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뒤덮는 군 가혹행위, 이번엔 김관진 책임론?

▲ 육군 28사단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과 관련해 권오성 육군참모총장이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참모총장의 사의에 따라 군 수뇌부의 대대적 문책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뉴시스

육군 28사단 윤 일병 사망 사건과 관련해 여야 정치권이 한 목소리로 분노를 표출하며 현미경 시선으로 군의 폐쇄성에 대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관련자들에 대한 전원 문책은 물론,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군에 대한 고강도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사병제도의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며, 전면적 모병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군대 내 잔혹한 가혹행위 실태가 세상에 드러나면서 온 나라가 또 다시 들썩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정국 이슈 또한 세월호 참사에서 병영 실태로 슬며시 넘어가고 있는 분위기다. 윤 일병 사건마저 세월호 참사와 맞물려 여권에 거대 악재가 될 수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연결고리가 이어지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을 두고 정치권에서 가장 주목받은 인물은 단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다. 여당 대표지만, 군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표출하며 야당 이상으로 강도 높은 질타를 쏟아내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인상적으로 전달됐기 때문이다.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7.30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당 재건에 온통 정신이 쏠려 있는 사이, 국민적 분노가 들끓고 있는 이슈에 대해 김무성 대표가 선점한 셈이다.

만일 김 대표가 이 사건에 대해 이슈 선점을 하지 못하고 야당이 주도권을 쥐었더라면, 여권은 또 하나의 혹을 붙이게 될 수 있었던 상황이다. ‘군대’라는 국가의 울타리 안에서 벌어진 잔인한 살인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는, 세월호 참사의 정부 무능과 맞물려 민심의 폭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컸다.

만일, 김무성 대표가 전략적으로 목소리를 키우고 이슈를 선점한 것이라면 나름의 효과는 거둔 셈이다. 세월호 참사에 따른 분노와 엮이지 않게 분리한 것은 물론, 오히려 세월호 이슈를 가라앉히는 효과까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군 기강 문제는 국가안보와 직결된다는 차원에서 여당의 분노를 이해할 수도 있다.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고, 더 튼튼한 국가 안보를 구축하기 위한 분노일 수 있다. 그렇다면, 여당의 이 같은 분노는 단순히 관련자 및 군 수뇌부에 대한 문책론에서 그쳐서는 안 될 일이다. 여당의 분노가 진정성을 얻기 위해서는 군에 대해 고강도 개혁에 나서는 것은 물론이고, 세월호 이슈에 대해서도 한 치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

▲ 육군 28사단 소속 윤 모 일병이 병영생활 도중 선임변들에게 가혹한 구타를 당해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치를 떨며 군 당국에 강도 높은 질타를 쏟아냈다. ⓒ뉴시스

◆분노한 무대, 군개혁 이슈 선점
김무성 대표는 휴일이었던 지난 3일, 윤 일병 사건과 관련해 국회에서 긴급 최고위원 간담회를 열고 군 수뇌부를 상대로 강한 질타를 쏟아냈다. 특히, 김무성 대표는 최고위원회의 석상에서 탁자를 쾅쾅 내리치기까지 하며 분노를 금치 못하는 모습을 보여 삭막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 젊은 청년들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군에 갔다가 천인공노할 이런 일을 당했다”며 “지금까지 보도된 것과 우리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분명히 살인사건”이라고 분개했다.

그러면서 한민구 국방장관을 상대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 장관은 자식도 없냐”고 손으로 회의 탁자를 내리치며 “왜 은폐하려고 하나. 4월 7일 발생한 살인사건인데 왜 쉬쉬하고 덮으려 하는가. 이런 엄청난 살인사건에 문책이 이렇게 밖에 안 되는지 치가 떨려 말이 제대로 안 나온다”고 강도 높게 질타했다.

김 대표의 분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튿날인 4일 오전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도 또 다시 “이런 사건은 인권말살과 조직적 은폐가 이뤄진 명백한 살인행위”라며 “윤 일병은 아무런 도움의 손길 없이 한 달 넘게 생지옥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죽어갔으며 국민의 공분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고 질타를 이어갔다.

