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행사 취소 청원에 해외 일정 줄줄이 취소도

치사율이 최대 90%에 달해 ‘죽음의 바이러스’로 불리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발원지인 서아프리카를 넘어 전 세계로 퍼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유입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진단하고 있지만, 국민들의 공포감은 증폭되는 양상이다. 한편, 정부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국내에 전파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며 급히 불을 끄고 있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2013년 ‘살인진드기’ 사태와 마찬가지로 언론의 자극적 보도 행태가 문제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 치사율이 최대 90%에 달하는 ‘죽음의 바이러스’ 에볼라 바이러스가 서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확산되자, 국내에도 에볼라 공포증이 번지고 있다. 사진은 영화 ‘감기’의 한 장면. ⓒ감기 공식 블로그

에볼라 바이러스는 지난 3월 기니에서 출현한 이후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나이지리아 등 서아프리카 4개국에서 감염자와 사망자가 계속 늘고 있다. 6일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에볼라 바이러스로 사망한 인원은 932명에 달한다. 지난 4일 기준 에볼라 감염으로 기니에서 363명, 라이베리아에서 282명, 시에라리온에서 286명, 나이지리아에서 1명이 사망했다. 아시아 지역인 홍콩에서도 의심환자가 발견돼 세계적인 확산이 우려되고 있다.

3일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마거릿 챈(Margaret Chan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1일(현지시간) 기니·라이베리아·시에라리온·코트디부아르 등 서아프리카 4개국 정상들이 모인 회의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통제하려는 노력에 비해 너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며 “에볼라를 막지 못하면 대재앙이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에볼라, 국내 전염 가능성 적다
그러나 정작 에볼라 바이러스가 국내에 전파될 확률은 거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감염된 사람과 동물의 피나 땀, 침과 같은 체액, 조직과 접촉을 통해서만 전염된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한때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과 비교된다. 사스는 호흡기를 통해 전염이 되는 반면 에볼라 바이러스는 호흡기가 아닌 코점막, 입안, 눈 등 피부점막을 통해 옮겨진다. 이 때문에 전염 가능성은 사스보다 매우 낮다.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오명돈 교수는 “의료진이나 가족들은 환자와 직접 접촉이 많아 감염을 막기 위해 위생 관리에 특히 조심해야 한다”면서 “하지만 환자 접촉이 없는 일반인이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의협 추무진 회장은 6일 에볼라 바이러스 관련 브리핑을 열고 “국민들이 국내 에볼라바이러스 유입에 대한 걱정을 크게 하지 않기 바란다”며 “질병관리본부를 주축으로 입국 이후 발병환자추적시스템과 의료기관과의 연계체계를 보완·구축해 의심환자를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대한감염학회 김우주 이사장은 “국내 유입가능성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지만 감염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유행지역 방문자·체류자를 추적관리하는 등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보건당국과 의료기관에 에볼라출혈열감염 관련 홍보를 통해 조기발견과 감염자의심신고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의협 국민건강보호위원회 김형규 위원장은 “위험지역을 여행하지 않은 사람은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며 “당분간 유행지역과 국가를 당분간 방문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또 “검역체계 강화를 통해 유행국가로부터 입국자 중 감염자를 조기발견하고 격리·치료하는 등 국내 2차감염 발생차단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경욱 한림대춘천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7일 <강원일보> 칼럼을 통해 “에볼라가 공포스럽기는 하지만 설사 감염자가 국내에서 발생한다고 해도 아프리카에서처럼 지속적으로 발발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며 “선진국에서는 감염자를 신속하게 파악해 의료기관에서 격리 수용할 수 있기 때문에 에볼라가 확산되지는 않을 것이다. 외신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미국인 환자 2명이 원숭이에서 효능을 본 에볼라 치료 실험약물을 투여받은 후 호전을 보이고 있다고 해서 희망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감염 확률은 크지 않지만
그러나 에볼라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 공포는 한국에도 여지없이 나타났다. 4일 진행한 덕성여대와 유엔 여성기구(UN Women)가 공동 개최한 ‘제2차 차세대 여성 글로벌 파트너십 세계대회’에 아프리카 11개국 30명을 포함한 전 세계 32개국 대학생 500여명이 초청된 것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에볼라 공포증’에 불이 붙었다.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발병했다는 점에서 바이러스 국내 감염을 우려한 목소리가 나온 것. 덕성여대의 국제행사를 취소해 달라는 청원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한 누리꾼은 2일 다음 아고라에 “덕성여대에서 아프리카인들을 초청한답니다. 막아야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을 제기했다. “에볼라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비상이다. 국민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취소해 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청원은 하루만에 서명 목표인 1만 명을 훌쩍 넘기기도 했다.

