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인권문제, 사회적 편견 부수어야 해결

쌀쌀한 공기가 입김을 만들어내고 아직 인적이 뜸한 공원에는 벤치마다 추운 공기에 저절로 오그라든 몸을 신문지로 감싸 안고는 잠을 청하는 노숙자들이 있다. 추위를 어떻게든 막아보려 불편한 자세로 몸을 웅크리고는 벤치에 기댔거나 박스지로 몸을 가려보지만 어차피 그리하더라도 등골까지 시려지는 낮은 온도를 막기에는 역부족처럼 보인다. 그 필사적인 몸부림이 애처롭다. 계속되는 경기침체의 굴 속에서 IMF이후 급증했다가 다시 소강상태를 보이더니 또다시 서서히 늘고 있는 노숙자들의 모습은 정부가 그렇게 큰소리로 떠들며 해결하겠다던 ‘양극화’ 문제의 현실을 보여준다. 집도 없고 돈도 없이 굶주린 배를 안고 발길 머무는 대로 추운 날씨에도 떠돌아야 하는 노숙자들, 더 이상 외면하고 묻어둘수는 없다. 이들에게도 인권과 보살핌 받을 권리와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마땅하지 않을까. ▶다층적 요소로 인한 개선 환경 열악 국가인권위가 사회적 빈곤층의 인권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조사서를 보면 노숙인이 겪는 가장 큰 문제로 잠자리와 식사해결의 문제, 무료 급식을 조건으로 종교의식을 강요하는 행위, 비위생적 관리를 통해 보급되는 질 낮은 음식물 섭취, 일반시민과의 관계 혹은 공권력으로부터 행해지는 인권침해, 노동환경으로부터의 배제 등으로 나타났다. 노숙인의 인권침해는 각 영역에서 다차원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동시에 구조적인 문제로 여러 상관 요소들이 연관되어 있었다. 이를 테면 거리생활에서 이어지는 불규칙적인 식사와 영양결핍, 수면부족은 건강권을 위협하고 이 문제는 적절한 주거환경이 없는 것에서 비롯한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 주거생활은 취업과 노동의 문제로 연결되고 취업의 문제는 교육과 연관돼 있다. 대부분 학력이 낮은 노숙인들의 취업이란 쉬운게 아니기 때문에 직장을 구할 수 없으니 이 문제는 다시 주거생활이 불가능한 현실로 귀결된다. 이렇게 연관된 다층적 요소로 인해 노숙인들의 빈곤한 생활은 쳇바퀴 돌 듯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노동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그나마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는 대책 중 하나인 것이다. ▶일자리 제공, 보호시설은 얼마나? 이명박 서울시장은 지난 1월 강북 뉴타운 건설현장에 노숙인들을 보내 일거리를 제공하고 그 댓가로 소정의 일당을 받는 계획을 발표하며 노숙인 일자리 갖기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노숙자들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출퇴근하게 해 자립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 그 취지로 600개의 일자리를 마련해 고용한 것이다. 기능이 부족해 처음부터 제대로 된 일을 맡은 것은 아니었지만 폐자재 처리 등 잔 일을 하면서도 노숙인들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참여했다. “몇 달간 벌어 장사 밑천을 만들어 보겠다,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희망과 활력이 넘치는 현장이었다. 일을 원했지만 할 수 없었던 그들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싶어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 현재 정부와 기업이 50%씩 부담하는 노숙자의 일자리 제공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 실정이다. 때문에 이번 서울시의 노숙인 일자리 프로젝트는 실험적으로 보아도 무난하다. 그리고 서울시에 이어 산림청은 3월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할 ‘올해 숲 가꾸기 사업’에 총 443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저소득층과 청년실업자를 대상으로 사업에 참여할 근로자를 모집할 계획을 밝혔다. 만18세 이상 60세 이하의 실업자 또는 정기적 소득이 없는 일용근로자, 행정기관이 인정하는 노숙자가 그 대상으로 이 사업을 통해 산림분야의 기능인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게 된다. 