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감세’ 놔두고 서민 주머니 터나?

‘서민 증세’ 논란으로 나라가 뜨겁다. 담뱃세 인상으로 불붙은 증세 논란은 주민세와 자동차세로까지 번지며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세수 부족분이 8조원을 넘는 만큼 증세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지만, 증세의 대상이 서민의 지갑이라는 점에서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서민 증세’에 반대하는 이들은 먼저 ‘부자 감세’를 손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일각에서는 증세의 필요성을 솔직히 인정하고 범국가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11일 정부는 2020년까지 흡연율을 29% 수준까지 끌어내리겠다며 담뱃값을 2000원가량 인상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금연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500원이던 담배는 내년부터 4500원, 3000원짜리는 5300원, 1만원인 담배는 1만7200원 등으로 각각 인상될 예정이다.

정부는 담뱃세에 이어 지방세 인상안도 내놨다. 안전행정부가 발표한 지방세 개편안을 보면, 내년에는 주민세 하한선을 7000원, 2016년에는 1만원으로 올려 지금보다 2배 이상 최대 2만원까지 인상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주민세는 ‘1만원 이내’에서 지자체별로 결정하는데, 가구당 평균 4600원 수준이다. 자동차세도 내년에는 50%, 2016년에는 75%, 2017년에 100%를 인상하기로 했다. 다만 개인 자가용과 서민 생계형 승합차(15인승 이하)는 인상 대상에서 제외됐다.

담뱃값을 올리면 소비량이 감소하는 탄성치를 감안하더라도 연간 2조8000억원의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다. 주민세와 자동차세 인상으로 지자체가 추가로 확보할 세수는 1조4000억원이다. 총 4조2000억 원에 달한다.

◆증세 논란, 배경은
정부는 이 같은 정책이 증세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6일 “정부가 증세로 정책 전환을 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오해”라고 말했다. 아울러 “담뱃세 인상은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것이며, 주민세 인상은 지방자치단체의 강력한 요구가 있어 정부가 받아들인 것”이라며 “증세는 경제를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에 신중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정부의 반론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책을 증세로 보는 이유는 정부의 ‘곳간’ 상황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갈 돈은 많은데 비해 들어오는 돈은 부족한 것이 현 정부의 곳간이다.

정부는 올해 책정한 국세 세입예산 규모는 216조 5000억 원이다. 여기에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세수 부족분은 최소 8조 5000원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1일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올해 세수는 8조 5000억 원에서 9조 원 정도 덜 걷힐 것”이라고 보고한 바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세수 부족 규모가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올 상반기동안 걷힌 세금은 98조 4000억 원으로 세수진도율은 45.5%에 그친다. 10조 원 가량의 세금이 부족했던 지난해 대비 2.7%p 더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정부는 오히려 내년도 예산을 늘렸다.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 회의에서 내년도 예산을 올해보다 약 20조 원(5.7%) 늘려서 편성할 방침을 밝혔다. 정부가 중기재정운용계획(2013~2017년)에서 제시했던 연평균 재정지출 증가율이 3.5%인 것을 감안하면, 1.2%p나 넘치는 규모다.

◆서민 주머니 터는 증세에 비난 봇물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증세 카드인 △담뱃값 △주민세 △자동차세 인상은 서민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정부는 거센 비난을 맞닥뜨리게 됐다. 홍기용 인천대 세무학과 교수는 “정부 입장에서 따져보면 이번 인상안은 모두 세수 증대”라며 “사실상 증세 카드는 이번에 모두 내놨다고 볼 수 있는데 증세카드가 대부분 서민들이 쓰는 것에 몰려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정부의 증세 방침에 대해 “주민세, 자동차세 등은 소득의 많고 적음과 무관하게 일률적으로 부과되어 소득 역진일 뿐만 아니라 공평 과세를 저해한다는 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며 “정부가 또다시 세부담을 서민층에게 전가하는 담뱃값 인상에 이어 지방세 인상을 추진하는 것은 결국 서민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정치권까지 이번 인상안이 ‘서민 증세’라며 한 목소리로 비판하고 있다. 새정치연합 우윤근 정책위의장은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간접세 인상은 물가 인상의 주범이고 소득 재분배 역할을 해야 할 조세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며 “소득 역진성이 높아 서민에게 부담이 집중되는 간접세를 통한 세수 확보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 역시 같은 날 “결국 서민 주머니만 짜내겠다는 것”이라며 “행정적·정치적 비용을 줄이는 대안이나 혁신방안 없이 급한 대로 국민 주머니를 터는 정책을 발표하면 민심은 어디로 가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상황에, 일각에서는 서민 가계에 영향을 주는 또 다른 요인인 주세(酒稅)로 가격 인상의 불똥이 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안창남 강남대 교수는 “술에 붙는 주세도 담배와 같은 맥락”이라면서 “한국은 유럽 등에 비해 술 가격이 낮기 때문에 당연히 (세금인상) 검토 대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앞서 지난 6월 17일 기자간담회에서 “담배처럼 술에도 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술에는 담배와 달리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이 없다. 또 문창용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현재로선 주세율을 조정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문 실장은 다만 사견임을 전제로 “담배와 술 등에 대한 접근성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세율을) 올릴 필요성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담뱃세 인상에 대한 국민적 반발이 잠잠해지면 세수 부족 확충과 함께 국민건강 등의 이유로 주세율 인상 논의가 빠르게 진행될 수도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2020년까지 흡연율을 29% 수준까지 끌어내리겠다며 담뱃값을 2000원가량 인상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금연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더불어 주민세와 자동차세 인상이 논의되기 시작하면서 ‘서민 증세’ 논란에 불이 붙었다. 사진 / 원명국 기자

