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단통법에 오히려 보조금 줄어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이 지난 1일부로 전격 시행됐다. 그러나 시장 반응이 심상치 않다. 일각에선 단통법이 시행되면서 오히려 휴대폰 구입 비용이 증가했다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실제로 이동통신3사가 법으로 정한 보조금 최고한도인 30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보조금을 책정하면서 휴대폰 신규가입 및 번호이동 고객이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반면 기기변경이 늘어나고 중고폰 가격이 상승하는 등, 시장이 큰폭으로 변화하고 있다. 일각에선 “예전에는 누가 발품을 많이 파느냐에 따라서 요금 차별이 생겼던 것이었다면, 이제는 누가 비싼 요금제를 쓰느냐에 따른 차별만 남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 단통법 시행 후 생긴 문제의 핵심은 당초의 목적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보조금 액수가 법으로 정한 상한선에 채 미치지 못하는 적은 액수였던 것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전 세계에서 스마트폰을 가장 비싸게 사야 되는 나라로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뉴시스

단통법이란, 이용자 간 부당한 보조금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다. 휴대폰 구매 시 가입유형(신규, 기변), 지역 등에 따라 부당한 보조금 차별이 금지되면서, 불합리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 단통법의 골자다. 다만 이통사는 요금제에 따라 합리적인 수준에서 차별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다. 이통사는 홈페이지에 보조금을 공시하고 대리점과 판매점은 영업점에 보조금을 게시하게 된다.

보조금을 받지 않고 이동통신서비스에 가입하는 소비자들은 보조금 만큼 추가적인 요금할인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한 예로 자급제 폰을 사용하거나 기존에 폰으로 이동통신 서비스만 가입하고자 하는 소비자는 매월 납부요금의 12%를 추가 할인받을 수 있게 된다. 휴대폰 구입 시 지원되는 보조금과 서비스 약정가입 시 지원되는 요금할인액을 합쳐 ‘공짜폰’ 인 것처럼 소비자를 기만하고 허위 광고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휴대폰 보조금 규제대상도 기존 이통사에서 제조사, 대리점, 판매점으로 확대된다.

◆시작부터 ‘반쪽’난 단통법
단통법은 핵심이었던 ‘분리공시제’가 채택되지 않으면서 시행 전부터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우려를 받아야만 했다. 보조금 분리공시제란 이용자가 받을 수 있는 전체 휴대폰 보조금 가운데 이동통신업체와 휴대폰 제조사가 각각 지급하는 보조금 액수가 얼마인지 공개하는 것이다. 제조사와 이통사가 지급되는 보조금 액수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셈이다.

여기에 각 단말기별로 보조금 액수까지 공시하게끔 되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단말기별 지급 보조금을 확인한 다음에 어떤 제품을 구입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단통법을 추진해 온 방통위와 미래부는 소비자가 보조금 출처 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 이통업계의 과도한 보조금 경쟁이 완화될 것이라며 제도 도입을 추진해왔다.

