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공감 참여가 사람들 사이에 흘러야 한다’

▲ 김수영 양천구청장이 실천하고 있는 여성리더십은 ‘소통을 통한 공감, 공감을 통한 참여’다. ⓒ 홍금표 기자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다. 이는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디테일이 진실을 담고 있다는 뜻일까? 진실은 날카롭다. 조심하지 않으면 상처를 입는다.

어떤 사람의 매력이나 진가를 엿보고 싶다면 디테일에 관심을 갖되 베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디테일에 진실이 있다. <인물> 꼭지는 앞으로도 그런 디테일에 주목한다.

서울지자체장으로는 처음으로 김수영 양천구청장을 만났다. 구청장 당선 당시보다 얼굴 살이 많이 빠져 지난 7월 1일 업무 시작 이후 강행군을 해왔다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였다.

그래서 업무에 관한 복잡한 얘기보다는 독서나 스트레스 해소법 등 편안한 화제부터 시작했으나, 일찍이 김수영 구청장이 주목해온 ‘여성리더십’의 문제를 끄집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김 구청장은 그동안의 실천과 고민을 바탕으로 명쾌하게 여성리더십을 정의 내렸다. 일고(一考)에 값한다고 본다.

Q: 서울 시민은 겨울에 책을 가장 많이 본다는 통계가 나왔다. 학창 시절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있나.
A: 중학교 2학년 때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을 읽었다. 여주인공 ‘잔’이 결혼과 더불어 겪게 되는 비극적인 일생을 다룬 작품이다. 믿었던 남편과 아들과의 짧은 행복 이후에 긴 불행을 겪어야 했던 한 여자의 일생에 그때 깊은 충격을 받았다.

읽고 나서 ‘내가 결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상당히 비관적인 작품을 읽었다.

Q: 그 작가, 정신착란으로 죽었다.
A: 그렇게 들었다…근데 살다 보니 세상이란 계속 나쁜 일이나 줄곧 좋은 일만 생기는 곳이 아니다. 진심을 다하면 좋은 일을 일어나게 할 수 있는 곳이 세상이다.

▲ 1986년 연단에 선 당시 김수영 이대 총학생회장의 모습. 이때 김 총학생회장이 입고 있는 흰색 두루마리 한복 도포는 이대의 전통에서 남녀의 차별성을 초월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 홍금표 기자

Q: 현대인은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구청장은 많은 사람을 상대할 수밖에 없다. 쌓이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A: 업무를 마무리하고 가끔 목동 안양천을 남편과 함께 산책한다. 혼자 산책을 하면, 사실 혼자 할 수도 있는 일인데,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잖고 해서(웃음)…

Q: 우리나라 양성평등 수준은 후진적인 정도를 넘어 절망적이다. 양성 불평등을 직접 체험해 본 적이 있는지…
A: 초등학교 때 반장은 늘 남자애, 여자는 늘 부반장이었다. 6학년 때 새로 오신 교장선생님이 몇 달마다 남녀 교대로 반장을 번갈아 하게 했다. 2학기 들어 나도 반장이 되니 어깨가 ‘으쓱’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런 나를 고깝게 보는 남자애가 하나 있었다.

어느 날 다가오더니 ‘건방지게’ 왜 나대고 다니느냐며 마구잡이로 구타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계집애가 왜 설치고 다니느냐는 것이 그 남자애가 나를 상대로 자행한 구타의 이유였다.

처음에는 황당했다. 두 번째는 당했다는 게 너무 억울해 ‘쪽팔렸다’. 나중에 내가 당한 일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왜 나는 가만있었을까? 왜 대응하지 못했을까? 그때 나는 강압적 폭력의 진짜 ‘무서운 힘’을 깨달았다. 대학생활에서도 강압적 폭력은 계속됐다.

[문학평론가의 꿈을 안고 들어간 이대 교정은 서슬 퍼런 독재정권의 군홧발에 유린당했다. 잠바 입은 남자들이 여대생의 머리채를 잡고 끌고 가버리는 세월이었다. 그 이후에도 강압적 폭력은 모양을 바꿔가며 계속 나타났다.]

Q: 지난 10월 27일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2014년 ‘성 격차지수(Gender Gap Index)’에서 우리나라는 142개국 중 117위로 나왔다. 2008년 이후 100위 안으로 진입한 적이 없다.
A: 충분히 예상한 일이다.