산림청 임상섭 숲 가꾸기 팀장은 “산림청의 숲 가꾸기 사업은 공익적 기능이 큰 산림을 경제적, 환경적으로 보다 가치 있게 가꾸어 국민들에게 아름다운 숲의 혜택을 제공하면서, 더불어 저소득층과 청년실업자들에게는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현안인 실업문제 해결에도 기여하는데 의미가 있다” 고 의미를 밝혔다. 그러나 일자리 제공에 어느 노숙인이든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업실패, 빛 등으로 순식간에 노숙자가 된 김 모씨는 노숙자에서도 등급이 있다며 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했다. 이유인 즉 주민등록증이 말소된 자는 일자리를 얻기가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다시 만들면 되기야 하지만 단돈 만원이 없어 밥도 못 얻어먹으며 헤메이는 그들에게 주민등록증 재발급 시 들어가는 과태료 ‘10만원’은 너무 큰돈이다. 김씨의 경우 골고루 골아갈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지지 않아 이중으로 소외받고 있는 것이다. 자활센터의 경우도 노숙인들이 장기적으로 거주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오히려 부작용이 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노숙인 지원체계가 응급구호에만 치중되어 ‘노숙→쉼터입소→쉼터퇴소 이후 일시주거→재노숙’으로 이어지는 노숙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몸과 마음은 더욱 황폐화되고, 노숙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깊은 늪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폭력과 부당함에 노출된 노숙인들 노숙인들의 일자리 참여 기회는 그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달라질 것을 요구한다. 실제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사회적 편견과 비하는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0월 노숙인 60명을 면접 조사해 만든 보고서에는 불특정 다수에 의한 폭력과 각종 사회적 차별에 시달린다는 노숙자들의 생생한 증언이 담겨 있다. 거리에서 지낸다는 C씨는 "노숙자라는 이유로 흉기로 찌르거나 뺨을 때리고 가는 행인이 많다"며 "지난해 지하철 회현역 근처에 있다가 취객이 이유없이 소주병으로 얼굴을 내리쳐 다친 적도 있다"고 밝혔다. 쉼터에서 생활하는 A씨는 "새벽에 지하도에 갔는데 어떤 노숙인이 머리에 피를 많이 흘리며 쓰러져 있어 근처 지구대에 신고했지만 담당이 아니라며 119에 신고하라고 해 어이가 없었다"며 "경찰은 노숙인이 행인에게 맞아 신고하면 진단서 끊어오란 말부터 한다"고 주장했다.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B씨는 "어쩌다 행인과 시비가 붙어 경찰서로 가면 가족을 총동원하는 상대에 비해 혼자 온갖 편견과 싸워가며 조사받는 노숙자가 백번 불리하다"고 노숙자에 대한 차별 실상을 전했다. 식사 제공을 미끼로 종교단체들이 노숙인에게 강제로 설교를 하거나 교회부흥회, 강제철거 현장에 동원하는 사례도 다수 발견됐다. 또한 노동권문제에 있어서도 인신구금 상태에서 강제 노동을 강요받은 사례와 임금체불과 착취 등 불법적 행위에 의한 노동권의 제약 뿐 아니라 노동기회에 있어서의 차별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노숙자 쉼터 ‘살림터’의 남철관 총무는 “우리나라는 노숙인을 거리 등 주거공간으로 적절치 않은 곳에서 자는 사람을 의미하지만 외국에서는 ‘주거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사람’으로 폭넓게 생각해 주거공간 마련을 도와준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소수자로서 노숙인들이 침해받는 인권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수준으로 일반인과 공권력의 무관심과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노숙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이 그들을 차별로 내몰아 결국 소외된 그들만의 세상에서 고독하게 살아가게 만들고 있다. 얼마 전 굶어죽은 50대 노숙자가 죽은지 3개월만에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우리의 무관심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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