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재해사망·의료민영화 갈등 파국 치닫나

자동차업계發 통상임금 협상 전 부문에 파급되나

건설현장은 목숨 걸고 일하지만 주머니는 텅 비어

약 의존 어르신 약값 인상 가능성에 ‘불쌍한 말년’

임금인상 등을 내걸고 시작된 노동계의 춘투(春鬪)가 5~6월을 지나며 점점 확산돼 하투(夏鬪)에 이르렀다. 임금 단체협상이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기 시작하더니 결국 일부 사업장을 시작으로 파업에 돌입하고 있다.

올해 여름 노동계의 최대 이슈는 통상임금·산업현장 재해사망 줄이기·의료민영화 반대로 볼 수 있다.

이미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벌이며 기업을 압박하고 있지만 재계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기업도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며 노동계의 주장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가고 있다.

▲ 지난 22일 서울 중구 태평로1가 서울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7.22 동맹파업 결의대회’에서 건설산업연맹, 보건의료노조, 공공운수노조연맹, 금속노조 등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공공부문 민영화 반대 및 비정규직 확산 금지, 노조탄압 금지 등 반노동정책 폐기를 촉구했다. ⓒ뉴시스

올해 노동계가 하투에 가장 집중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통상임금이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결론이 난 이후 벌어지는 첫 교섭인 만큼 노동계는 확실한 우위를 선점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재계는 법원의 결론을 받아들인다는 입장이면서도 소급적용 시기를 어느 때부터로 할 것인가를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자동차업계, 통상임금 포문 열다

통상임금 논의가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곳은 자동차업계다. 자동차업계가 산업계 전반으로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통상임금 교섭이 어떻게 끝나느냐에 따라 유관 산업도 비슷한 전철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쌍용자동차 노사는 지난 24일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는 내용에 대해 합의했다. 소급 적용 시기는 올해 4월분부터다. 다만, 복리후생 비용 등 기타 수당은 법원 판결이 나온 뒤 결정하기로 합의했다.

잠정 합의안에는 기본급 3만 원 인상과 생산목표 달성 장려금 200만 원도 포함됐다.
쌍용자동차 노사가 자동차업계 처음으로 임단협 잠정 결론을 도출하자 나머지 기업들도 다급해졌다.

한국지엠은 노사가 협상을 벌였지만 결론에 도달하지 못해 노사가 파업에 돌입할 태세다.
24일 중앙노동위원회는 한국지엠 노조의 노동쟁의 행위 조정신청에 대해 ‘조정중지’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한국지엠 노조는 사측과의 협상이 결렬될 경우 합법적으로 파업 등 쟁의행위에 돌입할 수 있게 됐다. 창원지회, 군산지회, 정비지회, 사무지회는 대오를 갖추고 지도부가 결정을 내리면 즉각 파업에 돌입할 태세다.

한국지엠은 중노위가 조정중지 결정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노조와의 대화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한국지엠은 23일 열린 20차 교섭에서 기본급 4만2346원 인상, 올 연말 상여금 400만 원 지급, 임단협 타결 시 격려금 400만 원 즉시 지급 등의 협상안을 노조에 추가로 제시했다. 앞서 한국지엠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킬 것을 노조 측에 제안했다.

하지만 이런 제안에 한국지엠 노조는 사측이 미래발전방안을 제대로 내놓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사측이 제안한 통상임금 적용 시점도 8월 1일이 아닌 지난해 12월부터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지엠 노사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노조는 곧바로 파업에 돌입하기보다는 추가 교섭을 지켜본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대해 한국지엠 측은 24일 회사 미래발전방안의 일환으로 차세대 쉐보레 크루즈를 군산공장에 투입, 생산하는 방안을 노동조합에 전격 제시했다.

쌍용차가 통상임금 협의안에 대한 결론을 내렸고, 한국지엠 또한 시기 문제를 놓고 갈등을 겪을 뿐 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산업계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현대·기아차로 몰리고 있다.

국내 최대 자동차기업인 현대·기아차는 아직까지 별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은 상태다.
현대자동차 측은 “한국지엠과는 상황이 다르다”며 “한국지엠과 달리 현대차 임금규정은 고성성이 없기 때문에 소송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대차 규칙에는 월 15일 미만 일한 노동자에게는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고, 특근이나 잔업수당 또한 비정기적으로 지급되고 있기 때문에 고정적이지 않아 통상임금에 포함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노조는 사내규칙은 합의한 사항이 아니고 상여금은 일괄 계산되기 때문에 고정적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민주노총의 정치적 파업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통상임금과 관련해서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어 파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현대차 노조와 함께 울산지역의 대단위 사업장인 현대중공업 노조도 현대차와 보조를 맞출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현대차의 협상은 파급력이 급속도로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르노삼성 노조는 통상임금이 아닌 생산직 노동자의 승진과 외주 인력 채용 등과 같은 인사 문제를 놓고 사측과 갈등을 벌이다 파업에 돌입했다.

