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자에게 좀 더 선택의 폭을 넓히고, 능력별 수업이 이루어져야 효과적

고교평준화정책은 대폭 개편 필요 1. 평준화 정책의 공과 고교평준화 정책은 우리나라 교육의 양적 팽창에 크게 공헌하였다. 입시가 있던 시절 같았 으면 고등학교 문턱에도 다가가기 어려웠을 저 학력의 학생들조차 마음놓고 고등학생이 되 었고, 그 덕분에 전 국민의 중등교육을 마치는 율이 80%이상으로 올라가는 획기적인 공헌 을 하였다. 이러한 정책의 덕분에 한창 자라야할 중학교 학생들이 입시지옥에서 해방이 되었고, 중학 교 졸업생을 수용할만한 학생 수용시설이 증설되어서 수많은 고등학교가 신설되었고, 기존 학교의 학급도 증설되었다. 그 결과 고등학교의 학급 수는 엄청나게 늘어났고, 중학교를 졸 업한 거의 대부분(90% 이상)이 고등학교에 진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해서 입시 공부에서 해방된 중학생들은 놀랄 만큼 잘 자라 주어서 체격이 엄청 좋아진 것도 또 하나의 공헌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학력이 낮다고 하지만, 교육의 기회를 얻어서 공부를 할 수 있다 는 점에서 기회균등이라는 민주적 요건에는 크게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렇게 양적인 팽창으로 국민이 이수한 교육수준을 끌어올린 것은 공로라 할 것이 지만, 동시에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야기해온 것도 사실이다. 우선 학력이 하향 평준화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입시가 있었던 30년 전에 비하면 학교 환경, 학습 기자재, 공부할 도서, 환경 모든 것이 얼마나 편리하고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충분히 지원이 되고 있건만, 고등학교 학생들의 실력이라는 면에서는 솔직하게 하향평준화 되었다는 말에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더 비판적인 사람 들은 실력의 하향평준화가 아니라, 전체적인 실력의 하향이라고 꼬집는다. 이렇게 실력의 하 향하게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학교 수업의 현장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2. 평준화 정책이 가져온 문제들 첫번째 이유는 동질성을 지니지 못한 학생의 학력의 격차 때문이다. 시험을 보아 입학을 할 때에는 아무래도 비슷한 학력을 갖춘 사람들끼리 모이게 마련이다. 그래서 교사는 이 비 슷한 학력 집단의 중심을 잡아서 수업을 하면 얼마든지 쉽게 학생들의 수준에 맞는 수업수 준이 되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어느 학교나 실력으로 뽑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 교실 안 에서 수업을 받는 학생들의 학력 수준이 천차만별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교 실 수업은 대부분의 학생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일부 학생들을 위한 수업<대부분의 학 교에서는 상위권 중심>이 되고, 나머지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냥 구경꾼에 지나지 않은 상태 에서 수업은 진행이 되었고, 그러다 보니 부진한 학생은 교사들에게는 수업 방해자로 찍히 고 만다. 그래서 제발 아무 소리말고 가만히 있어 주기만 바라는 대상이 되어 점점 흥미를 잃은 일부 하위권 학생들은 탈선으로, 또는 공부를 못한 스트레스에 지친 나머지 본드를 마 시거나 흡연, 마약까지 온갖 잘 못된 길로 빠져들기도 하였다. 정말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그리고 학생들의 학습권이나 수요자 중심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학생들은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일이겠는가? 운동장에서 뛰고 달리고 싶은 아이를 알아 듣지도 못하는 골치 아픈 수학 공식을 외우고, 영어 단어를 외워야 한다는데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그나마 조금이라도 따라 갈 수 있는 아이라면 열심히 노력을 해볼 수도 있는 일이 지만, 전혀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중학교 일학년 수준 정도도 되지 않는 아이가 하루 종일 입에 거품을 물어 가면서 가르치시는 선생님의 입이나 쳐다보고 앉아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감옥생활이나 다를 바 없는 고통일 것이다. 