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만료 앞둔 10일 오후까지도 협상 난항…카드사vs자동차사 대리전 양상

▲ 지난달 30일 출시된 현대자동차 신차 ‘아슬란’. 10일 자정까지 KB국민카드와의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오는 11일부터 KB국민카드로는 현대자동차를 살 수 없게 된다. ⓒ현대자동차

KB국민카드와 현대차가 가맹점 계약 만료시점을 하루 앞둔 10일 오후까지도 복합할부금융 수수료율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해 이날 자정이 돼야 대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오늘 중 이견을 조정하지 못하면 KB국민카드 가입자 1816만명은 당장 11일부터 현대차를 살 수 없게 된다. 양사는 지난달 말 가맹점 계약기간이 끝났지만, 10일까지 한시적으로 이를 연장한 바 있다. 복합할부금융은 자동차를 살 때 소비자가 자동차 대리점에서 신용카드로 대금을 결제하면, 결제액을 할부금융사가 대신 내주고 고객은 할부금융사에 매달 할부금을 갚아나가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카드사는 복합할부 수수료(현대차의 경우 결제액의 1.85%)를 챙긴다.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카드복합할부금융 수수료율을 현행 1.85%에서 1.0~1.1%까지 낮추는 타협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현대차가 당초 요구했던 0.7%보다는 소폭 상향 조정된 것이다. 반면 KB국민카드는 소비자 편의 및 자금운용 부담 등을 고려할 때 여전히 수수료를 ‘1.75% 이하’로 낮추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한 현재 가맹점 수수료 체계에서 수수료율이 가장 낮은 영세가맹점(연간 매출액 2억원 이하)의 수수료율(신용카드 기준)이 1.5%인 만큼 영세가맹점보다 낮은 수수료율을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KB국민카드는 1.75% 이하로 낮추면 ‘적격비용’ 이하로 낮아지게 돼 여신전문금융업법(이하 여전법) 위반에도 해당한다고 맞서고 있다.

2011년 개정된 여전법은 카드 수수료율을 정할 때 지켜야 할 사항을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가 직접 정하도록 했다. 금융위는 가격 통제권을 갖게 되자 카드사들의 모임인 여신금융협회에 새로운 수수료율 산정방식을 만들도록 주문했다. 이에 협회는 카드결제 처리비용 등을 토대로 원가와 비슷한 개념의 이른바 ‘적격비용’ 이하로는 수수료율을 정하지 못하도록 했고 금융위는 이를 채택했다. 즉 은행이 산출한 원가 이하로 수수료율을 낮출 경우 위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카드업계는 이번 현대차의 요구를 대형 가맹점의 횡포로 규정하고 여전법 위반 소지가 다분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는 “여전법상으로도 영세 가맹점이 아닌 대형 가맹점은 카드사와의 협상을 통해 수수료율을 산정할 수 있게 돼 있다”며 여전법 위반 주장은 사실과 다른 내용이라고 맞서고 있다. 현대차는 “여전법 및 금융감독규정에는 연 매출 2억원 이하 영세가맹점에 한해 1.5%의 우대 수수료율을 적용하라고 돼 있을 뿐 최저 수수료율을 명시한 곳이 없다”며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는 카드사들이 신상품을 개발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리스크는 전혀 부담하지 않고 자동차 회사의 수수료를 편취해 자신들의 영업 비용에 쓰고 있다고 판단하고 현대차를 지원 사격하고 있는 모양새다.

한편 금융당국은 카드사의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다. 금융당국은 현대차의 주장에 대해 “중소 영세 가맹점의 최저 수수료가 1.5%라고 명시한 개정 여전법의 취지상 대형가맹점 수수료가 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법규 위반”이라는 입장을 거듭 밝혀 왔다. 또한 자동차 할부금융시장에서 독과점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현대캐피탈의 현대·기아차 할부금융 점유율이 높다는 점을 겨냥해 “자동차 할부금융시장에서 특정업체의 점유율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현대차를 우회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역시 현대차의 요구에 극히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의 가맹점 수수료율이 1.5% 이하로 내려가게 되면 단지 해당 사건 뿐 아니라 수년간 준비 끝에 수립한 ‘신 가맹점 수수료 체계’ 전체가 무력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복합할부금융은 물론 일반 할부거래에 대해서도 대형가맹점들이 수수료율 인하를 주장하게 돼 결국 정부 정책이 시행 2년도 안돼 깨져버리는 사태가 온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현대차가 KB국민카드와 복합할부금융 수수료율 협상을 이끌어내지 못해 다른 카드사들과도 가맹점 계약이 해지된다면 현대캐피탈의 시장 지배력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며 “‘방카슈랑스 25% 룰’처럼 자동차 할부금융시장에서도 점유율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방카 25%룰’은 개별 은행에서 판매하는 특정 보험사의 상품 비중이 25%를 넘을 수 없도록 제한하는 조치다. 지난해 현대캐피탈의 현대·기아차 할부금융 점유율은 74.7%로 만약 ‘방카 25%룰’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현대캐피탈은 상당한 매출 감소를 감수해야 한다.

한편 만일 현대차와 국민카드와 가맹점 계약이 종료될 경우 카드 복합할부를 취급하고 있는 다른 카드사들도 계약 만료로 이어질 수 있어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한카드와 삼성카드 역시 현대차와의 가맹점 계약이 각각 내년 2월과 3월 각각 만료를 앞두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대차와 KB국민카드의 협상이 결론을 내지 못할 경우 결국 소송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 수수료율 대립이 비단 KB국민카드만의 문제가 아니라 업계 1위 신한카드를 비롯한 다른 카드사들도 현대차와 계약을 일일이 연장해야 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