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최연희 의원 '성추행 파문' 충격·경악

한나라당은 정신이 나가도 단단히 나가 버린 모양이다. 전여옥 의원은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을 '치매 든 노인'에 비유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이번엔 여기자 성추행까지 나올 정도라면 공당의 위기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나라당이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터진 대형 악재에 박근혜 대표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여론의 풍향계는 "탈당한 최 전 총장이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며 당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지만 뚜렷한 해법이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최 전 총장이 탈당함으로써 당이 할 수 있는 조치란 '진심어린 사과'밖에 없다. 사실 이번 사건은 당뿐만 아니라 박 대표에게도 위기가 될 수 있다. 선거 때마다 '박풍'을 몰고 와 당에 승리를 안겼지만 이번 5월 선거에서는 '성추행'이라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 악재 위기의식…조기수습 몸 달아 한나라당 최연희 전 사무총장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이 지방선거를 석 달여 남겨둔 정치권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고 있다. 한나라당은 조기 진화에 주력하고 있지만 특히 여성계의 비난 여론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최근 성폭력 사건이 사회적인 쟁점이 된 가운데 국회 법사위원장 출신이면서 지역 성폭력상담소 이사장인 최 전 총장이 폭탄주를 마시고 여기자를 성추행했다는 여러 가지 논란거리들이 서로 맞물리면서 상상 이상의 파급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이번 사건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칫 17대 총선직전에 불거진 노인비하 파문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전날 탈당한 최 전 사무총장을 국회 윤리특위에 제소한 한나라당은 28일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며 한껏 몸을 낮췄다. 이재오 원내대표도 이날 의원총회 후 기자회견을 갖고 "일련의 적절치 못한 언행에 대해 깊이 자성했다"며 "국민들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27일 박근혜 대표의 대국민 사과에 이은 릴레이 사과였다. 박 대표는 오전 한국여성단체연합, 여성민우회 등 여성단체 대표들로부터 항의방문을 받았다. 박 대표는 "당 대표로서 이런 불미스런 일이 일어난 데 사과한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특히 청와대 홈페이지에 자신을 성적으로 비하한 패러디 포스터가 게재됐던 사실을 언급하며 "저도 성적인 문제로 피해를 당한 사람"이라며 "한나라당은 이 일을 계기로 철저히 반성하고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정두언 의원은 "며칠 단식을 하든지, 해병대에 가서 진흙탕에 뒹굴든지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했다"며 "자성의 모습이 아니라 진짜로 자성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이런 '몸낮추기'는 최 전 총장의 탈당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조기 수습하지 못할 경우 이번 사건이 5·31 지방선거에서 치명적인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인 것 같다. 한 당직자는 "지난 총선때 열린우리당이 정동영 의장의 '노인 비하' 파문과 같은 정도의 타격을 한나라당이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오 "적절치 못한 행동, 언행에 깊이 사죄드린다" 최연희 전 사무총장의 성추행 사건과 전여옥 의원의 DJ발언 등 일련의 한나라당 의원들의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 이재오 원내대표가 공식 사과했다. 이 원내대표는 28일 당 의원총회 후 기자회견을 갖고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련의 의원들의 적절하지 못한 언행에 대해 깊이 자성했다"며 "언론인 여러분과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한나라당 의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이 원내대표는 "국회의원이라는 국민의 대표적인 신분을 망각하는 어떤 비도덕적 반인륜적 언행을 철저하게 앞으로 하지 않도록 저희들 스스로 자성했다"며 "일이 터지고 난 다음에 적절한 핑계를 둘러대 그것을 음주 탓, 분위기 탓이라거나 그런 자기 변명적인 글로 사태를 호도하거나 본질을 은폐하는 비도덕적인 언행을 하지 않을 것이며 지금까지 그런 일들이 일어난 것에 대해 깊이 자성한다"고 덧붙였다. 