그래서 학교의 입장에서는 입학 후에 판별 검사를 통하여 우열반 편성을 하여서 잘하는 아 이들은 정말 우수한 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더 빠르게, 또는 더욱 깊이 있는 심화 학습 을 시키고, 중간 정도의 학생은 좀더 채찍질을 하듯 끌어 올려서 더욱 나아지도록 지도 해 주고, 부진한 학생들은 기초부터 차근차근 지도하여서 부지런히 따라 갈 수 있게 밀어 주는 방법으로 지도하도록 해주는 것이 진정으로 학생들을 위한 일이고, 수요자 중심으로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현행 중등교육법은 그런 것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 물론 그것도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공교육에서 학 습의 효과를 높이고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게 해주려면 이런 조치는 필요하다고 본다. 둘째로 입시 시절의 명문 학교가 사라진 대신에 누구나 가는 명문학교가 되다 보니 소위 에리트 의식이 사라져 버린 것도 한 원인이 될 것이다. 사실 입시 시절의 명문 학교를 졸업 한 사람은 나이 들어서 늙어 가면서도 자신의 학벌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자주 이야기하 고들 한다. 그런데 평준화 된 이후는 그런 의식이 사라지게 된 것은 아주 좋은 일이었다. 그 러나 자기 자신의 정체성이나 자부심을 갖지 못한 것이나, 너무 자신에 대한 자부심 같은 의식이 없으므로 해서, 늘 자기를 지키려는 의욕도 없고, 저돌적으로 부딪히면서 헤쳐 나가 려는 의지도 없는 등 문제가 되는가 보다. 심지어 옛 명성을 날리던 명문 학교의 졸업생들 이 자기들의 후배들에게 [너희들이 우리와 같은 학교를 나오긴 했지만, 제비뽑아 들어간 너 희가 어떻게 우리 후배가 될 수 있니? 자존심도 자부심도 다 버리게 만들어 놓은 너희들이 아니냐?]하고 무시하고 후배로 인정을 하려고도 않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자부심을 갖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그 만큼 자기를 지키는 자존심이 되고 그것이 나름대로 향상을 하도록 만드는 엔진 역할을 할 수 있는 데 그런 의지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이 없었다. 아주 극단적으로 크리스찬 재단이 만든 미션 스 쿨에 크리스찬과는 인연이 먼 불가의 자녀가 입학을 할 수도 있고, 불교 학교에 크리스찬 집안의 자손이 입학이 될 수도 있다. 그 학생은 물론 학부모까지 종교적인 문제로 졸업 때 까지 정신적으로 심한 스트레스 속에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반 크리스찬과는 달리 토 요일을 주일로 해서 휴식을 취해야 하는 [제7일 안식교]나 [여호아의 증인] 등의 종교인 같 은 경우라면 더욱 문제가 된다. 일반 학교에서 가야하는 학생은 매주 토요일에 결석이 되 어서 여간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이 때 자기의 희망대로 자신과 같은 종교재단의 학교에 갔다면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평준화정책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 다양성과 수월성을 추구할 수 없었다. 시험을 보아서 입학했던 학생들은 자기들의 자부 심이 대단하여서 남다른 각오와 긍지를 가지고 열심히 해서 남다른 학교의 전통이나 수준에 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들을 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전통이나 자부심과는 거리가 먼 학생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또 비슷한 학력을 가진 사람들끼리 다툴 때와 는 달리 상위권의 학생이라면 조금만 노력하면 금새 눈에 띄고, 성적이 늘 상위권을 유지하 게 되어 있어서 좀 더 쉬운 상대들을 만난 셈이 되었다. 