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단체 격렬한 반대…필요성은 명확

한국연금학회가 공개한 공무원연금 개혁방안을 두고 정부와 공무원들 간의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다. 분노한 공무원노조는 연금학회 주최로 열릴 예정이었던 정책토론회가 개최될 수 없도록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등 격렬한 반대 의사를 표출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들은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문제, 그리고 정부보전금으로 인한 국민의 부담 증가 등을 이유로 들며 연금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바통은 이제 정부에게로 넘어갔다.

▲ 공무원노조는 ‘공무원연금 대개혁을 위한 정책토론회’에 집단으로 참석해 조직적인 방해를 펼쳐 결국 토론회를 무산시켰다.사진/홍금표 기자

한국연금학회, ‘덜 받고 더 내는’ 연금개혁안 발표
전공노 “새누리 개악 주도, 연금 축소 수용 불가”
공적연금 개혁 첫걸음…‘바통’은 이제 정부에게로

21일 한국연금학회는 10년에 걸쳐 공무원 연금부담율이 43% 늘고 급여율은 34% 줄어드는 내용의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2016년 이전 임용된 재직 공무원의 연금기여율은 2015년 7%에서 2026년 10%로, 43% 인상된다. 반면 연금급여율은 2015년 1.9%에서 2026년 1.25%로 34% 인하된다.

2016년 이후 임용되는 신규 공무원은 연금기여율은 4.5%, 연금급여율은 2028년까지 1.0%로 국민연금 기준과 같이 적용받게 된다. 현재 기여금을 납부하지 않는 33년 이상 재직자도 실제 재직기간 동안 기여금을 내도록 상한을 40년으로 연장한다.

연금을 받는 연령은 2010년 이전 임용 공무원의 지급 개시연령을 현행 61세에서 2025년 퇴직시부터 단계적으로 연장해 2033년 이후 65세까지로 조정된다. 유족연금도 2010년 이전 임용자의 경우 이후 임용자와 마찬가지로 퇴직연금의 70%에서 60%로 인하된다.

연금학회는 학회의 개혁안이 실행되면 2016~2080년 중으로 연금수지 적자가 현재보다 333조원(26%) 절감될 것으로 전망했다.

공무원, 격렬한 반대

그러나 ‘더 내고 덜 받는’ 연금 개혁안에 대한 공무원 노조 측의 반발은 매우 격렬했다. 공무원 노조는 연금 개혁안 발표 다음날인 22일 한국연금학회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공무원연금 대개혁을 위한 정책토론회’에 대거 참석, 조직적인 방해활동을 펼쳐 토론회를 무산시켰다.

더불어 23일 50여개 공공노조로 구성된 ‘공적연금 개악 저지를 위한 공동투쟁본부’는 공무원연금 개혁안 정책토론회를 물리력으로 원천봉쇄시킨 데 이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혁저지 투쟁을 강력하게 전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공무원노조는 “이번 토론회는 밀실에서 공무원연금 개악을 주도해 온 새누리당이 국민 여론을 떠보려고 연금학회를 나팔수로 내세웠다”며 “연금 혜택을 줄이는 어떤 방안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당·정·청이 국민 노후생활 보장이라는 국가의 책무를 깊이 인식해 국민이 공감하는 ‘공적연금복원 사회적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공무원노조는 이번 공무원연금 개혁안 공개를 계기로 공무원연금 개혁 저지 투쟁의 수위를 한층 높이겠다고 선언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오는 11월1일 여의도에서 공무원과 그 가족 등이 참석하는 ‘공적연금 개악 저지를 위한 100만 공무원 총궐기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오성택 공동투쟁본부 공동위원장은 2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저희들이 참여한 그런 협의체를 구성을 해서 그 협의체에서 논의를 해 가자, 그래서 저희들이 고통을 해야 될 부분이 있다면 고통분담을 하겠다 하는 얘기를 누누이 했었던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 현재 일방적으로 내놓은 이 안에 대해서는 저희들이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신규 공무원 같은 경우에 2016년 7급으로 입사를 해서 30년 근무했다고 가정했을 경우에 그 연금의 총 손실액은 1억 7,000만 원 정도가 감소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그랬을 때 이것은 매월 81만 원 정도 수령액이 감소하는 게 되는 수치”라고 설명했다.

