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샤워, 중견 첼리스트 장은령의 클래식 한풀이

클래식 음악을 통해 대중, 특히 약하고 소외된 자들과의 소통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온 중견 첼리스트 장은령 씨를 만났다. 그녀는 현재 세한대학교 겸임교수, 저스트 아트(JUST ART) 대표이자 첼로 앙상블 ‘드첼만’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요즘은 내달 21일(화)에 예술의 전당에서 있을 ‘첼로샤워’ 공연을 준비하느라고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 공연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절절한 한을 아름다운 첼로의 선율로 씻겨주는 자리로 마련된다. <시사포커스>는 이번 인터뷰에서 첼리스트로서 그녀가 언제부터 어떤 계기를 통해 약자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는지, 그리고 클래식 교육자로서의 철학과 클래식 대중화에 대한 신념에 귀를 기울였다. 
 

▲  ‘첼로샤워’는 클래식 대중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장 첼리스트는 소나기처럼 시원하게 마음을 씻어주는 연주와 공연을 추구한다. ⓒ 시사포커스
 

Q 독일 유학 생활을 오래했다고 들었다.
A  한 15년 된다.

Q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라면?
A 처음에는 독일어로 소통이 안 돼 애를 먹었다. 다행히 베를린 국립예술대에 들어갔다. 독일 교수는 권한이 강해 아무래도 자기 음악관을 잘 이해해주고 소통이 잘 되는 학생에게 더 관심을 보였다. 나는 말도 서툴고 동양인인데다 여자였다.

당시 독일에는 유색 인종을 혐오하는 네오나치들이 두려운 존재들이었다. 한 한국 여학생은 네오나치에 끌려가 체인으로 맞은 적도 있었다. 아무런 잘못 없이 피해를 본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이때부터 싹튼 것 같다. 주변에 독일어가 서툰 유학생들이 있으면 도와주기 시작했다.

장 첼리스트는  첼로 수업 3년만인 1985년 14세의 나이로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하며 국내 무대에 데뷔했다. 이어 독일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대 및 바이마르 프란츠 리스트 음악대학에서 최고연주자 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장 첼리스트는 콘체르트하우스 베를린에서의 <베를린-서울 음악 페스티벌 초청 연주(윤이상 Espace 1, 이신우 Expression)베를린 초연)>, 베를린 벨레뷔 대통령 궁에서 <헤르조그 대통령 초청 연주>를 가졌다.

특히 1999년에는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광장에서 첼로의 거장인 로스트로포비치가 첼리스트 160명을 지휘한 <통독 10주년 기념 월드 첼리스트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참여했다.

Q 첼리스트로서 첼로만의 특색이 있다면?
A 다른 악기와는 ‘음넓이’가 많이 다르다. 쉬운 예로 바이올린 소리는 상대적으로 높고 날카롭다. 첼로를 연주하려면 가슴에 끌어안아야 하는데 G선의 선율은 심장과 마음에 가장 가깝게 다가와 공명을 불러일으킨다. 마음이 편해지며 위안을 받는 느낌이 든다.

Q 한때 클래식 대중화 열기가 뜨거웠는데 요즘은 시들한 것 같다.
A 따로따로 활동하시는 분들은 많이 있다.

Q 클래식은 접근이 쉽지 않다. 좀 쉽게 들을 수 없나?
A 가요·대중음악은 감성에 직접적으로 호소한다. 가사도 쉽다. 그래서 접근이 용이하다. 반면 클래식에 필요 이상으로 겁을 먹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형식적인 면에서 클래식은 곡 하나가 길고, 그 안에서 자기 마음에 드는 주제를 찾아내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심지어는 가요에서도 클래식의 음원(音源)을 찾아내기 어렵지 않다. 생각하는 것보다 클래식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 이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해하려는 조급함을 버리고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고 들어보라. 클래식이 들린다. 그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이다.