그러므로 진짜 열심히 노력하지 않 아도 된다는 자만심에 빠져 버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일부 대학에서는 이런 학생들을 특차로 또는 정시 모집으로 받아 들였으나 제대 로 따라올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입학 후 보충교육을 받게 하기까지 한다니 참으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 어느 대학교수님은 요즘 학생들이 고등학교에서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는 몰라도, 시험 을 보기 전에 이런 문제가 출제 될 것이라는 소위 말해 예비 문제를 제시해 주지 않고 시험 문제를 출제하면 학생들로부터 "안 가르쳐 준 문제잖아요. 강의 안 한 부분인데 어떻게 시험 문제를 내었어요." 하고, 예고하지 않은 시험문제라고, 또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항의를 받기 일쑤라고 한다. 또한, 이렇게 고교 평준화 정책에 의하여 무시험 전형으로 모두 고등학교에 갈 수 있게 되므로 해서 국가적으로는 소위 말해 3D 업종에 근무할 사람을 없애 버린 결과가 되었다. 결코 어느 직종을 무시하거나 경시하여 말하는 것 같아 대단히 죄송스런 이야기이지만, 사 실상 학력을 갖춘 사람들일수록 이런 산업체에 근무하려고 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옛날처럼 학벌도 없고 배운 것이 없으니까 남의 집에 가서 밥이라도 얻어먹으면서 점원부터 장사하는 방법을 배우기도 하고, 공장에 가서 아주 기초부 터 하나하나 기술을 배워서 기술자가 되기도 하던 맨터링식의 기술이나 사업의 전수 같은 일은 사라져버린 지 오래 되었다. 조금이라도 귀찮은 직종, 남의 밑에서 바닥부터 배우려는 자세 이런 것은 흔히 말하는 학벌 자존심으로 [고등학교까지 나온 내가 기름 때 묻혀 가면서 기계를 만지는 기술을 배울 수는 없지.] 하고, 접근조차 하려고 들지 않는다. 정말 그런가? 지식기반 사회에서 고급 지식이나 기술을 가지지 못한 경우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기는 길은 오히려 남들이 싫어하는 기름 묻히는 일이나 손으로 해야 하는 일들이 훨씬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자존 심만 내세우는 고학력 인텔리 실업자보다는 차라리 중학교만 나와서 일찍 남이 하려 하지 않은 업종은 그만큼 경쟁도 없고 고 수익이 보장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학력의 상 승과 함께 모두들 편하고 쉬운 일자리만 찾기 때문에 3D 업종의 공장 같은 곳에서는 일할 사람 없어서 기계를 놀리고, 외국 근로자들을 불러다가 일을 시키지 않으면 공장이 돌아 갈 수 없을 지경이지만, 젊은이들은 일할 곳이 없다고 실업 타령만 하는 나라가 되어 버린 것 이 아닌가? 또 사무직이나 관리직이라도 중소기업을 택하려는 사람이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우리 젊은이들의 직업관이나 취업 성향은 수많은 외국근로자들을 불러들이지 않으 면 안 되게 만들었고, 이로 인한 국부의 유출은 심해지고 또한 외국근로자가 늘어남에 따른 사회문제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가 요즘처럼 외국근로자 등록이라는 새로운 사 회문제를 일으키게도 하였고, 중소기업들이 임금이 싸고 일손 구하기 편리한 중국이나 북한 으로 공장을 옮겨가므로 해서 일자리가 모자라 늘어나고 있는 실업자들에게 더욱 더 취업문 을 좁게 만드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게 만들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창의성 교육의 부재라는 말을 하고 싶다. 창의성 교육을 중시하고 창의성을 기르는 교육 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한때 유행처럼 번지고 교육의 참 모습인양 설치던 때가 있었다. 그 런데 요즘엔 웬일인지 시들해진 모습이다. 그것은 왜 그랬을까? 진짜 창의성 교육은 자기 개발을 돕는 것인데, 이러한 자기개발이 아닌 어떤 학설에 의한 일제수업 식의 창의성 교육 을 하려고 보니 창의력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창의성을 말살시키는 결과를 가져 온 듯한 느낌이다. 진정으로 그 학생이 무엇을 잘 할 수 있으며, 그 학생이 자기가 하고자 한 일을 실행하므로 해서 어떤 결과를 가져 왔는가가 아닌 창의성 교재에 의해 모두 똑 같은 문제를 가지고 조금 다른 생각을 표현하는 정도가 창의성 교육의 전부인양 오해하고 실천하 면서 자랑해왔으니 오래 갈 수 없을 수밖에 없었다. 수요자 중심이라는 말은 잘하지만 아직도 통제하고 모두 같은 방향으로 시키는 대로 잘 따 르는 학생만이 모범학생이요, 우수 학생으로 생각되는 현실에서는 창의성 교육이란 헛 구호 가 될 뿐일 것이다. 3. 