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눈에는 여기가 학교로 보이나’

▲ 교육현장의 폭력은 이제 강도 높은 체벌이 문제되는 시기는 지났다. 학생들이 선생들에게 반항하는 수준을 넘어 주먹을 휘두르고 칼을 휘두르거나 성추행까지 하는 일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상당 부분이 은폐돼 있다. 출처=부산일보 화면 캡처.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교육현장에서 선생과 학생 사이의 첨예한 불화와 갈등이 폭력과 살인이란 형식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선생이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과도한 처벌을 가하는 경우는 종종 매스컴을 통해 보도돼 어느 정도는 이에 대한 경각심이 높다.

그러나 학생들이 선생들을 향해 폭력과 성추행, 인격 모독과 살인 등의 행위를 자행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면 잘 믿겨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초등학생이 나이 지긋한 어른의 뺨을 때리거나, 스트레스 해소를 방해한다고 선생을 두들겨 패거나 또 별다른 이유가 없는 경우에도 교실에서 선생을 찔러 죽이는 어처구니없는 사건마저 발생했다.

인터넷 지구촌 시대를 맞아 정보의 흐름이란 측면에서 볼 때 국경선이란 사실 별 의미가 없다. 이 정보의 흐름 속에는 물론 범죄의 흐름도 포함된다. 각종 모방범죄가 마치 트렌드인 양 추종된다. 우리나라 뿐만 다른 나라의 교육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범죄들을 살펴보며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것이다.

초등학생이 선생의 뺨을 때리고
소지품까지 부수는 만행 저질러

2012년 깜짝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경남 합천군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선생과 초등학생이 서로 폭행했던 일이 알려졌다. 11월 1일 이 학교 해명에 따르면 기간제 선생 D씨가 지난달 23일 오전 5학년 J양을 교실 뒤에 세워두고 뺨을 수차례 때렸다. 같은 반 학생이 이 장면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가 삭제했으나 소셜네트워크(SNS) 등을 통해 급속도로 퍼졌다. 당연히 D 교사를 비난하고 성토하는 글이 잇따랐다.

그러나 D교사가 제 화를 이기지 못해 일방적으로 학생을 폭행한 것으로 알려진 이 사건의 차차 드러난 진상은 많이 달랐다. 이 학교의 자체 조사 결과 D교사는 사건 당일 1교시 수업에서 J양 등 수업 태도가 좋지 않은 4명에게 발목을 잡고 있으라는 체벌을 주었다. D교사는 이 학생들이 벌을 서면서도 웃으며 장난을 치자 화가 난 D씨는 학생 한 명을 손으로 떼밀었고, 옆에 서있던 J양이 함께 넘어져 사물함에 머리를 부딪쳤다.

화가 난 J양은 선생에게 ‘××야 니가 뭔데 때리냐’는 등 상스런 폭언을 하며 선생의 뺨을 때리고 손을 뻗으며 맞붙어 싸웠다.

이 학급의 학생들은 평소 선생의 지시를 무시했을 뿐 아니라 선생의 개인 소지품을 부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 초등학생들은 나이 많은 선생을 모독하고 당연히 들어야 할 말을 듣지 않고 선생의 소유물에 손괴를 입히는 등의 행동을 했다. 이럴 경우 어른들은 대응하기가 참으로 난감하다. 교권이란 것도 밑에서 받쳐줘야 생기는 것인데 막무가내식으로 무시하고 들면 선생도 사람인지라 이성을 잃을 수 있다. 이는 개인의 인격 도야와 도량의 크기로만은 해결하기 힘들어 선생 개인의 흠결로만 몰아붙일 수는 없다.

중국, 꾸짖는 선생에 대걸레 폭행 

대입시험을 앞둔 중국의 고3생들이 교과서와 연습지를 찢어 발겨 아무데나 버리며 스트레스를 해소해왔다. 교과서는 자기에게 지식을 준 소중한 도구인데 볼일 다 봤다고 그렇게 갈갈이 찢는 행위가 볼썽사납지만 그동안 얼마나 학교와 입시 제도에 대해서 받은 스트레스가 많았으면 저럴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지 중국의 학교 당국들은 이런 행위를 어느 정도 용인해오고 있었다.

