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칠나무 뿌리나눔 행사

 나눌수록 커지는 마음의 미학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는 조선 영조시대에 삼수부사를 지낸 유이주(柳爾冑)라는 분이 세운 운조루라는 집이 있다. 지금은 중요민속문화재로 관리되고 있는데 이 운조루에는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상징인 쌀뒤주가 유명하다.

99칸의 대저택을 자랑했던 운조루 앞에는 쌀 두말 정도가 들어가는 뒤주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뒤주에는 누구라도 마음대로 이 뒤주를 열 수 있다는 뜻의 타인능해(他人能解)’란 글귀가 새겨져 있었고 항상 쌀을 가득 채워두었다. 누구든지 필요한 사람은 그 뒤주를 열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도록 한 것이었다. 참으로 넉넉한 마음이고 멋진 삶이다.

유씨 가문의 쌀뒤주이야기를 꺼내는 건, 그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나름 타인능해의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본가 주변에 철따라 비파, 앵두, 버찌, 무화과, , 석류, 유자, 모과, , 포도 등 과일이 열린다. 채전 밭에는 항상 풍성한 먹을거리가 자라고 있다. 우리 가족이 먹고 남으니 두루 나눠먹으려 한다. 이런 마음에 더하여 집에 울타리는 있지만 수기나무로 심어져 있을 뿐이고 대문이 없는 관계로 지인들 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객들까지도 들어와서 자연스럽게 채소며 과일들을 따간다. 어떤 때는 주인이 없어도 차를 대 놓고 마구 따가기도 한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가져갈 땐 좀 황당하지만, 가져갈만한 사람이 가져갔겠거니 맘먹는다. 그런데 나무를 통째로 잘라가거나 캐가는 경우는 용서하기 힘들다.

 

어느 날 집에 오니 화단에 심어진 수령이 족히 100년 된 유자나무가 뭉텅 베어져 버렸다. 이 유자나무는 풍채가 좋아서 누추한 시골집의 품격을 높여주기 때문에 무척 귀하게 여긴 나무였기에 그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나무가 워낙 크니 연로하신 아버님이 유자를 따기가 어려워 집에 온 유자 수집상에게 나무 채 파셨다고 한다. 아버님께서 외출하여 돌아와서 보니, 수집상이 높은 곳의 유자를 따려고 가지들을 댕강댕강 잘라버렸다고 했다. 유자나무는 멋진 본래의 풍채는 없어지고 뭉툭한 기둥이 되어 있었다. 너무나 속상한 일이었지만 아버님께서 내년에는 유자가 더 잘 열리고 유자 따기도 수월할 것이라고 하시니 그냥 넘어갔다. 그러나 이듬해 봄, 유자나무는 잎눈을 틔지 못하고 죽어 버렸다. 생장점들이 모두 잘려 나갔기 때문이었다.

 

지난봄에는 30년생 황칠나무 세 그루가 밑동이 잘려진 채 사라졌다. 황칠나무는 보통 10년생 이상이면 황칠을 분비하기 때문에 30년생은 가격도 만만치 않은데 도둑을 맞은 것이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황망해 하다가 포클레인을 불러 뿌리를 팠더니 1톤 트럭으로 가득 찼다. 특히, 황칠나무는 나무 인삼또는 불로초라고 불리는데 사포닌이 많기 때문이다. 황칠나무 밑동 뿌리를 파는 과정에서 인삼향이 주변에 진동하였기 명불허전이라는 말을 실감하였다.

황칠나무 뿌리 일부는 발효액을 담그고 일부는 담금주를 만들었다. 양심 없는 불청객 덕분에 발렌타인 30년산보다 맛과 향뿐만 아니라 약성도 뛰어난 30년산 황칠나무뿌리 효소’, ‘황칠나무뿌리 식초’, ‘황칠나무뿌리 술이 생겼다. 문제는 이것들을 팔아서 농사자금이라도 보태고 싶은데 파는 재주가 없다는 것이다. 돈 만드는 것은 나중일로 하고 우선은 좋은 벗들과 함께 나누는 기쁨에 취해 있다.

 

시골생활이 주는 여유와 나누는 기쁨은 때로는 돈 보다 더 귀한 느낌이다. 현대 물질문명 속에서 돈을 가장 우선시 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돈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거나 돈을 먹고, 돈을 입고, 돈을 덮고 잘 수는 없다. 돈은 어디까지나 교환수단일 뿐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가치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정을 나누고, 시간을 나무고, 온기를 나누는 것이다. 나눌수록 커지는 것이 나눔의 미학이다. 정을 나누다보면 돈 보다도 더 귀한 복이 내게로 돌아오는 것을 느끼기에 즐겁다. 나누어 줄 수 있으니 나는 부자인 셈이다. 많이 가져서가 아니라 많이 나눌 수 있기에. 이 또한 농촌에 사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요 넉넉함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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