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두고 있던 지난 2012년, 대선 출마설이 돌던 한 중진 정치인이 출판기념회를 개최했었다. 출판기념회 장소에 사람들은 꽉꽉 들어찼고, 출판기념회는 당시 유행처럼 번져 있던 ‘북 콘서트’ 형식으로 열렸다.

말이 좋아 북 콘서트였지, 통기타 가수 한 명이 중간 중간 노래 한 번씩 부르는 정도였을 뿐이었다. 취재차 수많은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에 다녀봤지만, 다녀본 중에서는 가장 엉성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쇼맨십이 부족한, 고지식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그가 ‘북 콘서트’ 형식을 접목하려는 시도 자체가 신선하다면 신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긍정적 평가도 잠시. 다소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의 한마디였다. 지금 시점에 그의 발언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은 어렵지만, 그는 분명 무심한 듯 ‘내가 쓴 게 아니다’는 취지의 자기 고백을 했다. 보좌관 중에서든 누구든 대필을 해줬다는 얘기였을 것이다. 자신이 쓰지도 않은 책을, 감수라도 제대로 했는지 모를 책을 내고 그를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한다니 기가 막힐 일이었다.

일부 정치인들이 그렇게 대필로 책을 써서 출판기념회를 개최한다는 얘기를 익히 들어왔었지만, 당사자가 그렇게 출판기념회 행사장에서 혼잣말하듯 직접 고백을 한다는 것이 낯설지 않을 수 없었다. 출판기념회는 그야말로 다른 목적을 위한 하나의 ‘형식’이었고, ‘수단’이었을 뿐이라는 얘기다.

서론이 길어지긴 했지만, 지금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그들은 무엇 때문에 그토록 끊임없이 책을 내고, 또 유명 작가들 이상의 거대한 출판기념회를 개최하고 있는 것일까?

요즘 정치권은 또 다시 ‘출판기념회’를 통해 받는 축하금, 또는 소위 ‘책값’의 적법성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 정치인들이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발견된 돈 뭉치에 대해 ‘출판기념회 축하금’이라고 항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명 오세훈법으로 통하는 현행 정치자금법은 국회의원의 연간 후원금을 1억5000만원까지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공개적 후원금과 달리 출판기념회를 통해 들어오는 축하금이나 ‘책값’은 선관위에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이유에서 출판기념회 축하금은 그동안 정치인들에게 유일하게 허용됐던 비공식 후원금 창구 역할을 해왔다. 관련 기관이나 업계에서도 로비를 위해 활짝 열려 있는 창구였던 것은 마찬가지다.

책 몇 권 팔아서 얼마나 돈이 들어오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소위 괜찮은 상임위에 중진급 의원정도면 상상을 초월한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는 얘기가 있다. 출판기념회 횟수가 제한돼 있는 것도 아니다보니, 국회의원 임기 4년 간 몇 번씩이나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는 일도 생기고 있는 것이다. 쉽게 일부 정치인들이 선관위에 신고하지 않아도 되는 불투명한 돈을 벌기 위해 출판기념회를 앞 다퉈 개최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지금껏도 이런 출판기념회 문화에 대해 정치인들 스스로 자성 분위기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자성 노력도 소수에 의한 잠시였을 뿐이고, 지속적인 개선방안이 논의되지는 못했었다. 혹자들은 정치인들의 숨통을 죄고 있는, 너무나 갑갑한 정치자금법이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물론,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정자법에 있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로비’ 문화가 횡행하고 있다는 것이고, 일부 정치인들은 아직도 이런 로비를 즐기고 있다는 게 문제다.

이런 정치 풍토라면 아무리 후원금 모금 통로를 열어주고 출판기념회 축하금에 대한 투명성을 강화한다 하더라도, 또 다른 음성적 로비 창구가 개설되고야 말 것이다. 결국, 제도적 보완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정치인들의 인식 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출판기념회가 더 이상 지저분한 돈이 오가는 창구로 활용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치인들도 지금 각성하지 않는다면 더욱 더 정치자금에 목이 조이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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