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회장, 채권단의 ‘무상 감자’ 공격으로 대위기

현재 자금난을 겪고 있는 동부제철의 채권단이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 등 대주주 주식 지분을 100분의 1로 줄이는 무상 감자를 진행할 방침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사실상 김준기 회장의 지배력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김준기 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는 경영권을 잃고 순식간에 ‘소액주주’로 내려앉을 위기에 놓여 있다.

▲ 동부제철은 현재 자본잠식 상태로 채권단 공동관리를 받고 있다. 동부제철 채권단은 김준기 회장을 비롯한 대주주 및 특수 관계인이 보유한 동부제출 지분에 대해 부실 경영에 대한 책임을 물어 100대 1의 무상 감자를 추진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뉴시스

지난 9월 19일 동부제철 채권단은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채권단 금융 협의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채권단은 동부제철 경영 정상화 방안에 대해 심도 깊게 논의했다.

◆ 무상 감자 실시되면…김준기 회장 사실상 ‘아웃’
현재 동부제철은 자본잠식 상태로,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를 받고 있다. 이날 채권단이 논의한 경영 정상화 내용에 따르면, 동부제철 채권단은 김준기 회장을 비롯한 대주주 및 특수 관계인이 보유한 동부제철 지분에 대해 부실 경영에 대한 책임을 물어 기존 주식에 대해 100대 1의 무상 감자를 추진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이와 더불어, 기타 주주의 보유 지분에 대한 무상 감자 비율은 4대 1이 적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내용을 골자로 하는 무상 감자 방침이 현실화 될 경우, 김준기 회장은 졸지에 경영권을 상실하게 되는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동시에 채권단이 동부제철 최대주주에 오르게 되어, 인사·재무 등 경영권과 관련된 모든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 동부그룹을 살리고자 했던 김준기 회장의 처절한 노력은 한 순간에 무위로 돌아가게 된다.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동부제철의 최대주주는 동부그룹 비금융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동부CNI(11.23%)이다. 동부CNI의 뒤를 이어, 김준기 회장(4.04%)·김 회장의 장남인 남호 씨(7.39%) 등이 분포되어 있다. 이렇게 특수 관계인의 지분을 모두 합치면 36.94%에 이른다.

그런데 만약 동부제철 채권단이 방침대로 100대1 무상 감자를 단행하면, 김준기 회장 등 지분율은 1.2%로 크게 줄어들게 된다. 이 지분율은 사실상 일반 투자자 지분율과 다름없는 수준이기 때문에, 김준기 회장 등 특수 관계인은 더 이상 경영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이 같은 극약 처방을 내리게 된 데 대해 동부제철 채권단은 “당연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지난 19일 개최한 채권단 회의에서 김준기 회장 등 대주주와 특수 관계인이 동부제철을 부실하게 경영한 데 대한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렇기 때문에 무상 감자 방침은 동부제철의 경영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는 피치 못할 조치”라며 “채권단은 이를 기본 조건으로 삼고 추가 지원에 나설 방침”이라고 못 박았다.

◆ ‘경영권 박탈’ 재확인한 채권단
이러한 채권단의 조치에 대해 동부그룹 측은 “지나치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한 동부그룹 관계자는 “동부제철에 대해 지나치게 낮은 기업 평가 기준을 적용해 나온 결과를 가지고 차등 감자를 실시하고 대주주의 경영권까지 박탈하려는 상황은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러한 채권단의 계획안이 현실화될 경우, 동부그룹 전체의 미래는 물론 일반 투자자들까지도 치명적인 피해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며 채권단의 전향적인 재고를 요구했다. 이렇게 동부그룹 측이 하소연에 가까운 반발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동부제철 채권단은 지난 9월 23일 채권단 금융기관 협의회를 다시 한 번 개최한 자리에서 “김준기 회장에게 경영권을 되돌려 줄 의사가 없다”는 방침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확인했다. 이로써 김 회장의 경영권 문제는 벼랑 끝에 선 형국이나 다름없게 됐다.

산업은행 등 동부제철 채권단은 이날 금융기관 협의회를 개최한 자리에서 ‘동부제철 정상화 방안’을 정식 안건으로 상정했다. 이렇게 상정된 정상화 방안에는 다음 같은 지원 내용이 포함됐다.

▲대주주와 특수 관계인에 대해서는 100대 1, 일반주주는 4대 1의 차등 무상 감자를 실시한다 ▲채권단은 530억 원을 출자전환 한다 ▲6,000억 원의 신규 자금(여기에는 신용장 한도 설정 1억 달러 포함)을 지원한다 ▲금리인하(기존 담보채권 연 3%·무담보채권 연 1%)를 실시한다.

이와 함께 동부제철 채권단은 9월 30일까지 경영 정상화 방안을 확정지을 예정이다. 아울러 채권단은 동부그룹 측의 우선 매수권 부여 요청에 대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거듭 천명했다.

