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이철행 기자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지난 4월 20일경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나흘 후에 경기 안성에 위치한 구원파의 본산인 금수원을 빠져나오면서 본격적으로 도피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검찰의 발표에 따르면 금수원을 나서기 전에 이미 유 전 회장은 치밀한 계획을 세워 많은 자금을 지니고 다니면서 수사기관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이곳저곳의 신도 집에 은신하며 음식과 생활필수품을 지원받아 가면서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한동안 감시망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동안 주변인물들이 핵심측근으로 갖가지 죄목으로 구속을 당하면서 자신을 옥조여 오자, 위기감을 느낀 유 전 회장은 5월 4일 측근들과 함께 순천시 서면 학구리에 위치한 송치재휴게소 부근의 ‘숲속의 별장’에 몸을 숨겼다.

검찰은 유 전 회장이 금수원을 빠져나간 지 한 달이 지난 5월20일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였고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자 22일, 구원파 신도 추모(60)씨가 순천에서 유 전 회장을 돕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검거팀을 순천으로 급파했다. 유 전 회장의 은신처는 25일에야 확인했고 그날 밤 유 전 회장의 은신처를 덮쳤지만 검찰이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유 전 회장은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그렇다면 순천경찰에서 변사체 신고를 받고 출동하여 사체를 확인한 날이 지난 6월 12일이었고 불과 18~19일 만에 70~80% 백골화 된 상태의 시신으로 발견했다고 했는데, 날짜를 헤아려 보면 유 전 회장이 사망한 날짜는 5월 24일 전후가 된다. 검찰이 검거팀을 순천에 급파했던 날짜와 비슷하게 맞아 떨어지는데,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는 구석이 있다.

검찰 체포팀이 유병언 전 회장의 마지막 은신처였던 전남 순천의 별장을 급습한 건 지난 5월 25일 오후. 당시 검찰은 유 전 회장의 비서이자 미국 시민권자인 30대 신 모 여인이 영어로 승강이를 벌이는 30여 분 사이에 유 전 회장이 별장에서 도망쳤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 여인은 검찰 조사에서 “수사팀이 별장에 오기 전날 밤, 누군가 유 전 회장을 어디론가 데려갔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확인됐는데, 유 전 회장 혼자 별장을 빠져나와 도피생활을 이어가다 사망했다는 일부 가능성을 뒤집는 것이다.

비서조차 몰랐던 제3의 조력자를 유 전 회장이 따라나섰다가, 불과 19일 만에 변사체로 발견됐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미스터리는 시작된다. 검찰과 경찰의 문제점을 찾아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갖고 있는 5월초에 이미 살해당했다는 부분에 대해 가상적인 추리를 해 보았다.

첫째 문제는 변사체가 발견된 지점이 석연치 않다는 것으로 변사체가 70-80% 부패되었다고 했는데 사체 발견지점에서 동네 주택까지의 거리는 불과 50여 미터로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했을 것이고, 5월 하순이면 고추, 상추 등 밭작물을 심을 시기로 농민들이 부지런히 움직일 시기인데도 20일이 다 되어 가도록 시체가 썩는 냄새를 못 맡았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현지를 확인한 많은 사람들은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점에 대해 최초 발견자로서 묘 일을 많이 해본 경험이 많다는 박 모(78세) 노인은 발견시점 전에 몇 차례 비가와 빨리 부패 되었을 것이라 예상하면서 발견 당시에도 냄새는 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발견 당시 시체의 사진을 보면 장기가 썩어가면서 구더기가 하복부를 뒤덮고 있었다. 냄새가 나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으로, 그렇다면 몇 개월 전 죽은 사체가 아닌가 하는 의혹과 함께 지난 ‘2013년 가을께 부터 행려자 차림의 나이들은 키가 작은 노인이 순천 쪽에서 자주 학구 쪽으로 왔다 갔다 했는데, 2014년 언제 부터인가 보이지 않았다’고 삼거리 가게주인은 말하고 있다.

2014년 초부터 보이지 않았고 어디에선가 사망했다면 3월경까지는 날씨가 추워 쉽게 부패되지 않았을 것이고, 농사일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왕래가 적어 사체를 발견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며, 날씨가 따뜻해지는 4월경부터 부패되었을 것이다. 의혹이 쉽사리 사그러들지 않는 부분이다.

