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국회 모두 실태조사조차 없어

말로만 관심…정작 토론회엔 무관심 소수만 참석 한국계미국프로풋볼(NFL) 스타 하인스 워드의 방한을 계기로 혼혈인 지위향상 및 처우개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국내 혼혈인의 사회적 차별대우를 금지하는 법안 마련에 여야가 적극 나서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정작 5일 국회에서 열린‘혼혈인의 실상과 대책’세미나에는 참석자가 60여명에 불과했다. 이날 세미나는 한나라당 이재오 원내 대표가 주최를 하고, 정치권의‘뉴스메이커’유시민 복지부장관과 김원기 국회의장이 참석했음에도 시민단체와 언론에 주목을 받지 못했다. 더욱이 이날 여야는 혼혈인의 사회적 차별대우를 금지하는 내용의 입법에 적극 나서기로 밝힌 바 있어 '말로만 관심'을 보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원내대표는 이날 개회사를 통해"하이스 워드 선수의 방문으로 대외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혼혈인 문제이지만 홍보가 많이 되지 않은 것 같다"면서 "워드 선수를 불렀으면 사람들이 많이 왔을 텐데"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더욱이 행사에 유시민 장관과 김원기 의장이 30분 늦게 도착, 기다리는 참석자들과 보좌진들의 애를 태우기도 했다. 늦게 단상에 오른 유 장관은 축사를 통해"내가 아주 좋아하는 혼혈인 두 분이 있는데 가수 인순이, 윤수일이다"고 관심을 표명하며 "외모가 독특하다고 해도 하나의 공동체라 생각하고, 다문화를 받아들일 자세를 갖추면 혼혈인 문제는 낳아 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 장관은 이어"혼혈인에 대한 '반짝 관심'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뿌리 깊은 순혈주의를 타파하고, 배척과 냉대를 넘어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다문화 사회를 구축하는 주춧돌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토론회에서는 그동안 우리 정부와 국회가 얼마나 무관심했는지가 여실히 드러났다.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은 "혼혈인 관련 정부의 실태조사보고서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어느 부처 소관인지도 정확하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소극적이었던 부분을 반성한다"고 사과했다. 국회도 토론회를 여는데도 소극적이었다. 국제가족총연합회 서영훈 상임고문은 "앞서 2명의 국회의원에게 부탁을 했으나 승낙을 받지 못했고 한나라당 이재오 원내 대표가 나서줘서 겨우 토론회를 열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원기 국회의장도"평소에 이런 관심을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토론회에 대한 관심도 부족해 보였다. 참석했던 몇몇 의원들은 인사만 한 뒤 자리를 떴다. 토론회 장소인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은 빈자리가 훨씬 많았다. 보좌진들은 전화로 이곳저곳에 참석을 독려했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동안의 무관심을 질책하듯 국회에 대한 요구가 이어졌다. 이날 행사를 위해 미국에서 방문한 펄벅재단 자넷 민처(Janet L. Mintzer)대표는 "이미 우리재단은 오래 전부터 소외받는 혼혈인들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며 "한국사회에서 혼혈아동을 돕고, 많은 관심으로 따뜻하게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 이 원내대표도"국제사회의 도래로 혼혈인이 많이 생겨나 그들이 겪는 불이익에 대한 법적 장치가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는 취지를 밝히며 '피부색을 뛰어넘는 새로운 '한국인'의 정체성을 성립하고 국제화시대에 걸맞지 않은 배타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주제발표에 나선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김통원 교수는 "혼혈인 중 42.2%가 자살시도를 경험하는 등차별과 이로 인한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법·제도 개선 및 민족순혈주의 모순성 극복, 국제가족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 국제가족 자녀의 교육 강화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한편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한국인의 사랑에는 색깔이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공개 서신을 발표했다. 서신에서 정 의장은 피부색이나 외모에 상관없이 한국인으로서 스스럼없이 어우러질 수 있는 나라를 만들자고 말했다. 순혈주의적 뉘앙스를 풍기는 혼혈인이라는 단어도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배숙 최고위원도"외국인과 혼혈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정책제도가 없는 만큼 제도도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은 법무부와 당정협의를 갖고 혼혈인 차별 금지법 제정을 공식 논의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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