김 대표는 “군 역시 지휘계통을 통해 제대로 보고가 되었는지 쉬쉬하고 덮으려고 한 것은 아닌지 철저한 진상조사와 함께 책임질 사람들은 모두 일벌백계로 다스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국정운영의 큰 틀을 생각하더라도 군대폭력은 반드시 근절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권오성 육군참모총장이 5일 오후 사의를 표명했지만, 김무성 대표는 “최고 책임자가 물러난다고 덮어질 사안이 아니다”며 끈질기게 군의 근본적 개혁 필요성을 역설하고 나섰다. 김 대표는 6일 오전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이번 사건의 전모를 샅샅이 조사해서 인면수심의 가해자와 방조자에 대해 철저한 문책이 있어야 한다”며 이 같이 밝혔다.

김 대표는 그러면서 “폭력의 대물림을 확실히 끊겠다는 자세로 실효성 있는 사후 대책이 시행되는 것까지 국방장관이 확살하게 책임져야 한다”며 “그래야 군에 자식을 보낸 부모들을 안심시키고 가족 같은 병영문화 개선에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달라진 靑태도, 군 수뇌부 초긴장
윤 일병 사건에 대한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여당 지도부의 단호한 태도에 청와대도 태도를 바꿨다. 당초, 청와대는 윤 일병 사망 사건을 계기로 권오성 육군참모총장 등 군 수뇌부에 대한 문책론이 거론되는데 대해 “진상조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었다.

이와 관련,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지난 4일 “윤 일병 사건과 관련해 육군 고위직 인사까지 문책을 하겠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는데, 진상조사가 우선돼야 한다”며 “재발하지 않도록, 부모들이 자식을 안심하고 군에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만들어지는데 방점이 찍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당 지도부가 이처럼 전면적으로 이 문제를 이슈화시키며 국민적 분노가 들끓게 되자, 청와대도 ‘진상조사 우선’이라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태도를 바꿨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강도 높은 책임론을 제기한 것. 이와 관련, 박 대통령은 5일 오전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있어서는 안 될 사고로 귀한 자녀를 잃으신 부모님과 유가족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마음이 참담하다”며 “모든 가해자와 방조자들을 철저하게 조사해 잘못 있는 사람들을 일벌백계로 책임을 물어 또다시 이런 사고가 일어날 여지를 완전히 뿌리 뽑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전날 민경욱 대변인의 입장과는 달리, 사실상 군 수뇌부에 대한 전면적 책임론을 제기한 것으로 풀이됐다. 박 대통령은 거듭 “지난 수십 년 동안 군에서 계속 이런 사고가 발생해 왔고, 그때마다 바로잡겠다고 했지만 또 반복되고 있다”며 “이래서야 어떤 부모가 안심하고 자녀를 군에 보낼 수 있고 우리 장병들의 사기는 또 어떻게 되겠느냐”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있어서는 안 될 이런 사고가 계속 반복되는 것 역시 과거부터 지속돼 온 뿌리 깊은 적폐”라며 “국가 혁신 차원에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병영문화의 근본적인 문제점과 관행을 철저히 조사해 병영시설을 수용공간에서 생활공간으로 바꾸고, 군에서 뿐 아니라 학교에서부터 인성교육과 인권교육을 강화하는 것을 포함해 근본적인 방지책을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리고 이날 오후 권오성 육군참모총장이 사의를 표명하고 나섰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단호한 메시지가 나온 지 8시간여 만에 곧바로 사의를 표명한 것이다. 특히, 앞서 지난 4일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현안질의에 출석했던 권오성 총장은 이날 오전 일부 언론에서 사의를 표명했다는 보도를 낸데 대해 ‘사의를 표명한 적 없다’는 입장을 밝히기까지 했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책임이 있다면 회피하지 않겠지만, 사의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이 있고, 불과 수 시간 만에 결단을 내린 것이다. 권 총장은 이날 한민구 국방장관을 만나 “금번 28사단 사건을 비롯해 육군에서 발생한 최근 일련의 상황으로 국민 여러분께 많은 심려를 끼친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사의를 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군 인권센터가 부대 내 상습 폭행 및 가혹행위 등으로 사망한 28사단 포병연대 의무대 윤 모 일병의 사망직전 사진을 공개했다. ⓒ뉴시스