오 위원장은 “저희가 요구하고 있는 것은 국민연금이 처음에 제도 도입될 당시에는 국민연금이 공무원 공적연금보다도 소득대체율이 더 높다”라며 “이것을 지금 2007년도 법 개정하면서 국민연금을 용돈 수준으로 전락시켜놓고 나서 또 공무원연금뿐만 아니라 공적연금들을 하나하나 용돈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그렇게 가고 있기 때문에 저희 입장에서는 국민연금을 원상회복, 원상복원시켜야 된다”고 강조했다.

▲ 일각에서는 공적연금 손실분을 줄이기 위한 개혁의 시발점으로 공무원 연금 개혁을 꼽는다.사진/홍금표 기자

◆ 필요성은 ‘확실’

공무원연금을 비롯한 공적연금의 구조적 문제점은 낸 돈에 비해 많은 돈을 돌려받는다는 것이다. 대다수 국민이 가입한 국민연금은 낸 돈의 약 1.7배를 평생에 걸쳐 받는 반면 공무원연금은 2.3배를 받는다. 3차 연금개혁이 시행된 2010년 이전에 입사한 공무원의 경우 약 3.5배에 달한다. 고착화된 ‘저부담·고급여’ 구조 탓에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공무원연금의 적자가 늘면 국가채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공무원연금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는 순간 공무원연금 적자는 국가채무로 전이된다. 현 상태로 가면 ‘공무원연금 적자→국가채무 급증→재정 파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공적연금의 손실분을 정부가 세금으로 보전하면서 국가 재정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는 점은 실제로 수치를 확인해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공무원연금은 정부가 손실을 메워주도록 관련법에 명시돼 있다. 공무원연금은 1993년 처음으로 적자를 낸 이후 2001년부터 정부가 매년 세금으로 손실분을 메워주고 있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해까지 공무원연금 적자를 메우기 위해 투입한 돈은 10조원이 넘는다. 올해에도 2조4854억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한국연금학회에 따르면 공무원연금에 투입되는 정부보전금은 2015년 3조251억, 2020년 6조 6047억, 2025년 10조 5949억, 2030년 14조 4221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부터 2030년까지의 누적 보전금은 공무원연금만 135조원에 달한다.

개혁안을 만든 한국연금학회 회장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23일 “공무원연금은 미래 퇴직자들에게 지급할 부채가 484조원이나 되는데, 이 돈은 국민들이 앞으로 갚아야 할 돈이다. 하루라도 빨리 개혁해야 한다”며 “공무원연금 제도 개혁안은 재정 안정성, 그리고 국민연금과의 형평성을 원칙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그는 “공무원연금에 대한 정부의 적자 보전금이 계속 늘고 있어 올해도 2조5000억원, 내년에도 3조원에 육박하는데, 정부가 국고로 지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특히 국민연금과 형평성 문제는 국민들의 감정을 고려해야 할 정도의 심각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 간 급여 수준 차이가 너무 커 형평성을 주장하는 국민들의 요구가 크다”며 “공무원들은 연금 보험료를 더 내는 만큼 연금액을 많이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는 돈에 비해 받는 돈이 너무 높게 설계된 게 공무원연금 제도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결국 부족한 만큼 국민이 부담을 지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정부가 퇴직 공무원에게 앞으로 지급해야 할 미래의 연금 총액, 즉 ‘연금충당부채’는 169조 원. 한국납세자연맹은 이 연금충당부채를 퇴직연금 수급자 수 32만여 명으로 나누면, 1인 당 5억 원이 넘는 연금을 받게 된다고 분석했다.

공무원 연금공단에 따르면 1989년에 임용돼 30년간 재직한 공무원의 연금 수익비는 3.68로, 낸 보험료의 3.68배를 연금으로 돌려받게 된다. 이 경우 1억 4천만 원 정도의 보험료를 내고 5억 이상의 연금을 받는 셈인데, 이 차익을 국민이 부담하게 된다는 것이다.

