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당국과 소위 ‘우산혁명’을 이끄는 학생 지도부와의 회담이 9일(현지시각) 취소됐다. 한국에선 총리격에 해당하는 홍콩 캐리 램 정무사장은 시위 주도자들이 거리 점거를 계속하겠다는 것은 “건설적인 대화를 갖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며 시위 학생 지도부를 향해 ‘신뢰를 깼다’고 비난했다.

그녀는 “대화가 더 많은 사람들을 시위에 가담시키겠다는 구실로 이용돼선 안 된다. 이 불법 점거 활동은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UPI통신>이 9일 전했다.

이 발표가 있기 전에 시위 학생 지도부는 정부가 양보를 하지 않을 경우 더 강력한 시위를 하겠다고 밝혔고, 이 시위를 지지하는 의원들도 법안 통과를 막아 정부 행동을 제지할 것을 약속했다.

이른바 ‘우산혁명’ 시위는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의 입후보자들을 중국 정부가 심사한 인물들로만 국한한다는 발표 이후 ‘완전한 자유 직선제’를 요구하며 시작됐다. 그러나 정부 청사 점거 예고에도 홍콩 및 중국 정부가 선거에 대한 애초 입장을 고수하며 어떤 일이 있어도 그것만은 허용될 수 없다는 듯 요지부동이었다.

게다가 친중국 단체들의 폭력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시위 이미지가 유혈로 덧칠됐다. 시위대를 보는 주변의 생활경제인들의 불평이 집중적으로 보도되면서 센트럴 등을 점거했던 시위자들의 수가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현저히 줄어들었다.

또한 이번 시위가 미국에 의해 주도됐다는 보도가 홍콩인들의 민족의식을 자극했던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이 같은 보도들이 쏟아지던 때를 즈음해 시위 열기가 급격히 식어갔기 때문이다. 중국 관영 매체들의 이런 주장에 대해 학생 시위 주도자인 ‘조슈아 웡’은 언론 주장을 조목조목 부정했지만 반전의 기회로 삼지는 못했다. 또한 미국도 이런 보도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아 결과적으로는 친중국 매체들의 보도의 신빙성을 더해 준 꼴이 됐다.

미국은 요즘 뭐 하나 시원하게 잘하는 게 안 보인다. 오바마는 언론이 눈쌀을 찌푸릴 정도로 골프 치러 다니고 양당은 의원 선거에 올인한 듯하다. 시리아 내전에 대한 공습 작전도 사실상 실패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미국이 홍콩 시위의 숨은 배후라고 하니 기분 좋을 사람이 있을까.

하여 홍콩 시위 지도부는 렁춘잉 장관 측과의 전격 협상을 통해 정체 상태에 빠진 운동에 돌파구를 뚫으려 했으나 회담을 한다고 해도 ‘완전 자유직선제’ 요구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거리 점거 시위를 계속해 나가는 쪽으로 가닥을 잡자, 이에 홍콩 정부가 회담을 취소한 것이다.

홍콩 당국 입장에서 회담을 하고자 했던 속내는 강제 진압이라는 무리수를 두지 않고, 회담 과정 속에서 시위대의 자진 해산을 이끌어내 최종적으로는 무난하게 ‘중국식 직선제’를 관철시켜나갈 분위기를 조성하려 했던 것이다. 홍콩 당국은 시위대에게 협상과 점거 시위라는 두 가지 카드를 모두 내줄 수 없었다.

그나저나 홍콩 시위대는 상황을 역전시킬 계기가 없어 고민이다. 현재로선 시위 지도부가 오로지 믿는 것은 시민들의 더 많은 시위 참여뿐이다. 그러려면 민주주의보다 지금 당장의 먹고 살아야 하는 현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시민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그럴 시간도 힘도 부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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