둘째는 변사체 신고를 하기 전 최초신고자와 타협을 함께 했던 삼거리 가게 주인부부는 ‘최초 발견 당시 경찰들과 같이 사체 옆의 가방을 확인했을 때 가방 속에는 분명히 소주병과 막걸리병, 그리고 산속에서 나는 땡감종류 몇 개와 크지도 않은 풋매실 몇 개, 그리고 양말과 속옷이 들어있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경찰은 행려자 것이라고 아무렇게나 경찰서에 보관되었던 가방 속에 물건들이 수첩과 스쿠알렌제품, 육포 등이 있었다고 하는데 누구 말이 맞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셋째 경찰은 변사체 신고를 받고 출동하여 현장을 보존해야 하는데 그것은 수사지휘를 받아야하기 때문인데, 수사지휘는 검사가 하게 되어있고 검사는 현장에 보고를 듣고 분명하게 변사체와 소지품 등을 확인하게 한 후 경찰에게 신분확인, 부검, 소지품검사 등의 수사지휘를 하게 되어있다. 과연 당시 담당검사는 현장에서 사체를 제대로 확인했는지, 소지품은 제대로 확인했는지, 점검을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은 것은 소지품이 들어있는 그 가방을 왜 그리도 오랫동안 방치했냐는 것이다.

경찰은 7월 22일 브리핑을 통해 지난 6월 12일 발견된 사체의 유류품으로 고가의 의류와 신발, 기타 유병언의 것으로 추정되는 물품이 다수 발견됐는데도 해당 유류품이 갖고 있는 수사정보를 무시했다고 했다. 특히 경찰은 해당 유류품을 현장에서 수거해 정밀 감식이나 추가적인 수사를 하지 않고 21일 국과수로부터 지문감식과 DNA 결과를 통보 받을 때까지 유류물을 단순하게 보관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넷째 검찰은 5월25일 전남 순천의 별장을 급습하여 일대를 수색했다고 하는데 지리나 위치정보 등이 탁월한 순천지역 경찰들의 지원을 받아 수색활동을 폈다면 검거도 사체 발견도 더 빨리 발견이 가능했을 텐데, 지역에 대해 지리나 정보도 전혀 모르는 수사관들만 동원해 수색활동을 폈냐는 것인데 이것 또한 석연치 않은 구석이다.

다섯째 국과수 발표가 사실이라면 이미 사망한 지 20여일이 지난 사체를 5월 24일경 옮기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으로, 유병언은 이미 순천에 도착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사망 또는 피살되지 않았을까? 하는 가상적인 추리가 생기는데, 국과수 서 원장은 먼저 가장 큰 궁금증인 ‘시신이 단기간에 백골 형태로 부패할 수 있는가’에 대해 해명을 했다.

사진에 있는 유씨의 시신은 해골이 거의 그대로 드러나 있었던 상태로 이미 간이나 심장이 손상되어 없어졌고, 시신의 얼굴 등이 훼손이 많이 되기는 했지만 다른 부분은 근육이 남아 있어 백골화 됐다고 말할 수 없다면서 부패가 시작되면 그 냄새를 좋아하는 동물들이 탐습하기 좋은 조건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사체 발굴장소의 환경 여건은 마을의 모든 개들은 묶여진 상태이고 산짐승이 출몰하는 지점은 아닌듯 보였으며 만약 짐승들에 의해 사체가 훼손 되었다면 반듯한 상태를 유지하기는 어렵고 사체가 많이 헝클어져 있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또 시신의 키가 기존에 알려진 유씨의 신장보다 커 보이고 윗옷이 말려 올라가 누군가 다른 곳에서 옮겨온 것으로 보인다는 등의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국과수에서 정밀 기계로 측정한 결과 유씨 시신의 키는 159.3㎝ 가량으로, 경찰이 파악한 키와 거의 같았다”고 해명하며 감정 결과 시신이 유씨가 확실하다고 단정했다.

대체적으로 시신이 유병언일 것이라 서서히 믿어가는 분위기지만 타살 일 것이고, 정부수립 이후 가장 큰 비리게이트 때문에 권력층에서 누군가를 시켜 죽였을 것 같다든가 아니면, 구원파 내부에서 반대파가 또는 돈이 탐나 공모하여 살해한 후 옮겼을 것이라는 풍문이 끊이지 않고 있어 이 여파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시간이 해결해 것 같다.

그 외에도 많은 국민들은 유병언 사체에 대해 국과수의 발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믿지 않는 것은 과거 독재권력 당시 국과수에서 발표했던 과거의 사건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간혹 새로운 진실들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며, 유병언 사건에 대한 국민적 의혹을 해소시키는 차원에서라도 미국이나 다른 제3국의 저명한 DNA검사기관과 합동으로 새로운 검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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