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유명한 역사 저술가인 사마천이 『사기(史記)』에서 재밌는 이야기를 했다. 정치에도 등급이 있단다. 1등급은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순리의 정치요, 2등급은 이익으로 백성을 이끄는, 백성을 잘 살게 만드는 정치다. 3등급은 백성들이 깨우치도록 가르치는 훈계형 정치인 반면 4등급은 백성들을 일률적으로 바로잡으려는 위압 정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지도자들은 어느 등급에 속할까?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몇 등급일까?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며칠 전에 볼리비아의 대통령으로 삼선(三選)에 성공한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은?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예컨대, 지금 오바마 대통령은 중동 지역의 암이라고 비난한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를 궁극적으로 파괴한다는 명목 아래 이라크에 이어 시리아까지 공습을 확대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 5개국과 영국, 프랑스, 호주 등이 이 중동지역의 암 박멸 작전에서 미국을 돕겠다고 나섰다.

세계 최강의 군사대국인 미국이 연합국의 도움을 받으면서까지 작전을 펼쳤건만 이슬람국가가 터키 접경 지역인 코바니까지 진격하는 걸 막지 못했다.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이뿐만 아니라 미국의 중동 개입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몇 가지 있다. 정말 이슬람국가가 그렇게 미국과 유럽에 위협적인 존재일까? 사람들은 IS가 공개한 참수 동영상을 가리키면서 그들의 잔인성에 치를 떤다. 무슬림들도 이슬람국가는 이슬람교의 평화와는 무관하다고 단언한다. 물론 이슬람국가의 광신적인 폭력의 비판에는 공감한다. 그런데 잔인하다고 해서 위협적인가? 언론을 통해서 잔인함이 부각되는 이유는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미국의 시리아 공습 확대를 선언한 이후의 군사 작전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난이 거세다. 물론 국제법 해석의 논란의 여지는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시리아 정부는 미국과 연합국에게 자국 내의 이슬람국가 반군을 공격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슬람국가를 공습하기 전에 시리아 정부에 통보를 했을 뿐이다. 통보가 개입을 정당화시킨다고 깜박 속아서는 안 된다. 지금 한국 상공에 미국 전투기가 국민 허락도 없이 들어와 자기 맘에 들지 않는 적들을 향해 폭탄을 퍼붓는다고 생각해 보라!

이를 통해서 보면 미국의 오바마 정치는 1등급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 성장에 기여한 점이 보이고, 잦은 기자회견을 통해 자기 입장을 전달해 소통과 설득을 시도한 점 등은 넓은 의미에서 3등급 정치에 부합하는 측면도 있다고 본다. 그럼 4등급은 어떤가? 오바마가 위압정치를 한다? 미국의 알렉스 존스 같은 언론인은 미국은 경찰국가라고 본다. 그런 측면이 없다고 볼 순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오바마가 경찰국가를 ‘의지(意志)’하고 있는 것처럼은 보이지는 않는다…4등급은 통과.

유럽의 강국 독일 메르켈 총리는 미국의 차기 대권 주자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저술한『어려운 선택』이란 책에서 능력 있는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무난해 보이는 정국 운영으로 1등급인 것 같지만 이슬람국가와의 대항 전쟁에서 미국 편을 드는 것을 봐서 미국-서방 연합에는 좀 구린 구석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기업인만 배부르게 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독일을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엔진으로 만들었다는 공로로 2등급 정치와 어울린다. 사마천의 정치 등급을 보면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을 나름대로 가늠해볼 수 있는 실마리가 잡힌다.

얼마 전 한국대학신문이 대학생 의식 조사 결과를 보면 대학생들이 가장 불신하는 집단은 정치인으로 나왔다. 응답자의 85%가 정치인을 가장 믿지 못할 족속으로 보았다. 이는 정말 놀랄 만한 일이다. 아직도 대학생 중 15%는 정치인을 신뢰하고 있단 말인가?

사마천이 말한 정치의 등급은 하나 더 있다. 바로 5등급이다. 이 등급은 가장 못난 정치로 백성들과 다투는 정치다. 그는 또 백성과 다투는 제왕은 가장 비참한 지도자이며 그 백성은 가장 슬픈 백성이라고 지적했다. 백성과 다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정부 비판적인 국민에게 사사건건 소송을 건다든가 아니면 정보기관을 동원해 뒷조사를 해서 말을 듣지 않을 때는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게끔 유도하는 계략도 있다. 이는 4등급의 '위압의 정치'와도 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5등급 이하도 있다는 의견을 내놓는 사람들이 적잖다. 경향신문 박래용 칼럼리스트는 ‘백성을 외면하고 무시하고 짜증을 내는, 사마천이 상상조차 못한 6등급 정치’가 있다고 본다. 물론 7등급도 존재할 것이다.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국민과 굳은 약속을 했다가 사정권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싶자 헌신짝처럼 약속을 내팽개치는 ‘불신의 정치’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스펙 쌓기에 시달리는 한국 대학생들이지만 7등급의 정치 행태를 몸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일까? 8등급은 끼리끼리 어울려 국정을 농단하는 환관 정치이며 9등급은 국민들의 고민은 나 몰라라 버려두고 제 치적 쌓기에만 골몰하는 허영의 정치가 아닐까. 그럼 10등급 정치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의견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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