덕성여대 측은 에볼라 발병과 연관지어 이번 행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자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홍승용 총장은 5일 기자간담회에서 “참가자 중 에볼라가 발병한 나라에서 온 사람은 없다”며 “1년 이상 행사를 준비했는데 확인되지 않은 에볼라에 대한 우려 때문에 취지가 퇴색돼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학교 관계자는 “에볼라가 발병하지 않은 나라의 국민을 세계 어느 나라도 입국 금지할 수는 없다”며 “중국 쓰촨(四川)성에서 사스(SARS)가 발병했다고 미국에서 대한민국 국민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날 행사에는 예상인원 300여명보다 적은 200여명이 참석했다. 당초 학교 측은 국내외 학생 140여명, 본교 자원봉사자 80명, 참관객 100여명이 올 것으로 내다봤지만, 항공사정과 초청 철회 등으로 불참한 해외대학 참가자 8명 외에도 자원봉사자와 참관객 등 100여명이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학교 관계자는 “아무래도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일부는 불참한 것으로 보인다”며 “행사 개최로 웃고 있어야 할 아프리카 학생들이 국내에서 벌어진 논쟁 때문에 표정이 좋지 않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개최가 예정 중인 국제 행사들이 참석자 수를 대폭 조정하거나 이미 취소되기도 하는 등 잔뜩 움츠러드는 모양새다.

13일부터 코엑스에서 개최 예정인 세계수학자대회(ICM)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 대회에는 기니 출신 1명을 포함해 아프리카인 수십명이 참가할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세계수학자대회 조직위원회는 국제수학연맹과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아프리카 기니 출신 수학자의 대회 참가 등록을 취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형주 조직위원장은 “에볼라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큰 만큼 대회 불참 권고 대신 등록 취소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6일 국회 아프리카 포럼에 따르면 전날 가봉 등 아프리카 국가에서 세계 합창대회 참석차 방한한 어린이 30명의 국회 견학이 갑자기 국회사무처의 요청으로 취소됐다. 에볼라 바이러스 발병 국가에서 온 어린이는 없었지만 국회 측은 만일의 가능성을 우려해 관람에 난색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분위기는 여행업계는 물론 봉사단체, 기업체로까지 퍼지고 있다. 아프리카 4개국을 방문해 의료봉사를 펼칠 예정이던 선교단체 ‘굿뉴스의료봉사회’는 서아프리카 국가 일정을 전면 취소했다. 기업체들도 서아프리카 지역으로의 출장을 금지하는 한편 주재 직원들을 철수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에볼라 바이러스와 관련한 국민적 공포가 커지자, 정부는 ‘정확한 정보전달을 통한 불안 잠재우기’를 강조하고 있다. 사진은 인천국제공항 검역소. ⓒ뉴시스

정부, ‘공포감’ 없애기 나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6일 정부의 에볼라 바이러스 대응 상황을 점검하고,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지나친 걱정을 불러일으키지 말 것을 당부했다. 복지위 소속 여야 의원들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보건복지부 등으로부터 ‘에볼라출혈열 예방대책 관련 긴급 현안보고’를 받았다.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은 “지나치게 걱정을 주는 것과 정부 스스로의 선제적 대응은 별개다. 국민들에게 공포심을 주는 것이 대응은 아니다”라면서 “국민들은 안심 시키면서 정부는 정부대로 실질적으로 대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같은 당 김현숙 의원도 “철저히 대비해야 하지만 국민들이 이를 지나치게 걱정해서 국민들의 활동에 지장이 생기는 것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정림 의원 역시 “과도한 불안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 유입됐을 때 실제적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정부가 알려야 불안이 제거될 수 있다”면서 “유입 가능성이 적더라도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고 이 준비 상황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당부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은 “한국에 유입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판단하고 대비하는 게 맞다”면서도 “경각심은 갖되 너무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직접 접촉에 의해 전파되는 질병이기에 한국에선 대규모 발병은 일어나기 어렵다”고 밝혔다.

여야 의원들은 최근 에볼라 바이러스를 두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퍼지고 있는 각종 유언비어를 경계하며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줄 것을 촉구했다. 새누리당 김정록 의원은 “정확한 정보를 알려달라. 이른바 ‘에볼라 괴담’이 무차별적으로 유포되고 있다. 국민들은 불안하고 믿을 데는 정부밖에 없다”면서 “감염 현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전달돼야 한다. 유언비어로 국민들이 불안에 떨지 않도록 복지부의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현안보고에는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과 이명렬 외교부 재외동포영사국장 등이 참석했다.

언론 ‘정확한 보도’가 중요
이같은 상황에, 일각에서는 언론의 보도 행태도 국민의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요인 중 하나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여전히 이슈 마케팅에 집중하고, 검색어에 집중하는 언론들은 연일 자극적인 제목으로 국민을 공포에 빠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2013년 5월,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과장된 용어는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가중시키기 때문에 자극적인 용어는 좀 순화를 하고 정보를 정확하고 투명하게 공개하고 예방과 대처요령을 국민들에게 홍보하는 일에도 적극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던 ‘살인 진드기’의 예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인재근 국회의원은 6일 “에볼라 출혈열의 치사율이 25~90%라면 ‘최대 90% 치사율’이라고 표현해야 하는데 언론에 90%라고만 보도됐다. 정부가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도록 제대로 된 홍보를 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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