이 원내대표는 "최연희 총장 뿐 아니라 전여옥 의원의 발언 등 국민 여러분에게 지탄받았던 모든 일들에 대해 거듭 사죄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최연희 "무릎 꿇고 사죄…모든 책임지겠다" 이해봉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은 저녁 7시에 기자회견을 열고 "조금 전인 6시50분에 최연희 의원의 탈당계가 중앙당 조직국에 접수됐다"며 "탈당계가 접수된 뒤 최 의원과 통화를 했는데, 국민과 당, 관련된 모든 분께 죄송하고 무릎꿇고 사죄하겠다, 당에 누를 끼치지 않겠다, 관련된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3가지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이 위원장은 "통화중에 최 의원이 의원직 사퇴에 대한 말은 하지 않았으며, 현재 그의 소재지는 알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이 위원장은 "오후 2시부터 계속해서 윤리위 회의를 하던 중 최 의원의 탈당서가 접수돼 윤리위의 심사대상이 없어졌다"며 "때문에 윤리위에서 이 문제를 더 논의할 필요는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당에서 먼저 최 의원에게 탈당요구를 한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했으며, '문제의 술자리에 동석한 당직자들에 대해서도 윤리위에서 논의를 하느냐'는 질문에 "제소될 경우에 논의를 하는 것이지만, 가해자가 아닌 사람들에 대해 무슨 조사를 하겠느냐"며 부정적인 뜻을 내비쳤다. 이어 국회윤리특위 한나라당 간사인 주호영 의원은 "오늘 오후에 국회윤리특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 5명이 최 의원을 국회 윤리특위에 제소했다"고 밝혔다. 당 일각에서는 최 의원의 탈당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 당직자는 "사건의 파장이 크기 때문에 빠른 시간내에 의원직 사퇴카드가 나와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의화 "술도 약한 분이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여기자 성추행' 사건으로 정치권에 파문을 불러온 최연희 의원에 대해, 한나라당 정의화 의원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소회의 글을 올려 눈길을 끌고 있다. 정의화 의원은 28일 올린 글을 통해 "평소 존경하던 최 의원이 젊은 여기자를 성추행했다는 기사를 보는 순간,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면서 "동료의원으로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과 관련, 정 의원은 "하도믿기지 않아 그 자리에 계셨던 다른 분들께 물어보았으나, 증인이 없어 정확히 알 길이 없었다"면서도 "(최 의원에게) 순간적이라 하더라도 절대 해선 안 될 부적절한 행동이 있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최 의원이 당 사무총장은 물론, 5.31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심사위원장직을 맡았던 점을 적시, "그 분은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후보 문제와 당내 여러 일들로 엄청난 심적 스트레스를 받아 왔다"며 "(의사인 자신이 볼 때,) 술도 약한 분이 이순의 나이에 주량을 훨씬 넘게 과음함으로써 급성 알코올 중독 증세로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했다고 유추된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정 의원은 특히 "(최 의원은) 그동안 거의 모든 국회 남녀 의원들이 인정하는 훌륭한 분이셨고, 주어진 일에 늘 최선을 다하시는 분이셨다"며 "얼마 전 모친상도 당하고 따님 혼사도 치른 분으로, 보도만 보고 판단하듯 속 되게 보이는 그런 분은 절대 아니다"고 최 의원에 대한 네티즌 등의 비난 여론에 대해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최연희 전 사무총장은 누구?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은 평소 온화한 성품과 합리적 일 처리로 동료 의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왔지만, 이번 성추행 사건으로 최악의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다. 더욱이 최 의원은 가정법률상담소 동해지부 이사장을 맡고 있고, 부인이 부설 가정폭력, 성폭력 상담소 소장인 것으로 드러나 충격이 더하다. 그는 애연가였으나, 술은 잘 마시지 못하는 편인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사시(14회)에 합격, 20년간 검사생활과 청와대 사정, 민정 비서관을 거친 최 의원은 15대 총선에서 강원 동해시에서 당선된 뒤 내리 3선을 했다. 17대 국회 전반기에 국회 법사위원장을 맡으면서 주목을 받았고, 2004년 말 국가보안법 개폐 등 '4대 입법' 논란으로 여야가 대립할 당시 법사위원장으로 국보법의 상정을 저지해 당 지도부로부터 높은 점수를 얻었다. 지난해 11월 당직개편에서 사무총장에 전격 발탁된 것도 강원도 출신의 무계파 성향에다 국보법 상정을 막은 공이 참작됐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최 의원은 이후 '뉴 친박(親朴)그룹'의 핵심으로 떠올랐고, 최근 5,31 지방선거 중앙당공천심사위원장까지 겸임해 박 대표의 돈독한 신임을 입증했다. ◆그날 무슨 일이… '성추행' 사건 전말 24일 밤 회식서 여기자 가슴 만져 "음식점 주인인 줄 알고…" 해명에 네티즌 "기가 막혀" 한나라당 최연희 전 사무총장의 성추행 사건은 지난 24일 오후 8시부터 한나라당 당직자들과 동아일보 기자들이 서울 시내의 한 음식점에서 간담회를 겸해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한나라당에선 박근혜 대표와 최연희 사무총장 등 7명, 동아일보에선 편집국장, 정치부장과 한나라당 출입기자 등 7명이 참석했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오후 10시10분쯤부터 이 음식점 안에 마련된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박 대표와 동아일보 편집국장은 먼저 자리를 뜨고 없었다. 