2014년 5월 30일. 이날은 산시성 창우현 중학교 고3학생들이 학교에서 마지막 수업을 들었다. 오전 10시쯤 3학년 학생들이 3년 간 함께 고락을 함께 한 교과서를 찢기 시작했다.

하지만 학생들 가운데 일부가 교과서를 찢어 내버리면서 보온병, 책‧걸상 등까지 창문 밖으로 던지는 경우가 왕왕 있어 사고 방지 차원에서 학교 당국은 몇몇 선생이 교실 순찰을 돌게 했다. 순찰에 나선 선생들은 교과서를 찢는 행동을 삼가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한 선생이 이들 중 몇몇 학생을 그러지 말라며 꾸짖자 앙심을 품은 6명 학생이 이 선생을 계단 모퉁이에서 둘러쌌다.
대걸레 자루에 맞은 선생은 머리에 중상을 입고 병원에 호송됐다. 사건이 발생하자 창우현 교육국에서 곧 대학입학시험을 치러야 하는 학생임을 고려해 형사 고발을 잠시 하지 않기로 하고 모든 문제는 대입시험이 끝난 뒤 처리하기로 했다.

이 사건에서 꾸짖은 선생이 과거에 이들 학생들에게 부당한 행위를 한 것은 아닌지 하는 점은 살펴봐야 한다. 물론 설령 그런 잘못이 있었다고 해서 대걸레 폭행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이들 학생들의 대응 방식의 문제점은 ‘조야한 난폭성’ 그 자체에 있다. 이는 중국의 입시 교육의 어두운 그늘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입시 교육이란 어른들이 탐욕스런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맞는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교육이다. 애초에 중요한 것은 교육을 받는 아이들이 아니라 바로 그 시스템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공급 대체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기에 시스템만 지키면 된다고 하는 생각을 하는 어른들이 있는 한 학생들의 ‘조야한 폭력성’은 계속 사건을 물고 나올 것이다.

10대 소년, 수업 중 여선생 살해
임신한 여자 죽일 계획…끔찍한 동기

영국을 경악에 빠뜨렸던 윌 코르닉 군은 지난 4월 리즈에 있는 코퍼스 크리스티 가톨릭 컬리지에서 스페인어 선생을 뒤에서 7차례에 걸쳐 찔러 목숨을 잃게 만들었다.

3일 영국 재판부는 이 범죄에 대해 “비겁하면서 사악한 행위의 기념비”라고 부르며 그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정말로 이상하다”고 평가했다. 법정은 코르닉에게 최소 20년은 복역해야 출감할 수 있다고 했으나 “그날이 오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법정이 ‘비겁하면서 사악한 행위의 기념비’라는 비유법까지 구사한 데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살해 동기가 너무나도 하찮기 때문이다. 범행 이전에 코르닉은 아이들에게 선생을 죽일 거라고 떠벌였고 실제로 칼로 찔렀다. 그리고 그는 또한 다른 선생도 죽이겠다고 말했으며 이 가운데에는 임신한 여인도 포함됐는데 그 동기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죽이기 위해서”라고 그는 법정에서 밝혔다.

그는 나중에 의사에게 “나는 다른 일도 저지르려고 했으나 살인을 위한 다른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것은 삼중 살인이었다”고 밝혔다. 코르닉은 정신의학자들을 만나 “내가 하는 일마다 훌륭하고 멋지다”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왜 코르닉이라는 학생이 그토록 살인에 집착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왜 하필이면 60대의 스페인어 선생을 수업 중에 죽이기로 했는지, 또 왜 하필이면 더 죽이기 편한 총기를 놔두고 칼이란 흉기를 썼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확실한 점은 코르닉이라는 학생에게 선생이란 존재와 직위는 살인을 하지 못하게 하는 데 전혀 그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즉 비극적인 최후을 당한 그 선생은 그 직분에 어울리는 선의의 권위감으로 코르릭을 제어할 수가 없었다. 코르닉에게 선생은 살인 대상에 불과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학원생들이 외국어 선생 성추행, 살인까지