◆여야 한목소리 군 질타
여야 의원들도 앞 다퉈 윤 일병 사건에 집중도를 높이고 있다. 5일 국회 국방위원회 여야 의원들은 사고가 난 육군 28사단을 현장 방문해 군 당국으로부터 당시 상황과 수사 내용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이 자리에서 국방위 위원장인 새누리당 황진하 의원은 “밖에 공중전화도 있고 옆에서 소리도 들리는데 조금만 신경 쓰면 모를 리 없었다”며 “완전히 사각지대였던 것 같다. 대대에서 떨어져서 관심도 없었고”라고 군 관계자들을 질타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도 “옆 생활관에서도 소리가 들리는데 구타가 일상화 돼서 신경을 안 쓴 것 아니냐”고 따졌고, 같은 당 윤후덕 의원도 “군에서 처음에는 회식이라고 허위 보도자료를 냈던 것 아니냐. 이미 후송할 때 뇌사상태 아니었나. 은폐 수사를 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강하게 의혹을 제기했다. 또, 진성준 의원은 “음식물을 억지로 먹이고 그런 것도 고문 행위인 것이다. 순찰, 관리 안한 직무유기도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병사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황진하 의원은 “어떻게 전우 간에 잔학하고 끔찍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적한테도 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것”이라며 “전우가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가서도 계속 연락을 취하면서 평생 친구가 되는 것인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황 의원은 덧붙여 “그런 사건이 발생하면 누구한테든지 신고, 고발해서 미연에 방지해야겠다. 시스템은 돼 있는데 제대로 활용이 안 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의원은 “이번 사건을 보면서 안타까운 게 가혹행위도 안타깝지만, 한 달 이상 구타를 당한 피해자 윤 일병은 신고할 생각을 못했던 것”이라며 “바로 옆 내무반에서 구타하는 소리를 들은 병사들도 그런 사실을 알려서 바로 잡을 생각을 안했다. 그 내무반에 있던 병사도 가혹행위 현장을 보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고 질타했다.

문 의원은 “가해 행위가 없어져야 하지만, 그런 일들을 함께 감시하면서 일어나지 않도록 견제하고 신고하고 이런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제가 군대 있을 때, 구타 방지를 위해 정기적으로 소원수리를 받고 그것만으로 부족하니까 수시 불시 점검을 했다. 하급 병사의 옷을 벗겨서 실제 상태를 확인하고 했는데, 요즘은 그런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철저한 관리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김무성 대표가 지적했듯 이번 윤 일병 사건은 육군참모총장 사퇴로 모든 것이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이 사건마저 여야 정쟁으로 변질돼서도 안 될 일이다. 그런데 야당에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책임론을 제기하기 시작해 불똥이 또 어떻게 번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6일, 새정치민주연합 박범계 대변인은 현안 브리핑을 통해 “이리 보나, 저리 보나 김관진 안보실장은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분노한 엄마들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길”이라며 “윤 일병이 사망한 다음날인 올해 4월 8일,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김관진 실장은 ‘육군 일병이 선임병 폭행에 의한 기도폐쇄로 사망했다’는 간단한 보고만 받았다고 했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그러면서 “이러한 사정이라면, 김관진 국방장관이 구체적인 폭행경위를 몰랐을 리 만무하다. 국민을 바보로 아느냐”며 “축소의혹이 불거지는 이유다. 만에 하나 몰랐다면 중대한 직무유이자, 일부러 눈감은 것”이라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박 대변인은 “김관진 실장이 당시 모두 알았다고 봄이 상식이라 할 것”이라며 “이리 보나, 저리 보나 대한민국의 안보실장을 수행할 자격이 없다. 즉시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분노한 엄마들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길”이라고 즉각적 사퇴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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