최 의원은 다른 사람이 노래를 하는 도중 갑자기 옆자리에 있던 동아일보 여기자를 뒤에서 껴안고 두 손으로 가슴을 거칠게 만졌다고 한다. 여기자는 큰 소리로 항의한 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에서 나갔다. 놀란 기자들이 거세게 따지자, 최 의원은 "술에 취해 음식점 주인으로 착각해 실수를 저질렀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한나라당측에 당 차원의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했고, 한나라당은 26일 박 대표, 이재오 원내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책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사무총장 및 중앙당 공천심사위원장직 등 최 전 총장의 당직 사표가 수리됐다. 해당 여기자는 개인적으로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라고 동아일보는 전했다 최 전 총장은 26일 오후 긴급 소집된 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 "유구무언"이라며 모든 당직을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박 대표는 이를 즉각 수리했다. 한편 "여기자를 음식점 주인으로 착각해서 실수했다"는 최 전 총장의 황당한 해명이 또 다른 논란거리가 되면서 네티즌 등의 뭇매를 맞았다. "음식점 주인은 마구 만져도 되느냐", "힘없는 여성은 성 추행해도 된다는 썩어 빠진 권위의식", "최 전 총장에게 전자팔찌를 채워라"는 등 비난이 쏟아졌다. 우리당 윤원호 여성위원장은 "언어를 이용한 또 하나의 성폭행"이라고 주장했고,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최 전 총장의 성 의식이 완전히 왜곡돼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27일 한나라당 홈페이지 접속이 종일 불안정했다. 주소창에 같은 주소 치기를 거듭한 끝에 확인할 수 있게 된 게시판에는 여기자 성추행으로 물의를 일으킨 최연희 의원을 '자르라'는 당원들의 요구로 가득했다. 이른 아침부터 욕설이 반이던 최 의원의 홈페이지는 아예 '사용할 수 없는' 페이지가 됐다. 네티즌들은 "음식점 여주인인 줄 알고 그랬다"는 최 의원의 변명에 실소를 금치 못하는 모습이다. 상대가 '기자'라 문제가 되고 '술집 주인'이면 별 문제 안 된다는 최 의원의 천박한 의식에 "국회의원 자질이 의심된다", "기가 막힌다" 등 분노를 넘은 실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여성단체연합은 이번 사건을 "명백한 성범죄"로 규정했다. 여성연합은 성명을 통해 "한나라당이 당직사퇴로 이번 사건을 덮고 넘어가선 안 된다"며 "최 의원을 중징계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한나라 선거 앞두고 여성표 이탈 된서리 맞나? 여성계 반란, '노인폄하 발언' 파문 연상 한나라당 최연희 사무총장이 여기자 성추행 파문으로 총장직 사퇴는 물론 탈당까지 했지만 정치적 파문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최근 어린이 성폭행 사건으로 사회적 공분이 커지는데다, 지방선거를 불과 3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한나라당 의원들의 술자리 폭언이나 폭행, 막말 등이 잇따르고 있어 자칫 '주사(酒邪) 정당,막말 정당'이라는 비판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박근혜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대국민 사과를 했고, 이재오 원내대표도 "당은 절대 유야무야할 생각이 없다"고 단호한 입장을 강조했다. 한나라당 소속 여성 의원들과, 중도개혁 성향 의원들이 모인 '푸른정책 연구모임' 등은 박 대표에게 최 총장의 출당 등 중징계를 요구했다. 진수희 의원은 최 총장에게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이 한나라당에 주는 상처는 매우 깊다. 최 총장이 도덕성을 최우선으로 강조하며 5·31 지방선거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사람이란 점에서 특히 그렇다. 또 최근 어린이 성폭력 피살사건을 계기로 한나라당이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전자팔지' 도입과 '화학적 거세' 방안까지 요구하는 와중에 터진 일이어서 난처함을 더하고 있다. 진수희 의원은 "전자팔찌가 이런 식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 몰랐다"고 한탄했다. 잇단 악재에 당은 망연자실한 분위기다. 2004년 김태환 의원의 골프장 경비원 폭행사건, 지난해 곽성문 의원의 맥주병 투척사건, 주성영 의원의 술자리 폭언 논란 등 '술'과 관련된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엔 전여옥 전 대변인의 '김대중 전 대통령 치매' 발언 논란까지 포함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술이나 폭언과 관련된 악재가 잇따르고 있다. 박 대표도 이를 의식한 듯 이날 "요즘 한나라당에서 국민의 지탄을 받을 일들이 여러번 일어나고 있다"고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집중 공세에 나섰다. 우리당 여성 의원들은 "한나라당이야말로 직접 전자팔찌를 착용해야 할 정당"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노동당은 "음식점 주인인 줄 알고 실수했다는 해명은 우리를 더욱 분노케 한다"며 "음식점 주인이면 성폭력을 해도 괜찮다는 얘기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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