◆“‘부자감세’부터 손보라”
조세 전문가들은 "MB정부 때 대규모 부자감세를 한 데다 경기가 침체되어 있으니 세금이 적게 걷힐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증세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안창남 강남대 교수는 15일 YTN라디오 <김윤경의 생생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전 이명박 정부의 감세 정책은 분명하게 다시 한 번 되짚고 넘어가야한다. 이명박 정부의 감세 정책은 실패한 것”이라며 “그걸 되돌리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 교수는 “상당수 세법학자나 재정학자들 얘기는 ‘그렇게 하지 말고 그건 실패했으니까 특히 법인세 세율이 25%에서 22%로 낮춰진 것을 올리자, 25%까지 올리자, 한꺼번에 3% 올리기가 너무한다면 매 1년보다 1%씩 올린다면 기업도 큰 부담이 없을 것이다, 그 대신 법인기업에 대한 세무간섭은 가능한 배제하자’는 것”이라며 “현재는 아주 슈퍼 리치에 대해서 소득세로 예를 들면 5억 원 이상, 10억원 이상은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서 낮은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것을 감안하지 않고 지금 현재 담뱃세라든지 주민세, 이것만 한다는 것은 정부가 의도하지 않았든 의도했든지간에 이것은 차별이다, 서민 증세다, 이런 논란을 어쩌면 스스로가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일부에서는 법인세 인하가 세계적인 추세라고 하는데 미국과 유럽의 법인세는 30%대”라고 일축했다. 안 교수는 “법인세를 올리면 기업 경쟁률이 떨어진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럼 미국과 유럽의 기업이 한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고전해야 하지 않느냐”면서 “지금의 법인세 수준은 기업 경쟁력과 큰 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유찬 홍익대 교수는 “담뱃세는 소비세기 때문에 소득이 적은 서민들에게 불리한 세금”이라면서 “결국 부자감세 때문에 세수가 부족한 것을 서민증세를 통해서 확보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세제실장과 국세청장 등을 역임한 조세 전문가 이용섭 전 민주당 의원은 14일 <경향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노무현 정부가 끝날 때 2007년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이 21%였으나 이명박 정부에서 부자 감세를 하면서 19%까지 떨어졌다”며 “조세부담률이 1% 떨어지면 13조원의 세금이 줄어들어 5년 동안 100조원의 세금이 줄어들었다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재정 수요가 늘어나고 복지 수요가 많아지면서 세금이 더 필요한 상황인데 부자 감세하면서 100조원 깎았으면 고소득자, 고액자산가, 법인 등이 세부담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조세부담률이 설령 높다고 하더라도 세금을 공평하게 하면 세부담이 적은 것이고, 공평하지 않으면 세부담을 많이 느끼는 것”이라면서 “담뱃세와 주민세, 자동차세는 대표적인 역진세”라고 했다. 재벌가 회장이나 일반 서민이나 모두 똑같이 부담하는 세금이기 때문에 역진적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는 확실하게 부자 감세라고 밝혔는데 그게 비난을 받으니까 현 정부는 어정쩡하게 가고 있다”며 “하지만 내실을 들여다보면 박근혜 정부도 부자 감세의 연장선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는 복지를 할 수가 없고 역진적 세금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결국 재정적자가 누적돼 재정 건전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증세, 필요하다면 ‘제대로’ 해야
일각에서는 무조건 “증세가 아니다”라며 발뺌하기보단, 솔직히 국민에 이해를 구하고 ‘제대로 된 증세’를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산 부족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인 만큼, 범국가적으로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17일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국가미래연구원에 기고한 글을 통해 “증세는 누구도 심정적으로 선뜻 응하기 힘들지만 더 나은 복지를 지향하고 이를 실행해야 한다면 현재 우리 상황이 증세 없이는 재정적자를 면하기 힘들다”며 “국민합의를 전제로 한 적정수준의 복지와 조세부담율 논의를 시작할 때”라고 설명했다.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신원기 간사는 “지금은 ‘증세가 필요하다’는 솔직한 고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영국인들도 의료보험과 관련한 증세안을 두고 불만이 많았지만 구체적 비용과 필요성을 제시했을 때는 저항이 적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며 “우리도 어떤 방식으로든 증세를 한다고 하면 국민들에게 '더 살기 좋아 진다'는 구체적인 밑그림과 비용 등을 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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