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칠 묘목장

  초록은 맑음이고 정갈함의 상징이다. 우리 옛날 여인들은 단옷날 창포로 머리를 감았다. 그러면 머리카락도 잘 자라고 윤이 난다고 믿었다. 초록을 마시고 초록으로 머리를 감고 목욕하며 초록빛에 몸과 마음이 정화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꽃들이 초록 잎을 배경으로 빨강, 노랑, 분홍, 보라, 흰색 등 다양한 꽃을 피운다. 모든 꽃들은 초록색과 함께 있을 때 가장 돋보인다. 그래서 인지 잎 보다 꽃이 먼저 피는 나무들은 뭔가 어색하다. 조급해 보이고 후드득 지고 말 것 같아 불안해 보인다.

초록은 건강함의 상징이다. 푸르고 싱그러운 자연을 보는 것만으로도 활력이 솟는다. 봄기운을 잔뜩 먹고 올라온 엄나무 순이나 드릅순을 따고, 날마다 쑤욱 쑥 크는 쑥과 고들빼기, 달래, 냉이, 씀바귀를 바구니에 캐 담는 것만으로 이미 온몸은 생기가 충전된 듯하다.

 이 푸르른 생명의 빛을 맘껏 먹고, 입고, 바를 수 있는 것이 또한 시골생활에서 누릴 수 있는 호강이니 맘껏 호사를 누려보자는 생각이다.

언젠가 유명 일간지 기자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나중에 기사 나온 것을 보니 내 프로필이 참 재밌게 올라있었다. 취미가 윈도우 쇼핑이라고 돼있었다. 기자에게 윈드서핑의 매력에 대해 한참 설명했던 것 같은데 오타인지 오해인지, 윈도우 쇼핑이 됐던 아이 쇼핑이 됐던 쇼핑이라면 별로 취미가 없는 사람인데 그렇게 신문에 턱 올라있어서 한참 웃었다.

, 좋아하는 음식으로 이라는 한 글자가 쓰여 있었다. 별로 그런 이야기를 나눈 것 같지 않은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직원이 쑥떡을 접시에 내왔는데 그것을 내가 이야기 하면서 거의 다 먹어치웠던 모양이었다.

사실 나는 떡을 아주 좋아하는 떡보다. 우리나라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 할머니, 웅녀는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어 단군을 낳았다고 한다. 쑥을 먹으면 짐승도 사람이 될 수 있다니, 쑥 많이 먹고 제대로 된 인간이 되고 싶어서인지 특히 쑥떡을 좋아한다.

  우리 집 주변은 지천에 쑥이 널려있다. 농약도 안하니 부지런만 하면 일 년 먹을 쑥을 얼마든지 채취할 수 있다. 먹을 쑥은 가능하면 초봄에 올라 온 어린 쑥이 좋다. 칼로 밑동을 잘라 깨끗하게 다듬어 흐르는 물에 서너 번 씻은 다음 끓는 물에 가능한 살짝만 데쳐서 얼른 찬물에 헹궈준다. 물기를 뺀 쑥을 지퍼 백에 소량씩 구분해서 차곡차곡 냉동해 두면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다.

이렇게 저장해 둔 쑥은 때로는 인절미로 변신하거나 송편이 되기도 하고 도다리 쑥국이 되기도 한다. 특히, 이른 봄에 밀가루나 쌀가루와 범벅해서 쪄 먹는 쑥버무리는 추억의 맛이어서 인지 늘 감격스럽다.

가끔씩 차를 타고 가다보면 길가에 승용차를 세워두고 논두렁 밭두렁에서 쑥을 캐는 젊은 엄마들을 볼 때마다 걱정이 된다. 왜냐하면 그 논과 밭이 농약을 안 한 토양이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다면 토양이 오염돼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농약이 염려되지 않는 곳에서 쑥이나 나물을 캐야만 안심할 수 있다. 그리고 먹는 쑥은 단오가 넘으면 독해지므로 그 이전에 채취하는 것이 좋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쑥을 다양하게 활용해 왔다. 쑥을 데친 물은 버리지 말고 냉장고에 시원하게 두었다가 세수하거나 목욕할 때 쓰면 쑥에 항()히스타민제가 들어있어서 피부 가려움증과 같은 접촉성피부염에 매우 효험이 있다. 뜨겁게 쪄낸 쑥 다발로 살갗 여기저기를 문지르면 가려움증은 재빨리 가라앉는다.

욕조에 쑥 삶은 진액을 풀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쑥탕이 된다. 뜨거운 차를 마시면서 쑥탕에 몸을 담그면 심신의 피로가 말끔하게 사라진다. 쑥 향기와 약성이 온 몸으로 스며들어 피부도 건강해지고 신진대사가 원활하게 되어 금세 젊어지는 것 같으니 돈 안 들고 호사를 누리니 갑부가 부럽지 않다.

  한 술 더 떠서 쑥과 함께 여러 가지 야생초들을 낫으로 베어, 믹서에 돌리면 풀죽이 된다. 그것을 큰 대야에 붓고 광목을 넣어 질근질근 밟아 햇빛에 널었다가 꾸들꾸들해지면, 다시 풀물에 밟아 햇빛에 말린다. 이렇게 세 차례 정도 염색을 거친 후에 맑은 물에 씻어 햇빛에 다시 말리면, ‘흐건광목이 그야말로 고운 풀색으로 변한다.

  풀을 먹이지 않아도 빳빳하니 여름철 깔고 덮고 자면 자연을 그대로 덮고 자는 셈이어서 그 향기가 온 몸을 감싸 충분하게 숙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또한 가장 서민적인 재료로 황제 부럽지 않은 침구에서 잘 수 있는 호사를 누리니 시골 사는 재미가 톡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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