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주권 없는 굴욕의 70년, 보수조차 “노예근성” 비판

‘주권’이란 말은 단순히 사전적으로만 풀이하더라도 ‘주인된 권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고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은 그 주권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도록 헌법에 명시돼 있다.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주권은 국민, 영토와 함께 국가를 구성하는 3대 요소 중 하나다.

그런데 이런 헌법 조항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의 군사주권은 우리에게 없다. 전시상황이 되면 미국이 작전권을 통제하게 되고, 우리 군은 미군의 지휘통제 아래 움직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전지작전통제권을 70년 넘도록 미국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이 왜 우리의 군사주권을 이토록 오래 우리에게 넘겨주지 않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스스로 ‘아직까지 홀로서기 어렵다’면서 미국에 손을 내밀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논란을 둘러싸고 ‘군사주권을 우리 스스로가 포기하고 있다’는 비판론이 일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 한미 양국이 당초 2015년 12월로 예정돼 있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를 재연기하기로 합의했다. 정부가 또 다시 군사주권을 포기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뉴시스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미양국은 지난 2007년 전작권 전환 시점을 2012년 4월 17일로 최초 합의했었던 바 있다. 하지만 2010년 이명박 정권은 ‘2015년 12월 1일’로 연기했고, 이때 이면합의 논란이 뜨거웠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2015년 12월 전작권을 차질 없이 환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대로라면 전작권 환수 시점은 이제 1년여 앞으로 다가와 있던 셈이었다.

그런데 정권 출범 직후부터 정부의 미묘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 안보회의에서 한미 양국 국방장관이 만난 것을 두고 야권과 일각에서는 전작권 재연기 움직임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국방부는 7월 말 서울에서 열린 제4차 한미통합국방협의체(KIDD) 회의와 같은 해 10월 제45차 한미안보협의회(SCM) 등을 통해 전작권 재연기 문제에 대해 확실한 결론을 내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재연기 하겠다’가 아닌 ‘재연기를 검토해보겠다’는 차원이었지만, 이미 박근혜 정권이 2015년 12월 전환에 대해 ‘검토’ 운운하는 자체만으로도 논란이 일었다.

그리고 지난 4월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를 재검토한다는데 합의했다. 사실상 이미 전작권 전환 재연기는 수순이었던 것이다.

결국,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제46차 한미안보협의회에서 한국과 미국 양국은 전작권 전환 시점을 재연기하기로 공식 합의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 또 다시 파기되는 순간이었고, 나아가 군사주권을 우리 스스로가 다시 미국에 맡아달라고 요청한 굴욕적인 상황이었던 것이다.

◆전작권, 사실상 무기한 재연기 합의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척 헤이글 미 국방부 장관은 이날 오후 미 국방부(펜타곤)에서 열린 SCM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15개 항목의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양국은 공동성명에서 “북한 핵·미사일을 포함한 역내 안보환경의 변화에 맞춰 한미 양국 국방장관은 미국군 주도의 연합군사령부에서 한국군 주도의 새로운 연합방위사령부로 전환하는 것을 대한민국이 제안한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으로 추진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전작권 전환의 조건으로는 ▲안정적인 전작권 전환에 부합하는 한반도 및 역내 안보 환경 ▲전작권 전환 이후 한미 연합 방위를 주도할 수 있는 한국군의 핵심 군사능력 구비 및 미국의 보완·지속 능력 제공 ▲국지도발과 전면전 초기 단계에서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국군의 필수 대응 능력 구비 및 미국의 확장억제 수단과 전략자산 제공 및 운영 등이다.

양국은 이들 조건에 대해 매년 SCM에서 평가하고 양국 통수권자들이 이를 바탕으로 전작권 전환 시기를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오는 2015년 12월 1일까지 전작권 전환을 추진하기로 했던 양국은 이번에는 전환 시점을 명시하지 않았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포함한 역내환경에 맞춰 전작권 전환을 다시 추진하기로 합의해 사실상의 무기한 연기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한민구 국방부장관은 “2020년대 중반이면 조건이 충족되고 전작권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보는 것이 국방부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는 우리 군의 전력증강 일정을 감안한 결과로 해석된다. 즉, 양국이 발표한 공동성명 7항에는 ‘한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데 있어 핵심 군사능력인 킬체인과 한국형미사일방어(KAMD)체계를 2020년대 중반까지 발전시킬 것을 재확인했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우리 군의 첨단 전투력 증강 사업도 대부분 2020년 이후로 맞춰져 있다.

양국은 또 이번 SCM에서 전작권 전환이 이뤄질 때까지 한미연합사령부를 용산기지에 잔류시키고 한국군의 대화력전 전력이 보강되는 2020년께까지 미 2사단 210화력여단을 현재 있는 동두천 캠프 케이시에 잔류시키기로 합의했다. 이밖에 지난해 10월 서울에서 열린 제45차 SCM에서 서명한 ‘맞춤형 억제전략’에 따라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한 한미동맹의 ‘포괄적 미사일 대응작전 개념 및 원칙’도 정립했다.

아울러 ▲북한의 침략과 군사적 도발 불용 ▲북한의 북방한계선(NLL) 준수 촉구 ▲사이버 위협 관련 정보 공유 활성화 ▲미국 우주작전 교육에 한국군 참여 ▲‘이슬람국가’(IS)와 에볼라 등 초국가적·비전통적 안보위협에 대한 협력 등의 내용도 SCM 공동성명에 포함됐다.