▲ 장 첼리스트는 신체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오래 즐기면서 연주하는 ‘고통 없는 음악 만들기’ 라는 연구를 통해 연주와 생체학의 흥미로운 접목을 추구하고 있다. ⓒ 시사포커스=장은령

Q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특히 강조하는 것이 있나?
A 너무 큰 목적·목표에 매달리지 말자고 한다. 큰 성공은 작은 성공의 축적에서 온다. 작은 성취감이 반복되면 과정에 충실해진다. 그러면 사는 게 즐거워진다. 작은 행복이 큰 행복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스트레스는 일정 정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추진력이지 짐이 돼선 안 된다.  

교육에는 훈련이 따른다. 이를 생략해선 안 된다. 예를 들어 만화책은 책을 읽기 위한 과도기다. 처음에 재밌지만 그림만 보다 보면 차츰 독자가 상상할 기회가 적어진다. 생각하고 머리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점에서 책이 더욱 유익하고 재밌다. 그래서 만화책만 볼 수 없다. 책을 즐길 수 있는 실력을 길러야 한다. 만화책은 건너뛸 수 있지만 책은 건너뛰어선 안 된다.

무슨 일이든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버려야 한다. 못해도 된다. 순수하게 즐기다 보면 일과 놀이의 경계가 사라지는 법이다.

Q 2005년 7월부터 세계적인 현악기 전문 잡지인 스트라드(THE STRAD) 한국어판에 ‘현악기 연주의 신체적 고통 없이 음악 만들기’를 연재했고, 지금도 연구하고 있다고 들었다.
A 독일 유학 중 국제 콩쿠르 준비로 하루에 9-10시간을 연습하다 손목에 이상이 생겨 왼손 새끼손가락을 사용 못하게 됐다. 6개월 간 연습을 쉬었다. 그때 생체학을 공부했다. 요지는 몸의 에너지의 흐름을 원활하게 흐르게 한다는 거다.

Q 어렵다.
A 예를 들면 주먹을 오래 쥐고 있으면 한 방향으로 힘이 쏠리지만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면 몸의 무리를 최소화하고 오래 할 수 있다. 의자에 앉을 때도 척추를 자연스럽게 세우고 엉덩이와 다리에 부담을 나눠주는 것이 좋다.

거칠게 말해 ‘고통 없이 오래 연주하기’는 그런 원리에 기초한다. 일정 정도 훈련을 마친 연주자는 자기 몸 안에서 맥동(脈動)하는 에너지의 흐름을 감지하면서 연주를 오래 잘 할 수 있다. 감각과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흐르며 약동한다.

Q ‘첼로샤워’ 이름이 이채롭다.
A 샤워는 소나기를 말한다. 소나기를 좋아한다.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돌연 찾아와 시원하게 씻겨주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시간예술인 음악과 닮지 않았나.

▲ 10월 21일(화)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첼리스트 장은령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시고 클래식 한풀이 장은령의 첼로샤워 공연을 펼친다. 제공=지클레프

Q 이번 예술의 전당 첼로샤워 공연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신다고 들었다.
A 그들은 가해자들로부터 당연히 받아야 할 사과를 받지 못했다. 그들은 고의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다. 나는 여자로서 그분들에게 깊이 공감한다. 약자이기 때문에 고통을 받을 수 없었다. 소나기처럼 시원하게 그 통한의 세월이 씻겨나가는 데 작은 도움이 됐으면 싶다.

Q 프로그램 소개를 해 달라
A 프롤로그에서 ‘한 오백년’을 북과 함께 연주한다. 모든 연주에 앞서 이해를 돕는 해설을 곁들인다. 그 음악을 만든 작곡가의 고뇌와 시대 상황을 버무려 설명한다. 스탈린 체제에서 활동했던 쇼스타코비치의 발레 음악과 바하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연주한다. 피날레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다.

Q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A 우선 이번 공연을 성공리에 마무리하고, 다음은 미혼모들과 함께 웃고 우는 공연을 준비하고 싶다.

이 공연의 수익금 전액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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