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속내 안비쳐

지난 3월23일, 이날은 고 건 전 총리에게 잊지 못할 날로 기억될 것이다. 정치적 행보를 떠나 물 밑에 잠수하고 있던 고 전 총리가 대권을 위해 움직인 날이기 때문이다. 이날 고 전 총리의 전라북도 방문은 새만금 방조제 공사 현장 방문, 강현욱 전라북도 지사와의 면담, 그리고 전북대학교 강연으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관심이 끄는 부분은 각각의 행사보다는 그가 대권 주자로서 갖는 정치적 위상의 실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방문 기간에 고 전 총리의 정치 세력이 실체를 드러냈다. 우민회와 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이하 한미준) 등이 고 전 총리의 측근에서 그를 보좌하고 있었다. 이 중 가장 주목할 만한 단체는 우민회였다. 우민회의 도움으로 대권주자로서 고 전 총리는 같은 날 전북을 찾은 정동영 당의장과의 세 대결에서 이겼다는 분위기를 풍겼다. 고 전 총리를 둘러싼 또 하나의 세력인 한미준 사람들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었지만, 이들 또한 조용히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고 전 총리가 자신의 지원군을 확인하고 진정한 대선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시작점을 자신의 텃밭인 전북에서 시작했다. ◆고건, ‘나를 따르라’ 고 전 총리를 돕는 ‘친위조직’이 속속 생겨나고 주변에 인재들도 서서히 몰리기 시작했다. 그를 지지하는 세력은 크게 세가지로 분류된다. ‘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한미준)’과 ‘미래와 경제포럼(미래와 경제)’, 그리고 순수 인터넷 동호회 모임인 ‘우민회’가 그들이다. 고 전 총리의 친위·외곽 단체들이 속속 출범하고 있다. 그가 정치 진입 시기를 저울질하는 상황에서 외곽단체들의 대권 행보를 재촉하는 형국이다. 이들의 역할 분담도 거의 이루어진 상황이다. ‘한미준’이 정치 분야를 ‘미래와 경제’가 졍제 분야, ‘우민회’는 제2의 ‘노사모’ 바람을 인터넷에 불어주는 형태다. 먼저 지난달 20일엔 ‘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한미준)’ 창립 발기인 대회가 열렸다. 한미준의 뿌리는 과거 그의 민선 서울시장 후보 시절 선거활동을 지원한 ‘동숭동팀’이다. 또한 한미준은 오는 30일 경북 안동에서 첫 지구당 창당대회를 연 뒤 전라도와 대구, 대전을 거쳐 다음달 27일 서울에서 중앙당 창당식을 열 예정이다. 14일 공식 출범하는 ‘미래와 경제포럼’(미래와 경제)도 출범과 동시에 고 전총리에게 힘을 실어줄 태세다. 이 포럼엔 이세중 변호사와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최열 환경재단 상임이사, 박권상 전 KBS 사장, 송월주 전 조계종 총무원장 등 각계 인사 14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창립 발기인 대회에서 “총체적 국가경쟁력 강화 방안을 최우선적으로 모색한다.”고 밝혀, 평소 고 전 총리가 주창하는 ‘창조적 실용주의 리더십’과 맥이 닿는다. 이 자리에는 고 전 총리가 직접 격려사를 하기로 했다. 그동안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는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자제해 온 것에 비춰보면 고 전총리를 지지하는 세력이 주도하는 행사에 나가 격려사를 하는 것은 상징적인 변화로 해석된다. ‘우민회’의 존재도 무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 순수 모임이다. 현재는 봉사활동에 주력하고 있지만 일부에서 “정치세력으로 키우자.”는 목소리와 함께 역시 이번 지방선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민회 전북지회 고문을 맡고 있는 이건식씨가 김제시장에, 핵심 멤버인 이돈승씨가 완주군수에 출사표를 던진 상태다. 이돈승씨는 “송웅래 전 군산시장 직무대행, 장재영 장수군수, 김종규 부안군수, 김진억 임실군수 등이 우민회에 직·간접으로 관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제 그의 정치적 지지기반들은 움직일 준비를 마친 셈이다. 한미준의 이용휘 조직위원장이 “우리 ‘한미준’과 네티즌 팬클럽인 ‘우민회’, 그리고 자문그룹인 ‘미래와 경제’, 이렇게 세 지원 그룹의 역할 분담 총괄을, 고건 캠프의 핵심인 김덕봉 전 총리공보수석이 직접 맡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혀, 고건 전 총리 캠프가 직접 외곽 지원 그룹을 총괄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외에도 내무부(행자부) 시절 인연을 맺은 공무원 출신 인사들의 모임인 ‘초당회’ ‘보름회’ ‘목우회’, 정치권에서 경기고 52회 후배들로 구성된 ‘화목회’,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출신 동문과 고시 13회 동기 모임 등도 고 전 총리의 “OK” 신호만 나오면 언제든지 그를 지지하고 나설 세력들이다. 