노조는 사측이 희망퇴직에 불응하는 노동자들을 강제로 전환배치 하는 등 부당한 대우를 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르노삼성 노조는 파업의 시간과 강도를 높이며 사측을 압박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 전국건설노동조합 지도부가 무기한 총파업상경투쟁 돌입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결의를 다지고 있다. 건설노조는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인명사고 예방을 위해 정부와 건설사에 대책 마련과 함께 건설업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하도급 및 일용직 노동자들이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전국건설노동조합

“건설노동자, 급여도 제대로 못 받고 사망사고 빈번”

자동차업계가 통상임금을 놓고 사측과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면 건설노동자들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사측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22일 건설노조는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건설노동자 총파업 투쟁승리 결의대회’에서 안전한 건설현장 환경과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안전한 건설현장, 생명과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위해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파업 돌입 이유를 밝히며 건설기능인법 제정, 산재처벌 및 안전대책 강화, 산업단지 노후설비 조기교체, 안전관리자 정규직화, 생활임금 쟁취 등을 요구했다.

건설노조는 건설 현장에서 안전을 도외시한 채 작업 속도만을 강조하다보니 인명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명사고는 건설 현장의 특성상 대형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사측이 이를 방관할 경우 목숨을 담보로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민주노총, 한국노총, 노동건강연대 등으로 구성된 ‘산재사망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캠페인단’은 지난해 산재사망자가 10명이 발생한 대우건설을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했다. 이 밖에 대림산업(9명), 천호건설·중흥건설·신한건설(7명), 롯데건설(6명) 등 건설사가 불명예 상위권을 차지했다. 현대건설·서희건설·포스코건설·SK건설·한신공영 현장에서도 5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건설공사 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는 배경에는 건설경기 침체로 인해 낮은 가격으로라도 공사를 수주하려는 건설사들의 몸부림 때문이 한몫을 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낮은 가격에 공사를 수주할 경우 자연스럽게 공기를 최대한 단축해 인건비를 줄이고 아울러 공사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한 여러 장치를 마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하도급 업체와의 관계도 왜곡시킨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형건설사들이 하도급업체에 설계변경, 공기단축을 위한 잔업 등을 지시하면서도 대금은 제대로 쳐주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 결국 하도급업체도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공사를 빨리 진행할 것을 강요할 뿐 안전은 눈감아 버릴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일부 하도급업체들은 공사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현장 노동자들과 협력업체에게 임금과 자재 대금을 주지 못하는 사례도 발생한다.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은 극심한 생활고를 겪게 된다.

열심히 일하고도 통장은 마이너스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건설노조는 ‘건설노동자 총파업 투쟁승리 결의대회’에서 고용노동부를 향해 이런 폐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 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조합원들이 23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앞에서 보건의료노동조합 제2차 총파업을 갖고 '의료민영화'를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의료민영화·쌀 수입개방, 국민 생존권은?

산업계와는 동떨어져 있지만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보건 부문도 이번 하투에 참여,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임금 인상, 처우 개선보다는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의료민영화 거부를 외치고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는 지난 21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은 “돈이 없어도, 가난해도 어떤 병을 앓아도 돈 걱정 없이 치료받고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병원비 걱정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총파업에 나섰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의 핵심은 바로 자법인(자회사) 설립에 있다고 지적하며 영리자본들이 자법인을 통해 병원의 수익을 송두리째 빨아들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병원 간 인수합병도 허용해 영리자본의 네트워크형 체인 병원도 허용돼 그동안 저렴한 병원비로 우리 동네의 건강을 지켜주던 중소형 병원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돈벌이를 앞세운 체인형 병원들이 들어서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럴 경우 제약회사, 병원, 도매상을 가진 법인약국들이 나타나 담합을 통해 과잉투약을 조장하게 될 것이며, 동네 빵집이 사라지듯 동네약국은 사라지고 대형 체인약국만이 살아남아 약값 폭등을 야기, 국민 건강은 더욱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료보건노조는 의료민영화에 반대하는 서명에 동참하는 국민들의 수가 23일 오후 9시 16분에 100만 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이어 24일 오전 9시 현재 105만4463명을 기록했다고 덧붙였다. 오프라인 서명까지 합치며 160만 명이 넘어섰다.

이는 당초 목표치의 160%를 달성한 것이라며 그만큼 의료민영화에 대한 국민적 반대가 높은 것을 의미한다고 역설했다.

10년 정도 혈압약을 복용하고 있는 권모(여·64) 씨는 “매일 같이 약을 먹고 있는데 그나마 지금은 약값이 싸서 다행이다. 하지만 조만간 병원비도 비싸지고 약값도 올라갈 수 있다고 하니 걱정이 가득하다”며 “돈 많은 사람들이 좋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겠다는 것을 반대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돈 없는 서민들도 치료를 받고 약을 사먹을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나이 드는 것도 서러운데 돈 때문에 병원과 약국을 제대로 다닐 수 없다고 하면 이것만큼 서러운 것이 어디 있겠느냐”고 의료민영화에 따른 부작용을 걱정했다.

이에 앞서 정부가 내년부터 쌀 시장을 개방하기로 결정하면서 농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조합원들은 서울 광화문에서 쌀 수입개방 반대 시위를 펼치며 “쌀 관세화 정부 발표는 한국농정의 참사”라고 정부를 강력히 규탄했다.

일부 농민들은 모내기를 끝낸 논을 갈아엎고 있다. 전농 소속 순천·영광 지역 조합원들은 최근 농기계를 이용, 논을 갈아엎었다. 이들은 “자식같이 키운 나락을 갈아엎는 것은 죽은 자식을 가슴에 묻는 아픔과 같다”며 “살 관세화 선언은 쌀을 포기한 것이고, 농민을 포기한 것”이라고 울분을 토하고 있다.

휴가철을 앞두고 있지만 전국 곳곳에서는 분야를 망론하고 무더운 날씨보다 더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시사포커스 / 전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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