김선택 납세자연맹 회장은 “현재 연금 받고 계신 분들은 기본적으로 수익비가 4배 이상 된다고 보면, 실제로 5억 3천만 원 중에서 80% 정도는 국민 세금으로 보전이 된다”고 말했다.
한편, 그동안의 연금 개혁으로 2009년 임용 공무원의 연금 수익비는 2.4로 낮아졌고, 이번에 연금학회의 개혁안대로라면 2016년 임용되는 공무원의 경우 2.05로 떨어지게 된다.

또 다른 문제는 국민연금과의 형평성이다. 국민연금의 경우는 회사와 개인이 각각 4.5%씩 납입하고 월 보수 대비 지급률은 40% 선에 불과하다. 반면 공무원연금은 약간 높은 월 7%씩 납입하지만 나중에 받는 금액은 월 보수 대비 62.7%에 이른다. 국민연금과 비교해 20%포인트 이상 높은 것이다. 수급연령 역시 국민연금은 65세부터지만 공무원 연금은 60세부터 수령이 가능하다.

▲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해까지 공무원연금 적자를 메우기 위해 투입한 돈은 10조원이 넘는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결국 부족한 만큼 국민이 부담을 지게 된다는 것이다. ⓒpixabay

◆ ‘바통’은 정부 손에

김용하 교수는 이제 바통은 정부 손에 넘어갔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김 교수는 “재정이 급격히 나빠진 것은 인구 고령화와 고(高)급여가 원인”이라며 “정부도 보험료 등을 더 부담해야 했는데 그걸 회피했다. 공무원연금의 쌓여 있는 과거 부채는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제도가 개선돼도 현재 부채를 개인에게 떠넘길 수는 없고 정부가 책임지는 것이 마땅하다”며 “공무원연금을 이번에 제대로 개혁하지 않으면 다음 정권에선 공무원들에게 더 큰 개혁 압박이 가해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지난 20년간 역대 정부마다 개혁 시도가 있었지만 매번 불발에 그쳤다. 김대중 정부 시절엔 오히려 연금 고갈 시 국가가 지급을 보증하는 것을 명문화했고, 노무현 정부 때도 국민연금 개혁이 우선이라며 아예 손을 대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2009년 시도는 있었으나 시늉뿐인 개혁에 그쳤다.

한편, 김 교수는 공무원 노조 측에서 주장하는 국민연금과의 연계는 딱 잘라 반대했다. 그는 24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민연금은 2007년 미래 세대의 부담을 걱정해서 개혁을 했다. 그 이후 2012~2013년 출산율이 떨어졌다. 고령화는 심해질 거다. 그래서 국민연금 지급액을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무원연금을 이대로 유지하면 미래 세대의 부담이 커진다”라며 연금 개혁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공무원 연금 뿐만 아니라 사학연금·군인연금 역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연금 혜택을 가장 많이 받는 공무원 연금에 대한 개혁이 암초에 부딪힌다면 다른 연금들의 개혁작업은 추진이 어렵다고 우려한다.

1973년에 기금이 이미 고갈된 군인연금의 지난해 국고 보전금은 1조3691억원에 달한다. 사립학교 종사자들이 대상인 사학연금은 지금은 흑자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2021년께 적자를 낼 전망이다. 2030년에 3대 공적연금에 투입해야 하는 정부 보전금은 20조7803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공무원연금이 12조4221억원으로 전체 공적연금 손실 규모 중 60%가 넘는다. 군인연금은 2조7814억원, 사학연금은 3조5768억원으로 추산된다.

이는 2030년 한 해에만 국한된 정부 보전금이다. 내년부터 2030년까지의 누적 보전금은 공무원연금만 135조원에 달한다. 군인연금과 사학연금은 각각 32조원, 20조원의 누적적자가 예상된다. 결국 3대 공적연금 손실분을 메우기 위해 정부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만 187조원에 달한다.

한 전문가는 “단순히 정부의 밀어붙이기 방식이나 밀실야합이 아닌 이해당사자인 공무원이 포함된 사회통합적 합의기구를 만들어 투명하게 공개하고 논의하는 자리가 서둘러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사포커스 / 하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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