Q: 이런 고질적인 양성불평등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교육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나?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요즘 초중고 학생들을 보면 교육을 통해서는 양성평등 수준에서 어느 정도 성취를 봤다고 본다. 요즘 남녀 학생들은 우리 때와는 사뭇 다르게 서로들 대하지 않나. 정작 문제는 정치권이다. 정치에 진출하는 여성 숫자가 너무 적다.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자기 삶의 성취를 남편의 지위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김수영 양천구청장의 말은 ‘성 격차지수 통계’ 결과와 일치한다. 우리나라의 여성국회의원의 비율은 91위, 여성장관비율은 94위 등 정치 영역에서 양성 격차가 실로 크다]

▲ 양천구민들이 포스트잇을 통해 자신들의 바람과 꿈을 알려주면 김수영 양천구청장은 이를 모아둔다. 나중에 포스트잇을 하나하나 검토해서 일반행정, 교육‧문화, 복지‧일자리, 주택‧건축‧교통으로 나눠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 ⓒ 홍금표 기자

Q: 현 새정치민주연합 ‘여성리더십센터’ 부소장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여성리더십이란 말이 이해가 그리 쉽지 않다. 예컨대 영국의 마거릿 대처는 여성리더십의 구현자인지, 기존의 남성리더십과는 뭐가 다른지 알쏭달쏭하다.
A: 큰 틀에서 말하겠다. 강압보다는 배려다. 그런 의미에서 대처 수상은 내가 생각하는 여성리더십의 구현자가 아니다. 극복해야 할 남성리더십에 가깝다. 독일 메르켈 수상이 더 낫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해야 한다. 그 과정에 온화함, 따뜻함, 섬김이 사람들 사이로 흘러가게 해야 한다.

바로 소통-공감-참여가 여성리더십, 여성지도력을 형성한다. 소통해야 공감할 수 있고 공감해야 참여의 동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여성지도력의 시대가 와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소통의 자리를 만드느냐다.

Q: 남녀 정치인을 불문하고 이상적인 리더십이 있다면?
A: 있다. 좌나 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중도의 정치인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Q: 5일 양천구 혁신교육 우선 지구 유치를 위한 민‧관 추진단 구성을 발표했다. 그게 왜 필요한가?
A: 아이와 부모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자살하는 학생들 소식을 자주 듣고 있다. 불행한 일 아닌가. 공부는 행복해지려고 하는 것이다. 공부가 목적인가? 그런데 입시교육에 치우치다 보니 목적 같은 것으로 돼버렸다. 물론 직업적 공부는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학생들에게 그것을 강요할 수 없고 강요해봤자 더 엇나갈 수도 있으며 원하는 성과를 얻기 힘들다. 얼마 전 학생들과 만났는데, 한 아이가 ‘나는 학원 세 곳밖에 안 나간다’고 자랑했다.

양천구는 교육특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높은 사교육 의존도, 지역 내 교육격차가 심각하다. 실제 과밀 학급 등의 문제는 서울시에서 아주 심각한 편이다. 이런 모든 상황을 헤쳐 나가는 방법의 일환으로 혁신교육우선지구 유치를 시작해야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 김수영 구청장은 무엇 때문에 혁신학교가 있어야 하는가 라고 묻자 ‘그것은 아이와 부모의 행복을 위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10월 22일 혁신학교인 신은초등학교를 방문해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던 모습. ⓒ 홍금표 기자

Q: 끝으로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신뢰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진정성은 신뢰에서 나온다.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면 태산도 움직인다. 그것이 리더십, 지도력이다. 신의, 믿음을 가로막는 힘이 바로 선입견과 편견, 약속 지키지 않는 것이다.

무슨 제안을 하면 거기에 무슨 불순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런 상황에서는 소통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국 사회 내부에는 정파, 지역, 이해 부족 등 여러 분열 요소가 있다. 이것이 소통을 가로막고 있는 힘이다. 그러나 소통하기 위해서 거짓 약속을 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항공기 소음 피해 민원이 있다고 하자. 피해 보상해 달라고 한다. 공항이나 항로는 쉽게 옮길 수 없다. 그러나 보상 받을 방법은 강구해 보겠다고 약속할 수 있다. 실천 가능한 선까지 약속은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안 된다. 어떤 분은 그렇게 똑 부러지게 안 된다고 하면 표 떨어지니까 해결할 수 있는 척 해달라고 말하긴 하지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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