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중독자, 마약중독자와 뇌 반응 패턴 유사

▲ 성중독은 과연 정신병인가? 논란의 핵심은 성중독의 비정상성의 경계선을 긋기가 아주 애매하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학리적 관점과는 별도로 화제의 드라마이자 영화로 잘 알려진 <엑스파일>의 머더 역을 맡았던 데이비드 듀코브니(사진)뿐 아니라 마이클 더글라스와 찰리 쉰 같은 유명 할리우드 남성배우들이 자신의 강박적인 성행위에 대해 털어놓은 적이 있다. ⓒ 뉴시스

강박적 성행위를 포함한 성 중독은 약물 중독과 같은 질환인가? ‘엑스파일’의 남주인공 머더 역을 맡았던 데이비드 듀코브니와 할리우드 배우 마이클 더글라스와 같은 남자들은 이미 자신의 성중독에 대해 털어놓은 적이 있다.

만일 성중독이 약물 중독과 같은 질환으로 규정된다면 포르노나 야동류의 컨텐츠는 향정신성 의약품 취급을 받아야 할까. 성중독이 과연 중독성 질환으로 규정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진행 중이다. 그 쟁점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60대 노인 제프의 고백

제프(가명)는 결혼 29주년을 앞두고 현재 달마다 여자들에게 5,000달러(약 5백30만원)를 쓴다.

제프(66)는 처음에 직장 내 여자 동료들과 감정적으로 호감을 갖기 시작하면서 기억할 수도 없을 만치 많은 우발적 성관계(원나잇스탠드)를 가졌고, 퇴폐 마사지 업소를 다녔으며 젊은 여자들에게 끊임없이 돈을 지불했다. 그는 몇 시간이고 성노동자들을 찾아 돌아다니며 돈을 탕진했다. 성행위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는 “그것은 기진맥진하게 만들었다. 그러면 술을 마시거나 진정제를 복용하곤 했다”고 말했다고 호주뉴스닷컴이 30일 전했다.

제프는 자신의 이런 행위는 성중독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재활치료도 받았고, 성중독자를 위한 모임(SAA)에도 정기적으로 참석했지만 성중독 증세가 수십 번이나 다시 도졌다고 한다. 제프는 “건강한 성생활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지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제프는 자신의 현재 상태는 유‧소년기 동안에 발생한 일들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성적‧정서적으로 학대를 당했다.

“어머니는 성적으로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 어머니는 내 앞에서 알몸을 노출하며 마치 나를 자신의 배우자처럼 대했다. 아버지는 일중독자였고 어머니에게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제프는 은퇴한 증권중개인으로 정원을 돌보거나 골프를 치고 투자를 관리하며 지내고 있다. 그가 성행위를 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기간은 최대 3개월이다.

‘정신의학의 성서’라는 ‘DSM’에 들어가야 질환 인정?

대부분의 정신의학자들은 공식적으로 성중독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생각 외로 간단하다. 정신의학의 성서라고 하는 정신질환편람(DSM)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편람은 미국정신의학협회가 작성하는데 정신의학 진단에서 보편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화병(Hwabyeng)은 1997년 이 편람에 문화관련 증후군으로 등록됐다. 이 편람은 2013년 기준으로 다섯 차례 개정됐다.

정신병이 이 편람 안에 포함되려면 반드시 풍부한 경험적 자료와 동료 연구가들의 확인이 뒤따라야 한다. 성중독은 아직까지는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편람 안에 없으면 그런 병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계통의 상식처럼 굳어져 있다.

그러나 실무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제프가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캐빈 중독재활센터의 앨리스테어 모디(Alistair Mordey) 소장은 정신질환편람은 실제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보다 몇 년 뒤처졌다고 한다. 새로 나타나거나 확산되고 있는 정신질환을 실시간으로 따라잡지 못한다는 소리다.

소장은 “비물질성 장애인 도박 중독이 2013년 처음으로 정신질환편람에 수록됐다. 우리는 수년 동안 도박 중독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겨우 작년에야 편람에 들어간 것은 (사전에) 막대한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도박은 헤로인 중독이 뇌의 보상 메카니즘에 행하는 것과 똑같은 일을 한다”고 말한다. 그는 섹스와 게임 중독도 다음 개정판에는 포함돼야 한다고 말한다.

DSM, 도박중독은 정신질환으로 인정

소장은 성중독자의 뇌는 약물중독자의 뇌와 같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는 쾌락과 보상 메커니즘을 지배하는 호르몬인 도파민이 사람을 황홀경으로 이끌어가는 공통분모라는 걸 알고 있다. 성중독자가 성행위를 가질 때 뇌에서 막대한 양의 도파민이 분비되기 때문에 황홀경을 체험한다. 이 황홀경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성적인 욕구의 대상이 됨으로써 일어난다”고 말한다.

지난 7월 캠브릿지 대학의 과학자들은 한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포르노 중독자는 약물 중독자와 마찬가지의 생리적 과정을 거쳐서 황홀경을 체험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객관적으로 검증 가능한 사실이라면 야동이나 포르노잡지들은 어떤 취급을 받게 될까?

이 과학자들은 남성 성중독자 집단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 이들이 포르노그라피를 시청할 때의 뇌 패턴이 약물 중독자의 패턴과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대조군(對照群), 곧 비(非)성중독자에게서는 그러한 연관관계가 발견되지 않았다.

발레리 분 박사는 「플로스원(PLOS ONE)」이라는 잡지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서 “강박적인 성행위을 보이는 환자와 건강한 지원자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는 약물 중독자의 경우와 일치한다”고 말했다.

성중독자, 실제적 고통 호소

그러나 분 박사는 이번 연구가 성중독 진단을 확정하기에는 불충분하고 포르노가 중독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러한 조사 결과는 흥미롭지만 성중독 진단에 쓰일 수 없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연구가 반드시 이러한 개인들이 포르노에 중독돼 있다거나 포르노 자체가 중독성이 있다는 증거를 제공하지 못한다”며 “강박적인 성적 행위와 약물 중독 사이의 관련성을 이해하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성중독이라고 할 만한 현상 자체에 주목한다. 제프 같은 사례를 성중독이라고 규정짓는 대신에 강박성 행동장애의 일종인 ‘성욕 과잉 장애’라고 부른다. 호주의 성과학협회의 조슬린 클루그 회장은 “어떤 행위를 두고 중독이라고 부를 때는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어떤 행동에 대해 중독됐다는 핑계를 댈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호주의 성 장애 치료사이자 임상심리학자인 베티나 아른트 역시 이와 비슷한 견해다. 아른트는 “나는 성중독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많은 저명한 심리학자들도 성중독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신경전달물질에 중독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엄밀한 증거가 없고, 뇌화학 전문가 대다수는 이런 주장을 난센스라고 일축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성중독 정의는 정말 논란거리다. 왜냐하면 바른 정의를 내리려면 무엇이 정상적인 성적 취향인지 먼저 정의할 필요가 있다. 수십 년 동안 정상적인 성관계 횟수, 성적 욕망과 반응을 알아내려고 연구를 진행해왔다. 사람들의 성적 취향은 너무나 다양하고, 성욕이 강한 사람들도 매우 만족스런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런 논란에 대해 자신을 성중독이라고 진단한 제프는 어떻게 생각할까?

“세상에는 멍청이들이 참 많다. 나는 무슨 소리라도 할 수 있으리라 본다”며 “이런 행위에 대해 중독이라고 하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아마도 이건 극단적으로 강박적인 행위 같다. (그렇다고) 문제가 달라지지 않는다, 입는 상처는 똑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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