개선을 위해서 요즘 우리 고등학교 교육의 가장 큰 맹점은 다름 아닌 무조건 진학을 시키려는 것이고, 그 주에서도 조금 나은 학생은 무슨 과 이며 본인의 생각이 어떻게든지 유명대학에 입학을 하 도록 권하고 억지로 가도록 이끌어서 교문 앞에 큼지막한 현수막 한 장 붙이는 것을 자랑으 로 삼는다는 것이다. 아니 자랑이 아니라 이것이 학교를 살아남게 만들고 유명하게 만든다 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수능이 끝나고 주요신문들이 가장 크게 보도한 고등학교들을 보라. 익산고등학교, 홍일고등 학교 등이 신문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바로 수능의 성적이 좋았다, 좋은 대학에 많이 입학 시켰다는 것이었다. 물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본인이 가고 싶은 학교에 가게 해주었다면 고등학교에서 할 일 중의 큰 책임 하나를 달성한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수능 점수만이 실력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등학교에서 수능에 대비한 교육을 잘하여 좋은 점수를 받기만을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고등학교 는 평준화 정책에 의하여 입학한 학생들이기 때문에 모든 학생들의 성적이 골고루 섞여 있 고 이들을 잘 가르친다는 것이 어렵고, 또한 많은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학습에 참여하지 못 하고 멍청한 구경꾼 노릇을 할 수밖에 없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요즘 장애우들도 일반학급에서 함께 공부하는 것이 좋다고 한 학급에 집어넣는데 어떠냐고 하실는 지 모르지만, 학생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을 해보았으면 싶다. 일부 학생들은 3년 내 내 자기와는 거의 관계도 없는<자기는 알아들을 수도 없는 공부이어서>선생님의 설명을 들 으면서 열심히 하는 척 하고 앉아 있어야 하였다면 얼마나 힘이 들고 갑갑하였겠는가? 그러므로 이제 전국적으로 상당히 많이 늘어난 특수목적고나, 자립형고등학교 등을 20% 수준까지 늘려서 일부나마 개인 성장을 위해 자기 뜻대로 고등학교를 선택하여 경쟁시험을 치러 입학을 하게 하고, 이런 우수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은 교육<수능만을 위한 교 육이 아닌 영재교육 등>을 시켜서 정말 이 나라의 초석이 될 인재를 기르는 방안을 마련해 주고 길을 터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4. 맺으며 우리나라 교육의 혁명이라 할 중학교 무시함 입학, 고교평준화는 많은 장점도 있었지만 문 제점도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 30여 년을 시행해 본 결과로 얻어진 장단점을 파악하여 다시 재 정비해볼 시기가 왔다고 본다. 이제 더 이상 고등학교의 하향평준화에 동의하고 박수만 치지 않는다는 것은 대부분의 국 민이 알고 있다. 여러 가지 문제점 중에서 중고교에서 가장 많은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학 생들의 학력차를 극복하는 방법을 학교 스스로 개척하여 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학생 들의 인권과 학부모들의 차별화에 대한 염려는 어쩜 3년 내내 내 자녀가 구경꾼으로 전락하 여 고달픈 시간을 보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도 생각해 봐 주어야 할 것이다. 고등학교는 점차 특목고, 자립형 사립고 등으로 다양화 해져야 나름대로 학교를 선택할 수 있고, 남다른 학습법으로 뛰어난 사람은 더 발전의 길을 열어 주고 부진한 학생은 보충을 해가면서 허송세월만 하고 있는 시간을 줄이는 것은 국가적인 생산적 활동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특목고 등 일부 시험으로 선발하는 학교를 조금 더 늘리고, 일반 학교에서도 우열반을 편성하여 조금이나마 낭비 없는 학습으로 정말 이 나라의 고등학교교육이 바로 서고, 학교 생활이 힘들고 괴로운 학생들의 수를 줄이는 것은 국가적인 낭비를 줄이는 일이 요, 국가인권의 향상이지 학부모의 요구처럼 결코 차별화가 아니라는 것은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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