여기에 고 전 총리는 지난해 한겨레신문 경제부 기자를 지낸 강세준씨를 영입, 공보 직무를 맡긴 데 이어 서울 종로에 ‘한국의 미래와 경제를 생각하는 연구소’를 개설했다. 이제 대선을 향한 발검음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아직은? 아니면 지금 해볼까? 현재 고 전 총리는 아무런 행동을 취하고 있지 않고 있다. 지방선거에 대해 "정당차원의 개입은 없다"는 입장만을 계속 천명하고 있다. 지난 달 24일 창당 기자회견을 한 박갑도 한미준 대변인은 고건 전 총리에 대해 “'한미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듯하지만,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 생각한다”며 “언젠가는 뜻을 같이 할 것이다”고 말해 고 전총리에 대한 입장을 밝히며 ‘짝사랑’의 의지를 표명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고 전 총리측은 "일방적인 기대"라고 전제한 뒤 "한미준과 고건은 전혀 관계가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철저하게 기다리는 듯한 인상만을 풍기고 있다. 또한 거대야당에 맞서는 군소정당들의 러브콜도 한창이다. 지난 5일 민주당의 한화갑 대표와 국민중심당의 신국환 공동대표가 오찬회동을 하면서 고 전 총리와의 연대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이렇듯 구애를 한 몸에 받고는 있지만 돌부처처럼 움직이지 않던 고 전 총리가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미묘한 입장변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한미준과 우민회 출신들이 앞 다투어 출마하면서 이제 고 전 총리는 현실 정치에 자동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는 않더라도 그렇다고 내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의 측근은 "고 전 총리가 최근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가까운 분들에 대해 개인적인 지원이 가능한지 여부를 놓고 고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당차원의지지 입장이 아닌 ‘맨투맨’ 형식의 지원은 가능하다는 입장 변화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 전 총리가 이렇게 입장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정치활동 선언과는 별개로 이미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유권자들에게 인지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가 대권의 길목인 지방선거에서 무작정 뒷짐 지고 먼산 보듯 물러서 있는 것은 무책임하게 비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고 전 총리는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유력한 박주선 전 의원과 면담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공개적으로 고 전 총리의 지지를 얻고 싶다고 밝힌 박 전 의원은 고 전 총리측에 간접적으로 면담의사를 전했다는 후문이다. 박 전 의원은 "고건 전 총리가 민주당 후보로서 서울시장을 지낸 분이라 민주당을 굉장히 선호하는 것은 틀림없다"며"언젠가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의사표명이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 본다" 고 강조했다. 도움을 달라고 직접적으로 밝힌 부분이다. 이 부분에 대해 고 전 총리측은 "찾아오는 사람을 막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대권 행보를 거듭하면서도 여전히 신중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때가 되면 결단을 내리고 밥상을 차려야 한다면 같이 차리겠다”고 말했다. 이제 고 전 총리의 말대로 밥상은 차려졌다.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서 행해진 많은 여론조사애서 그는 1년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그의 정치력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 마치 먹이를 잡기위해 차분히 자신을 안보이고 낮추는 맹수처럼 말이다. 고 전 총리가 차기 대선 경쟁의 ‘태풍의 눈’이 될지, 아니면 미풍으로 그칠지 대권경쟁의 막은 이미 오른 상태다. 그러나 지지세력 만을 의지 한 채 실체적 영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는 뒤쫓아 오는 정 의장에게 모든 것을 양보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