단통법에 따르면 휴대전화를 개통하는 고객은 이통사로부터 지원금을 받거나 지원금 액수에 따른 요금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제조사와 이통사가 지급하는 지원금 규모를 알 수 있어야 고객들이 실제로 혜택을 찾아갈 수 있다. 분리공시는 제조사와 이통사 중 누가 불법 보조금을 살포했는지 가릴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달 24일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는 심사를 통해 단통법 하부 고시안에 포함시킬 예정이었던 분리공시제를 채택하지 않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서 법제처는 이통사가 정부에 제출하는 보조금 자료에 제조사별 장려금 규모를 알 수 있도록 자료를 작성하지 못하도록 한 단통법 제12조 1항을 문제 삼아 분리공시제 도입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조항에서는 이동통신사업자가 휴대전화 단말기의 판매량 및 출고가, 이통사 지원금, 단말기 제조사의 판매장려금 등에 대한 자료를 정부에 제출하되 제조사별 판매장려금 규모를 알 수 있도록 자료가 작성돼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제조사의 판매장려금을 대외적으로 공개해선 안 된다’고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분리공시제가 제외되면서 정확히 이통사들이 보조금을 얼마나 사용했는지 알 수 없게 돼, 휴대폰을 이통사에서 구입하지 않거나(자급제폰) 기존 휴대폰을 그대로 사용하는 이용자들의 요금 할인 폭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뿐만 아니라 제조사들이 공격적 마케팅을 위해 특정 휴대폰이나 특정 이통사에 밀어주기식 보조금을 비밀리에 지급할 수 있어 이통시장은 단통법 시행 이전과 마찬가지로 혼탁을 막기 어렵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단통법의 투명성이 사라졌다”며 “제조사의 공격적 마케팅을 제어할 고삐가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부득불 시행한 단통법…싸늘한 시장
‘반쪽짜리’ 단통법의 시행 이후 시장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2일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집계에 따르면 단통법이 시행된 1일 번호이동 건수는 4524건으로 2012년 1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단통법 시행 직전인 22~26일 일 평균 번호이동건수 1만6178건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업계에서 분석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지원금 수준이 낮다는 점과 소비자들의 지켜보자는 심리가 맞물렸다는 것이다. 이통 3사가 단통법 시행에 맞춰 자사 홈페이지에 공시한 휴대폰 보조금 액수는 갤럭시노트4(출고가 95만7000원) 기준 보조금 최고 상한가 30만원(최대 34만5000원)에 못 미치는 6~11만 원 선으로 공시됐다. 너무 낮은 보조금에 원성이 끊이지 않자, 이통사는 지난 8일 보조금을 소액 상향조정했다. 갤럭시노트4 기준 보조금이 11만1000원에서 16만2000원 선으로 약 5만원 가량이 상승한 것. 그러나 여전히 인상폭이 미미해 소비자들의 불만은 끊이지 않고 있다.

2년간 아이폰4를 사용해 교체시기를 저울질 하고 있다는 오모(22·여)양은 “과거와 비교했을 때 핸드폰 구입 가격이 너무 높아졌다. 이번에 스마트폰을 바꿀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계속 써야할 것 같다”며 “주변 친구들 역시 스마트폰 가격이 너무 비싸졌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단통법 폐지를 위한 1만인 서명운동에 나선 시민단체 ‘컨슈머워치’의 김진국 대표는 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주변에서 저에게 이게(단통법) 도대체 어떤 법이냐고 묻는다. ‘나쁜 법이죠’ 제가 한 마디로 그렇게 얘기한다”며 “왜냐하면 평등하게 다 같이 비싸게 사게 만든 거다. 그렇다면 그거는 결코 좋은 법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발품을 판다든가 정보를 열심히 찾으려고 했던 사람은 자기가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다. 지금은 노력하지 않아도 일정하게 받지만 우리 모두가 다 비싸게 산다”며 “이건 소비자 전체로 보면 분산된 손실이 훨씬 더 큰 거 아니겠느냐?”라고 덧붙였다.

실례로 지난 8일 <JTBC>의 조사에 따르면, 갤럭시S5 모델로 한 달 7만 5천 원짜리 요금제에 가입할 경우 기계값은 단통법 시행 이전이나 이후나 89만 원 정도로 똑같았지만 보조금의 경우 단통법 이전엔 65만 원 정도, 시행 이후에는 14만 6천 원으로으로 줄어들었다. 한 달에 내야 되는 요금을 기준으로 비교해보면, 단통법 이전에는 7만 3천 원 정도였었는데, 청구요금이 9만 5천 원 정도로 오르게 된다. 스마트폰을 보통 2년 약정으로 구입한다는 것으로 미루어보면, 다 합치면 53만 원 정도 차이가 난다고 계산할 수 있다.

▲ 단통법이 시행되자 대다수 국민들은 단통법을 불만스럽게 여기고 있다. 단통법 폐지를 위한 1만인 서명운동에 나선 시민단체 ‘컨슈머워치’의 김진국 대표는 “(단통법은)결코 좋은 법이 아니다”라고 평했다. ⓒ뉴시스

◆문제는 무엇인가
결국 단통법 시행 후 생긴 문제의 핵심은 당초의 목적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방통위는 경우에 따라 들쑥날쑥했던 보조금을 딱 상한선 30만 원으로 법으로 못 박아 불필요한 출혈을 없애고 그 대신, 다른 쪽으로 이통사들의 경쟁을 유도해 요금 자체를 낮추겠다는 것을 단통법의 주 시행 목적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보조금 액수가 30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적은 액수였던 것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 “기업들이 할인해주거나 가격경쟁을 할 이유를 다 뺏어버렸기 때문에 소비자들한테 훨씬 불리하게, 아마 전 세계에서 스마트폰을 가장 비싸게 사야 되는 나라로 바뀌었다”라며 “고객도 못 뺏어오는데 뭐 하러 가격을 낮춰 주겠느냐? 그래서 (보조금을 통해 가격을)안 깎아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통법 3조에 따르면 번호 이동과 신규 가입, 기기 변경 등 방법에 관계없이 보조금 액수를 차별하지 못한다. 즉, 모든 업체가 마찬가지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타사보다 보조금을 더 줄 이유가 없게 된 것이다.

