄었다. 한 총리는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기초연금제에 대해 "좋은 취지이지만 기초연금제가 전반적으로 실시될 경우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며, 현실적으로 도입이 가능한 지에 대해서는 협의과정에서 할 수 있다고 희망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책임총리제 유지되나 노무현 대통령은 대부분의 내치를 사실상 이해찬 전 총리에게 맡겨왔다. 8·31부동산 대책과 같은 핵심 정책에서부터 검·경 수사권 조정이나 방폐장 부지 선정 문제와 같은 주요 갈등 현안까지 전부 총리실 주도하에 처리토록 했다. 올초 대통령이 중점정책으로 거론한 양극화 해소대책과 일자리창출, 부동산 후속대책 등도 이 전 총리가 사퇴하기 전까지 직접 챙겨왔다. 분권형 책임총리제가 1년 반정도 지속되면서 시스템이 이미 굳혀져 한 총리 체제 이후에도 기존 기조가 그대로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여성 총리 부임 이후 총리에게 힘이 실려진 현 체제를 바꾸기에도 부담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청문회 과정에서 일부 노출됐듯 한 총리가 아직 국정에 대해 꼼꼼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예전과 같은 힘 있는 총리실 체제를 굳히는 데에는 꽤 시일이 걸릴 수 있다. 노 대통령과 이 전 총리의 경우 총리가 되기 십 수년 전부터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왔고, 총리 부임 이후에도 거의 매주 식사를 함께 하는 등 강한 스킨십을 유지해왔다. 한 총리의 경우 이런 점에서 상대적으로 미흡해 앞으로 대통령의 의중을 읽거나 청와대-정부간 조율자로서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또 이 전 총리는 부처간 갈등이 있거나 정책추진이 제대로 안되면 회의석상에서 장·차관들에게 격노하기도 하는 등 특유의 카리스마로 공무원들을 휘어잡은데 반해, 부드러운 이미지의 한 총리가 부처간 이견을 원만히 조정해낼지도 의문이다. 일각에서는 하반기로 접어들면 청와대가 집권말 레임덕(권력 누수현상) 등을 감안, 지금처럼 총리실에 내치 전반을 도맡게 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여성 운동의 대모(大母) 한명숙은 누구? 올해 63세로 평안남도 평양출생인 한명숙 총리는 민주화 운동과 여성운동의 대모로 불리는 여성계의 거목이다. 유신통치 막바지에 정보 당국에서 고문을 당했던 여성운동가가 총리가 됐다. 19일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통과, 헌정사상 첫 여성총리가 된 한 총리는 이화여대 재학시절 서울대와의 학생연합단체 '경제복지회'에서 만난 남편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의 영향의 영향을 받아 사회운동에 눈을 떴다. 특히 박 교수가 결혼 6개월여만인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구속되자 한 총리의 인생도 변했다. 이화여대 사감이었던 한 총리는 1970년 학생들의 시위를 지원한 것이 문제가 되자 직장을 그만두고 '크리스챤 아카데미'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여성운동을 시작했다. 한 총리는 소외여성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는 여성사회간사로 활동했지만, 1979년 다른 간사들과 함께 체제 비판적인 각종 이념서적을 학습하고 반포한 혐의로 구속됐다. 2년간 옥고를 치르고 풀려난 한 총리는 진보적 여성운동의 조직화를 목표로 이화여대 여성학과 대학원에 진학했고, 1987년에는 전국 20여개 여성단체를 한데 묶은 '한국여성단체연합'을 결성하는데 성공했다. 1993년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로 선출되면서 여성운동의 대모자리를 굳힌 한 총리는 지난 1999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창당한 민주당 비례대표로 '제도권' 정치에 입문했다. 2001년에는 여성부 초대장관으로 자리를 옮긴 한 총리는 참여정부 출범 직후 환경부 장관으로 임명된 한 총리는 17대 총선 직전 장관직을 사퇴한 뒤 우리당에 입당해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고, 지역구(고양 일산갑)에서 한나라당의 거물 정치인이었던 홍사덕 전 의원을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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