채권단 측은 “채권단이 6,000여억 원의 신규 자금을 투입하는 등 경영 정상화를 위해 막대한 희생을 감수하며 대규모 지원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김준기 회장은 사재출연에 나서지 않고 있다”며 “이렇게 현 시점에서 경영 정상화에 나설 의사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김 회장에게 경영권을 돌려줄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요약하면 “사재출연을 한 다음에 그룹 정상화에 참여하라”는 경고 메시지다.

다만 채권단은 “김준기 회장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추가 사재 출연을 통해 희생하는 자세를 분명히 보인다면, 이후 출자 전환한 지분에 대한 우선 매수권 문제를 검토하겠다”는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내비쳐 여운을 남겼다.

이어 채권단은 동부그룹 측이 제기한 “특수 관계인의 지분에 대한 100대 1 차등 감자를 기본 골자로 하는 경영 정상화 방안은 지나치게 가혹하며, 동시에 정상화 방안의 근거가 된 실사 결과도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반박했다.

채권단은 “소액주주 피해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부실 경영에 대한 책임이 있는 대주주에 대해서 차등 감자를 실시하는 것”이라며 “또한 대주주 지분 36.95% 가운데 15.8%가 담보로 제공 중이기 때문에, 자본잠식 및 차등 감자에 따른 경제적 피해는 김 회장보다는 금융기관이 훨씬 더 크다”라고 지적했다.

▲ 동부제철을 둘러싼 분위기가 어수선한 가운데, 동부그룹 농자재 계열사인 동부팜한농과 동부특수강 등에 대한 인수전이 그나마 활기를 띄고 있는 상황이다. ⓒ뉴시스

◆ 동부팜한농·동부특수강 매각은 활기
이어 채권단은 ‘실사 결과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동부그룹 측의 비판에 대해서도 “가동이 머지않아 중단될 생산시설(당진 열연공장)에 대해서는 영업가치(1조3,500억 원)가 아니라 청산가치(3,000억 원)로 다시 평가하는 것이 회계의 일반적인 원칙”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채권단 측은 “채권단 실사 결과는 동부그룹 측의 이의 제기와는 달리 충분한 합리성과 논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채권단이 내놓은 방안에 대해 동부그룹 측은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한 동부그룹 관계자는 “채권단과 논의를 계속할 예정”이라면서도 “현재 동부제철은 자율협약이 진행 중인데도 불구하고 채권단 측의 경영 정상화 방안을 들여다보면 워크아웃과 동일한 강도를 적용해 회사를 압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원래 자율협약제도란 채권단과 기업이 상호 협의를 통해 회사를 정상화시키는 것이 기본 목적인데 동부제철의 경우는 회사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며 “이는 동부그룹을 살리는 데 목적이 있다기 보다는 죽이기의 방향으로 가혹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하소연이다.

이렇게 분위기가 몹시 어수선한 가운데, 동부그룹의 농자재 계열사인 동부팜한농이 울산 비료공장 유휴 부지를 435억 원에 매각하기로 결정되어 한 줄기 빛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지난 9월 25일 동부팜한농은 “국내 모 화학회사와 울산 비료공장 유휴부지 9만9,173㎡ 매각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양사는 내달 10일 부지 매매 본 계약을 체결하고, 같은 달 30일까지 잔금을 치를 예정이다.

동부팜한농은 비료·종자·작물보호제 등 핵심농자재 전 분야를 아우르는 국내 최대의 농자재 기업이다. 이렇게 동부팜한농의 자산 매각 작업이 가속도를 냄으로써,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동부그룹은 향후 재무구조의 자체 개선을 통해 부담을 상당히 덜 전망이다.

동부팜한농 측은 매각 대금을 차입금 상환 등 재무구조 개선에 우선적으로 사용할 예정이어서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동부그룹 전체에 ‘가뭄의 단비’ 노릇을 톡톡히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동부팜한농은 울산 비료공장 유휴부지 이외에도 경기도 화성시 소재 정남연구소 및 충남 당진 시험포 부지 등 토지 자산과 동부팜화옹(화옹 첨단 유리온실단지)·충남 논산에 있는 동부팜 등의 법인 매각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동부그룹의 계열사인 동부특수강 인수전도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 9월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지난 9월 19일 국내·외 철강사에 투자안내서를 발송, 25일까지 투자의향서(LOI) 접수를 마감했다.

이날 마감된 동부특수강 인수의향서 접수에는 모두 네 곳이 제출했다. 국내 기업으로는 현대제철·세아그룹이, 해외에서는 재무적투자자(FI) 두 곳이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 이에 대해 관련 업계에서는 “이번에 인수전은 사실상 현대제철과 세아특수강의 ‘2파전’으로 흐르는 양상이 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어 산업은행은 10월 말까지 본 입찰과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이 이뤄지고 11월 말께 인수 계약서를 작성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산업은행은 사모투자펀드를 조성해 동부특수강을 1천100억 원에 인수한 바 있다.

산업은행 사모투자펀드는 동부특수강을 인수한 대신 동부특수강을 다른 철강사에 넘겼을 경우 매각 차익을 동부그룹에 넘겨주기로 되어있어, 매각 결과에 따라 동부그룹 정상화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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