아울러 논란이 되는 부분은 소비자가 가입한 요금제에 따라 보조금 액수가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앞서 <JTBC>의 예에서 7만 5천원 요금제가 아닌 3만 5천원짜리 요금제를 가입할 경우, 14만원이던 보조금이 6만 9천원으로 줄어들게 된다. 단통법 시행 이전에 그래도 3만 5000원짜리 요금제를 하면 한 달에 4만 원 정도만 내면 됐던 반면, 이제는 청구요금이 6만 7300원까지 올라간 것이다.

단통법 시행령에 따르면 요금제별 기대수익과 시장 환경변화에 따라서 지원금을 차등지급할 수 있다고 명기되어 있다. 일각에서는 이 시행령이 결국 이통사가 자기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기준으로 보조금을 마음대로 정할 수가 있다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예전에는 누가 발품을 많이 파느냐에 따라서 요금 차별이 생겼던 것이었다면, 이제는 누가 비싼 요금제를 쓰느냐에 따른 차별만 남았다는 지적도 있다.

◆시작된 지각변동
단통법이 시행된 1주일, 신규가입과 번호이동이 크게 줄고 기기변경 가입자가 늘었다. 아울러 중고폰 가격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 단통법의 효능에 시장이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9일 미래창조과학부의 이통시장 분석에 따르면, 단통법 시행 첫 주인 1∼7일 이통 3사의 하루 평균 가입자는 4만4500건으로 지난달 평균 6만6900건에 비해 33.5%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신규 가입자가 3만3300건에서 1만4000건으로 58% 줄었고, 번호이동도 1만7100건에서 9100건으로 46.8% 감소했다.

반대로 기기변경 가입자는 1만6500건에서 2만1400건으로 29.7% 증가했다. 이는 가입 형태에 따른 보조금 차별이 금지됨에 따라 기기변경 가입자도 일정 부분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으로 미래부는 분석했다. 이달 1일부터 7일까지 이동통신 3사의 하루 평균 중고폰 개통은 4800건으로 집계됐다. 단통법 시행 직전인 9월의 하루 평균 2900건에 비해 63.4% 늘었다.

이는 이통사에서 단말기를 새로 구입하지 않고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중고 단말기나 자체 조달한 자급제 단말기로 이통사 서비스에 가입하면 12%의 요금할인을 해주는 ‘분리요금제’의 영향으로 보인다. 업계에선 “매 약 60만~100만명의 이동통신 가입자가 매월 약정이 만료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중고폰을 개통하는 가입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리고 내다봤다.

중고폰 수요가 늘어나면서 중고폰 가격도 소폭 상승 중이다. 갤럭시S4 중고폰의 경우, 올해 6월 17만~18만 원대에 거래되던 것이 최근 21만 원대까지 올랐고, 중고 갤럭시노트2의 가격 역시 13만~14만 원대 거래되던 것이 18만 원대로 올랐다.

요금제별로는 중저가 요금제 가입자 증가가 두드러졌다. 중저가 요금제인 2만원~4만 원대 요금제와 5만원~7만 원대 요금제 가입자 비중은 9월에 비해 증가한 반면, 8만원 요금제 이상 가입자는 감소하고 있다.

2만원~4만 원대 요금제의 경우 9월 평균 31.0%에서 단통법 시행 첫날인 1일 37.5%, 2일 43.4%, 6·7일 47.7% 등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반면 85요금제 이상은 전달 평균 27.1%에서 현재 10% 안팎까지 떨어졌다. 9월 평균 27.1%의 비중을 차지하던 8만 원대 요금제는 이달 1일 9.3%로 급감했으며 7일에는 전체 요금제 중 소비자들이 찾는 비중이 8.5%에 머물렀다.

이는 단통법 시행으로 과거 보조금이 거의 없다시피 했던 중저가 요금제 가입자도 일정 액수의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보조금 지급을 조건으로 일정 기간 고가요금제를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영업행위가 금지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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