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건전성 ‘악화일로’…결론은 증세?

▲ 중앙 정부 부채가 사상 처음으로 500조원을 돌파하고, 공공기관 부채와 가계 부채 역시 심각해지는 등 한국 경제 곳곳에 빨간불이 켜졌다. ⓒ뉴시스
중앙 정부의 부채가 사상 처음으로 500조원을 돌파했다. 공공기관 부채는 물론, 가계 부채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경기 회복세가 둔화되면서 재정 적자 역시 심화되고 있고, 국민에게서 세금을 거둬 갚아야 할 나랏빚이 내년 말에 30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등 한국 경제 곳곳에서 이상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9월 23일 기획재정부가 발간한 ‘재정동향’에 따르면 7월 말 중앙정부 부채는 503조3000억원으로 전월(494조7000억원) 보다 8조6000억원 증가, 사상 처음으로 500조원을 돌파했다. 지난 2013년 말(464조원)과 비교하면 무려 39조3000억원이나 증가하며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정부의 2014~2018년 중기개정운용계획서에 있는 올해 중앙정부 채무 전망(499조5000억원)을 웃도는 규모로 국가 채무 건전성이 전년대비 크게 악화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국채는 전월(489조6000억원)보다 8조5000억원 증가한 498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국고채권(+8조3000억원), 국민주택채권(+2000억원) 등의 잔액이 증가했다.

한편 지난해 말 현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부채를 합친 국가채무(D1) 규모는 489조8000억원을 기록해 2012년 말(443조1000억원)보다 46조6000억원 증가했다. 이에 따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2.2%에서 2013년 34.3%로 상승했다.

◆전체 ‘나랏빚’ 가파른 증가세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와 민간 등 전체 나랏빚이 크게 불어나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오제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기재부와 한국은행 등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중앙정부와 지자체 등을 포함한 전체 국가채무는 527조원, 공공기관 부채는 523조원(지난해 말 기준), 가계부채는 1040조원(6월말 기준) 등 총 2090조원이다.

기재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이 올해 35.7%에서 2017년 36.7%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른 재정적자는 올해 25조5000억원에서 내년 33조6000억원, 2016년 30조9000억원, 2017년 24조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재정적자는 21조1000억원인 점을 미루어보면, 약 4조원이 증가한 것.

최근 5년간 공공기관 부채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올해 기준 2009년~2013년 공공기관 부채는 184조7000억원 늘었다. 연도별로는 2009년 338조5000억원(GPD 대비 29.4%)에서 2010년 398조9000억원(31.5%), 2011년 460조8000억원(34.6%), 2012년 498조원(36.2%), 지난해 523조2000억원(36.6%)이다. 공공부문 부채 수치는 2012년 기준인데, 올해 기준으로는 아직 정확히 집계되지 않았지만 2년 새 정부 부채가 80조원가량 늘어난 것을 고려하면 이 수치도 수십조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가계부채 증가세 문제는 더 심각하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2003년 이후 가계부채 현황을 보면 2003년 472조1000억원이던 가계부채는 2007년 665조4000억원으로 5년간 약 226조3000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2008년(723조5000억원)에서 2012년(963조8000억원) 사이 무려 298조4000억원 급증했다. 2013년 가계부채는 1021조4000억원에서 지난 6월 1040조원으로 1년 6개월 간 76조2000억원이 ‘폭증’했다.

◆‘심화’ 국면 접어든 재정 적자
경기 회복세가 둔화되면서 재정 적자도 심화되고 있다. 7월까지 정부 총수입은 209조5000억원, 총지출은 218조5000억원을 기록해 통합재정수지는 9조1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통합재정수지에서 당장 쓸 수 없는 사회보장성기금 흑자분 등을 제외한 관리재정수지는 31조1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세수 부족 현상도 지속되고 있다. 7월까지 국세수입은 124조4000억원으로 예산(216조5000억원) 대비 진도율은 57.5%에 그쳤다. 세외수입과 기금수입 진도율도 각각 53.8%와 56.0%에 그쳤다.

9월 2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중기(2014∼2018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내년 국세수입 목표를 234조5000억원에서 221조5000억원으로 13조원 하향 조정했다. 올해 목표는 216조5000억원을 유지했지만 1∼7월 세수진도율을 보면 57.5%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포인트나 낮다. 지난해 8조5000억원의 세수 결손이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올해는 그 규모가 10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세입 증가율도 상황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국세수입은 2014∼2018년간 연평균 5.9%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곳간이 차는 속도보다 빚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빠른 것이다.

한편, 앞으로 국민에게서 세금을 거둬 갚아야 할 나랏빚인 ‘적자성 채무’가 내년 말에 30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적자성 채무란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을 팔거나 국민주택기금 융자금을 회수해 충당할 수 있는 ‘금융성 채무’와 달리 국민의 세금으로 재원을 마련해 갚아야 하는 채무로 국민 부담으로 직결된다.

