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그리고 <퇴마록>과 <28>...

바람이 차졌다. 계절이 계절인 만큼 책 한권 펼쳐볼까, 맘을 내본다…해도, 막상 습관이 되어있지 않다면 포즈만 취하는데 그치곤 했던 적이 태반이었다. 그런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흥미진진한 장르문학 한 편이라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흥미진진한 장르문학 한 편이라면?

지난 봄 서울 로케이션 촬영으로 큰 화제가 되었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어벤져스>의 시니라오 원작은 신화, 외계인, 마법, 초인, 초능력이 존재하는 평행우주 세계관을 기본으로 활약하는 슈퍼히어로들 스토리로 미국에서 대히트를 친 마블 코믹스 시리즈다. 그 외 근래 상업영화나 드라마, 공연계의 통계를 살피면 장르문학은 거리가 먼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다. 일단 코믹물에 비해 문학적 가치를 지향하는 그래픽 노블, 추리, 코미디, SF, 할리퀸 로맨스, 공포물…… 명칭의 거리감과 위상에 비해 장르문학은 대중문화의 원천 소스로 사실 우리에겐 이미 매우 친숙한 존재다.

 

출판계 훈풍이 불었던 지난 몇 년, 국내 및 해외의 베스트셀러 결산 자료를 상기해보자. 여성작가 스테프니 메이어의 <트와일라잇> 시리즈와 욘 린드크비스트의 <렛 미 인>, 댄 브라운의 <로스트 심벌>은 해리포터 시리즈 이후 출판계 폭풍을 일으켰다. 이후 코맥 맥카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로드>, 스티그 라르손의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넬레 노이 하우스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등이 히트를 쳤다. 책에서 등 돌렸던 대중들은 스티븐 킹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이들 호러풍 미스터리에, '그 두꺼운! 책들을 차마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고 반응하며 열광했다.

국내의 경우 이미 이영도, 듀나 등의 작품이 온오프라인 독서시장에 실제적인 영향을 미치며 유사한 분위기에 불을 붙였던 것이 사실이다. 제 2회 창비청소년 문학상 수상작인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와 제 3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배미주의 <싱커>는 스릴러 요소가 강한 판타지물이었다. SF 전문출판사에서 출간되어 반향을 일으켰던 배명훈의 <타워>와 2009 제 1회 멀티미디어문학상 수상작인 동시에 문학동네 선정 ‘젊은문학상’ 수상작인 김이환의 <절망의 구>는 본격 SF다. 이제는 로맨스의 새로운 정전 대접을 받는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규장각각신들의 나날> 시리즈 또한 팩선 장르물이다.

김훈, 그리고 이인화, 김탁환의 일련의 작품들은 역사적 사실과 허구가 결합된 팩션 붐을 일으켰다. 특히 김훈은 한국 최초의 무협소설 작가셨던 아버지 김광주 씨에게서 문학적 토양을 키워 남성적이고 칼날같은 날렵한 독특한 문체를 선보였다. <드래곤라자>, <퇴마록>의 이영도와 이우혁, 좌백의 등장 이후 <묵향>, 박민규의 2009년 화제작 <卍>, <노블레스>처럼 무협과 판타지가 결합된 소위 '판협물'도 쏟아져 인기 상종가를 쳤다.

근래에는 순수문학계 내에서도 신세대 작가들에게서 경계가 무의미해지는 변화의 조짐들이 있었다. 외계인과의 조우를 소재로 했던 박민규의 <핑퐁>과 뒤를 이어 소설가 윤이형, 김중혁, 김언수, 박형서, 천명관 등은 SF적 설정을 따르는 퓨전소설들을 발표하고 있다. 무엇보다 <7년의 밤>과 <28>를 연이은 히트시킨 신예 정유정은 "대형 괴물 작가의 탄생으로 한국형 국산 장르 문학의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는 호평 속에 평단과 독자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다.

순수문학과 구별 혹은 대별하기 위해 장르라는 범박한 카테고리로 통칭되고 있지만 사실 장르문학의 규모는 크고 다양하다. 추리, 스릴러, 미스터리, 판타지, 무협, 로맨스, SF나 호러 공포물, 그 외 장르의 하이브리드를 추구하고 문예적 성격이 짙었던 198․90년대 걸작순정만화 등이 각각의 고유색과 매력으로 미니아들을 확보하고 있다.

남미 환상문학의 거장 가르시아 마르께스가 문학사에서 환상은 반복적으로 억압되어왔다는 사실을 비판적 어조로 거론했던 <환상과 예술의 창조>라는 에세이에는 이와 같은 맥락의 글이 실려 있다.

“한 인간이 거대한 벌레로 변한 채 새벽녘에 깨어났다는 구상이 아무리 '환상'적(즉 실제적이지 않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 누구도 카프카의 창조적 능력을 헛된 공상이라 비난하지는 않는다. 또한 환상은 월트 디즈니가 즐겨 사용한 수단이었다.... 나는 환상이 헛된 망상 따위가 아니라, 사전적 정의와는 반대로 예술가들이 그들이 처한 현실에서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는 ‘특별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상상은 내가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유일한 예술적 창조이다........”

사이버 문화의 발전 및 이데올로기의 퇴화 등 시대적 요청에 따라 장르문학은 현대 문화의 경향에서 매우 주요한 코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또 하나의 새로운 주류로 편입되어 대중문화의 실질적 심층으로 파고 든 것이다.

정여진 칼럼니스트 holy-lux@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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