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작산에서 아짐들과 새참을 기다리며

 

어머니는 호미로 김을 매실 때면 아이고! 질긴 것 들, 어이구! 독한 것들하셨다. 살아 있는 풀을 뽑아내니 미안해서였을까. 아니면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농사일에 신세한탄 하시는 말씀이셨을까. 어쨌거나 어머니에게 농작물을 방해하는 풀들은 인생을 고달프게 만드는 반드시 없애야 할 존재였다.

우리 어머니에게 잡초는 가족들의 먹을거리를 위하여 반드시 뽑아내야 할 존재였지만, 잡초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살아남아 종족을 번식해야 했기 때문에 항상 팽팽한 접전이었다. 씨 뿌리지 않아도 잡초가 한번 난 자리는 왕성한 생명력으로 다시 돋아나는 게 너무나 신기했다.

 

바랭이 같은 종류의 풀들은 줄기가 땅위를 기어가면 마디에서 새 뿌리를 내는데, 한 쪽 줄기가 끊어져도 죽지 않고 마디에서 잎과 줄기를 내어 완전한 식물로 자랐기 때문에 어머니가 가장 미워하는 풀이었다.

어린 내가 풀이름이나 꽃 이름을 물으면 그저 지심이라고 대답하셨다. 지심은 잡초의 전라도 사투리이다. 어머니는 지심을 두 종류로 분류하셨는데, ‘먹을 수 있는 것먹을 수 없는 것이었다. 먹을 수 있는 것은 별도로 바구니에 담아 집에 가져가 나물이 되거나 국거리가 되었다.

 

나는 민들레는 어머니가 일부러 키우는 게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었다. 노란 민들레는 뽑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씨를 맺을 때까지 봐주는 법은 없었다. 그런데 도 민들레는 해마다 꽃을 피웠다. 어떻게 민들레가 다시 돋아났는지 궁금해 하는 내게 어머니는 민들레는 꽃씨 아니어도 작은 뿌리 조각만으로도 번식한다고 가르쳐 주셨다. 풀꽃들은 대부분 꽃이 작은 대신 많은 꽃을 피우고 여러 번 꽃을 피워서 많은 씨를 퍼뜨리는데, 워낙 씨가 작고 가벼워서 우리 밭에 그 씨가 없어도 다른 곳에서 바람에 날려 온다는 것이다.

 

지금도 생생하게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있다. “지심 같이만 독하게 살아내믄 뭐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잡초근성을 가지라는 말씀이셨다.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 보니 어머니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모두 산 교훈이었다. 투박하고 정리되지 않은 촌부의 인생철학이었지만, 내 인생에 그 무엇보다 훌륭한 가르침이었음을 살면서 두고두고 깨닫게 되었다.

 

봄을 제일 먼저 알리는 야생화들은 농부에게는 잡초에 불과하다. 생존과 종족번식을 위해 작은 풀꽃들이 오히려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전령사 역할을 한다. 봄나물의 상징인 냉이나 민들레는 이미 겨울이 되기 전에 전에 미리 싹을 틔워 땅바닥에 납작하게 붙이고서 겨울을 난 뒤, 땅기운이 덥혀지기 무섭게 먼저 돋아나 다른 풀꽃들과 경쟁하는 것이다. 잡초는 상황이 나쁠수록 더 질기고 단단해 진다. 한 톨의 흙이라도 움켜쥐려고 줄기에 까지 뿌리를 내린다.

 

콩이 밭에 심어지면 많은 콩이 열리는 콩 나무가 되지만 적당한 습도와 온도를 맞춰주는 시루에 안쳐지면 콩나물이 된다. 자식도 너무 안온하게 키우면 자생력이 없다. 귀한 자식일수록 때로는 강인하게 키워야 한다. 환경이 안온하기만한 상태에서는 강인한 생명력을 키울 수 없다. 때로는 잡초처럼 밟혀도 일어설 수 있는 야생성을 길러 주어야 독립된 개체로 자립할 수 있다.

어쩌면 부모가 해줘야 할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행복하게 사는 법자립심을 길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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