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교육청과 무상급식 감사 두고 갈등…보수진영 아젠다 선점?

▲ 경남도가 일선 학교 무상급식비 집행상황에 대해 감사를 실시하겠다고 나서 경남도교육청과 갈등을 빚고 있다. 홍 지사는 지난해 진주의료원 폐업결정에 이어 무상급식에 대한 손질에 나서면서 자연스럽게 보수진영의 대변자로 나서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지방행정을 관할하는 도백이 대한민국 정치권 논쟁의 중심에 서는 일이 있었다. 바로, 홍준표 경남지사의 얘기다.

2012년 12월 재보선을 통해 중앙정치권에서 지방행정가로 변신한 홍 지사는 진주의료원 폐업결정을 강행하면서 중앙 정치의 모든 이슈까지 흡수하는 이례적인 일을 만들어냈다.

물론, 이에 대한 야권과 노조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보수진영에선 “소신과 결단력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정치권에선 차기 여권의 대선주자 가운데 한명으로 꼽히는 홍 지사가 전국적인 이슈를 만들고 보수진영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대선행보를 펼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흘러 나왔다.

의도야 어쨌든 진주의료원 폐업사태로 보수진영의 목소리를 대변했던 홍 지사가 또다시 진보진영의 주요 정책인 ‘무상급식’ 문제에 대한 개혁을 자처하고 나섰다. 야권이 주요 기치로 내세우고 있는 복지 문제에 연일 보수층의 입장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무상급식은 지난 2010년 지방선거 때 야권에서 내놓은 대표적인 공약. 당시, 야권은 무상급식 공약으로 승리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야권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업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홍 지사가 또 칼을 빼들었다. 경남도가 일선 학교 무상급식비 집행상황에 대해 감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경남도가 교육청 산하 학교를 감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경남도가 무상급식에 대한 감사를 착수하겠다고 밝힌 것은 지난해 경남도가 지원한 지원금을 식품비 외에 다른 용도로 사용한 것을 적발했기 때문이다. 경남도는 지난해 고교 90여 곳을 대상으로 2013년도 지원금 사용 내역을 조사한 결과, 지원금이 식품비 외에 조리원 인건비, 전기·가스료 등으로 쓰인 것을 확인했다. 이들 학교는 경남도가 지원한 200여억원 가운데 20여억을 식품비 말고 다른 데 썼다.

따라서 무상급식에 대한 감사의 필요성을 인지한 경남도는 지난 22일 “경남지역 9개 시군에서 초등학교 40곳, 중학교 30곳, 고등학교 20곳 등 학교 90곳을 골라 다음달 3일부터 20일 동안 지난해와 올해 무상급식 지원 실태에 대한 특정감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홍준표 지사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무상급식에 지원하는 엄청난 예산이 허투루 사용될 수 있다고 판단해 감사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경남도는 지방자치단체가 일선 학교에 대해 감사하는 것과 관련,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제36조(검사) ▲경남도 보조금 관리 조례 제22조 ▲학교급식 지원 조례 제15조(지도·감독)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경남도의 이 같은 방침에 경남도교육청(박종훈 교육감)은 반발하고 있다. 하급 기관도 아닌 같은 도 단위 기관에 대한 특정감사를 하는 것은 ‘월권행위’라는 것이다.

경남교육청 유원상 감사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경남도가 교육청과 아무런 사전 협의도 없이 교육감 소속 일선학교에 대해 감사를 실시하겠다는 것은 지방행정조직 체계를 볼 때 상식을 벗어난 월권행위”라고 지적했다.

유 감사관은 이어 “도의 각급 학교에 대한 특정감사는 일선 학교에 대한 이중감사로 이어져 교직원의 업무증가로 인한 교육력 손실과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양측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가운데 홍 지사가 초강수를 들고 나왔다. 감사를 거부할 경우 내년도 무상급식 보조금 예산을 아예 편성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홍 지사는 2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경남교육청이 감사를 거부하면 내년도 무상급식 보조금 예산 편성을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홍 지사는 또 “경남도와 일선 시·군이 전체 무상급식비 3분의 2 가량을 교육청에 지원하고 있다”며 “학사 업무를 감사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도민 혈세가 허투루 사용되지 않도록 감사하겠다는데, 이것을 거부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경남교육청이 감사를 거부한다면 앞으로 교육청이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무상급식 보조금을 지원받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고 일선 시·군에도 보조금을 지원하지 말라고 지시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아울러 “적은 금액의 각종 보조금을 지원하는 민간단체에 대해서도 감사를 하는데, 하물며 1년에 822억원의 많은 보조금을 학교에 지원하고도 그 돈이 적정하게 사용되는지, 또는 부정하게 사용되는지 감사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묻기도 했다.

이처럼 양측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가운데 그간 홍 지사가 걸어왔던 행보로 볼 때 쉽게 물러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홍 지사는 진주의료원 폐업 문제로 야권 뿐 아니라 여권에서도 자제를 당부할 때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번 논란 역시 홍 지사가 쉽게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의 근거로 작용하는 한 사례인 셈이다.

어찌됐건 이번 논란은 또다시 전국적인 이슈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일견, 독불장군으로 볼 수도 있지만 보수진영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인사로 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논란의 핵심에서 비켜나 정치인 홍준표만을 볼 때 손해보다는 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무상급식 문제에 어찌 보면 변화의 시도를 하는 모양새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차기 대선을 앞두고 여권내 다수의 잠룡이 있지만 보수진영의 목소리를 꾸준히 대변한다는 측면에선 장기적으로는 득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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