9월 2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내년 말 한국의 ‘적자성 국가채무액’은 314조2000억 원으로 전체 국가채무(570조1000억 원)의 55.1%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적자성 채무를 내년 예상인구(5061만7045명)로 나눈 1인당 부담금은 620만7395원이다.

2005년 말 100조9000억 원(국가채무 대비 40.7%)이던 적자성 채무는 2018년에는 40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적자성 채무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재정지출 확대, 최근의 복지지출 증가 등으로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적재적소에 예산을 투입할 수 있는 재량지출 증가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지난 7월부터 시작된 기초연금 등으로 정부가 의무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경직성 예산은 올해부터 2018년까지 연평균 7.1% 증가한다.

그러나 정부 재량지출 증가율은 연평균 2.0%에 머문다. 연평균 재정수입 증가율 5.1%의 절반도 안 된다. 특히 기초연금과 공적연금이 각각 연평균 15.0%, 11.0% 늘어나는 등 복지 분야의 고정지출 증가세(연평균 8.4%)가 가파르다.

▲ 경기 회복세가 둔화되면서 재정 적자도 심화되고 있다. 특히 국민이 충당해야 하는 ‘적자성 국가채무액’은 314조2000억 원으로 이를 내년 예상인구(5061만7045명)로 나눈 1인당 부담금은 620만7395원이다. ⓒ뉴시스
◆“나랏빚, 정부가 신경써야”

전문가들은 정부가 나랏빚 문제에 좀 더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부채 수준이 높다고 할 수는 없다. 실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는 올해 우리나라가 35.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11.1%보다 낮다. 미국(106.2%), 영국(101.7%), 일본(229.6%)과 비교해도 상대적으로 양호하다. 문제는 국가채무에 포함되지 않는 ‘감춰진 부채’ 규모가 크다는 점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정부 부채는 그 수준이 여타 선진국에 비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속도는 우려스러울 정도로 빠르다”며 “부채 규모도 선진국 수준으로 높으면 견뎌낼 수가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예산안을 보면, 1년 단기로 적자예산을 편성해 경기 활성화를 촉진해 경제를 본 궤도로 올리려는 목적인데, 만약 내수 부양을 위한 정부 지출이 일상적으로 이어지면 재정에 무리가 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유찬 홍익대 세무대학원 교수도 “정부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부채 수준이 양호하다고 하지만, 공기업 부채, 연금 부채 등 감춰진 부채가 많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앞으로 고령화에 따라 복지 수요가 늘어날 것이 분명한데, 아직 지출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황에서 지금부터 재정건전성이 훼손되기 시작하면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재정건전성이 지속적으로 악화할 경우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이 겪은 재정위기 사태와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실현될 수 있다. 최근 국가 재정위기를 겪는 스페인의 경우 2008년만 해도 GDP 대비 국가채무는 48.0%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104.0%까지 불어났다. 2000∼2012년 연평균 국가채무 증가율은 우리나라가 12.3%로 포르투갈(10.5%), 스페인(7.4%), 그리스(6.7%), 이탈리아(3.6%)보다 높았다.

공기업 등 공공부문 부채 규모가 큰 것도 부담이다. 정부가 지난해 발생주의 기준으로 일반정부 부채에 비금융공기업까지 포함해 산출한 통계를 보면 공공부문 부채는 2012년 기준으로 GDP 대비 59.6%인 821조1000억원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재정건전성이 나빠져 대외신인도가 하락하면 자금 유출 등으로 국가 경제 전체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점 △가계부채를 이대로 방치했다가 경제시스템 전체가 마비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점 등을 우려하고 있다.

김유찬 교수는 “향후 늘어날 복지지출을 감당하면서도 재정건전성을 지키려면 증세가 필요하다”며 “담뱃세, 주민세 인상 등 서민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역재분배 정책은 성장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임대소득과 금융 양도소득 등 소득세 과세를 강화하고 법인세 세율을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결론은 ‘증세?’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 교수는 1일 <중앙일보> 특별기고문을 통해 “재정건전성 악화는 재정지출의 증가속도를 세수입이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 때문”이라며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매우 낮을 뿐만 아니라 조세 및 이전 지출의 재분배 기능 또한 대단히 취약한 상태에 있다. 바로 적극적인 증세가 필요한 이유”라고 주장했다.

증세의 필요성은 최근 담뱃값 인상 등으로 불거진 ‘서민증세’ 논란 당시에도 제기된 바 있다.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9월 25일 YTN라디오 <강지원의 뉴스! 정면승부>와의 인터뷰에서 “증세를 안 하고 복지를 하는 건 좋은데 그 대신 나라 빚이 올라갔다면 이건 의미가 없다”라며 “국가 채무가 늘어나지 않으면서 복지도 하면서 증세를 하지 않는, 세원을 확대한다든지 지하 경제를 양성화한다든지, 했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이제는 5분의 2가 지나가고 있으니까 현실적으로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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