한편,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SCM 직후 현지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2020년대 중반이면 조건이 충족되고 전작권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보는 것이 국방부의 입장”이라면서 “우리의 전작권 전환 의지는 확실하고 의지를 뒷받침할 이행체제도 내년까지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전환시점을 명시하지 않아 ‘사실상 무기한 연기’라는 지적이 나오는데 대해서는 “그것은 상당히 비약적인 해석이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을 얘기했고 조건을 달성하기 위한 한국군의 능력 향상에 관한 계획들이 있고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한 장관은 이어 “전작권을 전환한다는 기본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작권 전환 문제를 시기에서 조건으로 바꾼 것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라는 안보환경 때문”이라며 “그래서 안보환경을 3번째 조건으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장관은 또 “통일이 되거나 북한의 비핵화가 되면 조건에 관계없이 전작권 전환 협의를 할 수 있다는 입장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野 “군사주권 포기나 다름없다” 맹비난
그런데 문제는 결코 간단치 않다. 단순히 군사주권 포기 문제나 박근혜 대통령 대선 공약 파기 문제만으로 모든 비난이 집중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 정부가 미국 측에 또 다시 ‘보호해주는 기간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한 것인 만큼, 요청에 따른 대가 지불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천문학적 비용에 달하는 무기구입비는 기본일 수밖에 없고, 그 외의 이면에는 또 어떤 합의가 있었는지 아직까지 알려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와 관련, 새정치민주연합 김정현 수석부대변인은 지난달 25일 논평에서 “전작권을 차질 없이 환수하겠다고 공약 했으면 그에 따른 준비를 하나하나 해나가면서 군사주권을 되찾아올 생각을 해야지, 국민들에게 공론화 과정 한번 없이 밀실에서 전작권 재연기 합의각서에 서명한 것은 누가 봐도 떳떳한 정부라고 할 수 없다”며 “오죽했으면 여당에서조차 이런 비판이 나오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군 통수권자는 박근혜 대통령이고, 국가안보에 대한 최종책임자도 박근혜 대통령 아닌가. 국민 앞에 밀실에서 진행된 전작권 공약파기의 전말을 떳떳이 공개하고, 공약파기에 따른 책임을 지고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전작권 전환 재연기에 따른 이면 합의 내용을 밝히라는 의미였다.

야당의 비난은 거침없었다.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은 “전작권을 차질 없이 환수하겠다고 했던 박 대통령의 공약이 허언으로 끝났다”며 “전쟁 상황에서 우리 군대를 지휘할 권한을 다른 나라에 맡기는 이 비정상적 상황을 바로잡으라는 국민 여망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건지 진실로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정세균 비대위워은 “전작권을 연기해 달라고 머리를 조아리는 현실이 부끄럽고 참담하다”면서 “전작권 연기로 새로운 안보 여건이 변화한 것이라고 하지만 결국 이명박 정권 5년, 박근혜 정권 2년 모두 7년간 남북 관리와 국방안보 실패에 기인한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박지원 비대위원은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은 국회와 국민을 무시한 것”이라며 “국회 비준 등 의견수렴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비대위원의 비난 강도는 더 높았다. 문 비대위원은 “대외적으로 군사주권 포기를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그는 “전시작전권의 차질 없는 환수를 공약해놓고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미국에게 연기를 요청하기 시작한 것은 공약파기를 넘어 국민을 속인 것”이라며 이 같이 비난했다.

문 비대위원은 그러면서 “주권국가로서 잠시도 아니고 70년 넘게 전시군사작전권을 다른 나라에 맡기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라며 “대한민국 군부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문 위원은 특히, “전작권 환수의 거듭되는 연기로 우리는 앞으로 막대한 예산부담을 피할 수 없게 됐다”면서 “전작권 환수 조건인 우리군의 필수대응능력 구비를 위해서 우리가 앞으로 지불해야 하는 무기구입 비용은 얼마가 되는지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문 비대위원은 거듭 “2012년에서 2015년으로 전작권 환수를 연기할 때 우리군은 재연기는 없다고 천명했다”며 “북한보다 15배가 넘는 국방예산을 사용하면서도 여지껏 제대로 된 준비를 못하고 있다가 또다시 무기한 연기를 주장하는 군 지휘부는 모두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전작권 전환 재연기에 합의한 것을 두고 야당과 보수 일각에서 거센 반발이 일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대선 공약 파기 논란은 물론이고, 전환 시기를 재연기하면서 어떤 이면합의가 있었는지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뉴시스
◆黨?靑 현실론 제기하지만…보수조차 비난
야당의 이 같이 퍼붓는 비난세례에 청와대는 “현실적 관점에서 냉정히 봐야할 사안”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어떤 경우에도 계획된 전환 시기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공약의 철저한 이행보다는 국가안위라는 현실적 관점에서 냉철히 봐야 할 사안”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민 대변인은 또, “대한민국이 전작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우리 정부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면서 “다만 현재처럼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더욱 가중되는 안보상황을 고려하면서 전작권 전환 준비를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거듭 역설했다. 그러면서 “한미는 한반도 안보상황과 한미동맹의 대응능력 구비 등 안정적 전작권 전환을 위한 적정한 전환 조건과 시기를 결정하기 위해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다”며 “안정적 전작권 전환은 궁극적으로 북한의 전면전과 국지도발을 억제하고 한미연합 방위력을 강화하는데도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누리당도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변명했다. 새누리당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전작권 재연기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전작권 재연기는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실험으로 한반도의 안보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여진다”고 설명했다.

한편, 보수진영이라고 모두 전작권 재연기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 보수논객인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지난해 5월 한 강연에서 “우리가 벼랑에 선 셈으로 쳐서 이제는 우리의 힘으로 북한을 억제해야 한다”며 “자기 나라를 지킬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힘을 써보지도 않고 남한테 도움을 구하려고 손을 내미는 것은 노예근성”이라고 주한미군 철수 및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한 바 있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