학생들의 선생 공격은 공교육 현장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일본 외국어 학원에서는 참으로 상상하기 힘든 일이 발생했다. 일본 지바현(縣)에서 있었던 일이다. 일본에서 영어 선생으로 일하던 린지 호커(Lindsay Hawker)가 노바 영어 회화 교실에 여러 날 출근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호커가 이치하시 타츠야라는 학생을 만나기로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타츠야는 전에 여성을 폭행한 혐의로 체포된 적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는 요주의 학생이 됐다. 그는 덩치가 크지 않았지만 강단이 있고 다부졌다.

경찰이 이 만남 사실을 알고 타츠야를 체포하려고 아파트를 찾아 갔으나 그는 잽싸게 도망갔다. 그의 아파트 안에는 폭력의 흔적들이 널려 있었다. 호커의 소지품과 옷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발코니에는 모래와 퇴비가 가득 찬 욕조가 놓여 있었다. 경찰들은 그 안에서 22살된 영국인을 발견했다.

그녀의 시신으로 추정해 보건대 심한 구타를 당했고, 성폭행 당한 뒤, 목이 졸렸다. 호커의 살인자는 노바 영어회화 스쿨에 다니지는 않았지만 과외 받는 학생이었다. 해외에서 외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들은 사실 늘상 이러한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이런 끔찍한 일이 아니더라도 일본에 와서 외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들, 특히 여선생들은 학원에 등록한 일본 학생들에게 성추행을 당한 사례가 빈번하다.

서양 남자가 동양 여자에게 신비감을 느끼는 것처럼 동양 남자애들은 서양 여인들을 보고 묘하게 친밀해지고 싶다는 감정을 느낀다. 그래서 학원생들은 선생들에게 거침없이 계단이나 복도에서 만나면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라는 말을 예사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아이들은 같은 일본 여학생들한테는 이렇게 행동하지 못한다. 일본 학생들은 ‘섹스 앤 더 시티’처럼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여자들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보고 서양 여자들은 모두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학생들의 이러한 성추행은 미국이나 서방에서 범죄 행위이다. 그래서 선생들은 학원 당국에 이와 같은 불만을 제기하면 학원에서는 어떻게 되려 선생들에게 처신을 잘 해야 한다고 말하거나 그냥 좀 참고 지내라고 말한다. 학원에서는 왜 외국에서 온 선생들의 이런 당연한 불만에 대해서 귀를 닫으려고 하는 것일까?

자본과 음란성의 결탁이 문제

그것은 바로 돈 때문이다. 학원에 등록한 학생이 나가게 되면 손해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학생은 반을 바꿔 그 선생과 만남을 피하게 하는 편법을 쓴다. 그러나 돈벌이가 아무리 좋다지만 이렇게 학생들에게 저자세로만 나가게 되면 앞서 호커의 살인과 같은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호커 살해 사건은 2007년도 발생한 사건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최근에야 ‘재팬 타임스’에 크레이그 커리-롭습이란 사람이 기고함으로써 알게 됐다. 이로써 우리는 그동안 일본의 사교육 선생들이 학생들에게 모욕과 굴욕을 참아가며 버텨왔는지 알 수 있다.

한 충격적인 통계에 의하면 이런 사교육 시장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의 57%가 학생들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한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미성년자 이하의 연령대에서 성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많은 연구가 있어 왔지만 전문가들은 사회 자체가 지나치게 ‘성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 원인은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을 통한 성적으로 노골적이고 음란한 컨텐츠가 범람하고 있고 어린 아이들이 쉽게 이런 음란물에 접근 가능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아이들은 스폰지처럼 ‘학습’한다. 아이들은 이에 대한 판단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기가 보는 포르노그라피의 내용 그대로를 현실에 실행해보고 싶다는 욕구를 억제할 내적 장치가 부족하다. 그래서 포르노그라피에서 배운 그대로를 비슷한 상황에 투영하는 것이다. 아이들이나 미숙한 성인은 보는 대로 믿고 행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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