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여유있는 대기업의 장애인 고용의무 안지켜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한국장애인 고용안정협회(www.kesad.or.kr)는 오늘도 아침부터 취업상담을 받느라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몸은 불편하지만 일하고 싶은 열망에 전화기를 붙들고는 자신이 일할 곳을 찾는 장애우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각자의 몸 상태와 현재의 상황을 일일이 말해주면 협회 직원들은 그에 맞춰 알맞은 곳으로 직업을 찾아 보내준다. 하지만 사정의 여의치만은 않다. 일자리를 찾는 장애우들은 많지만 장애인 고용을 하는 회사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두해 전 장애인 의무 고용율이 처음으로 2%를 넘었다고 정부는 장애인 노동권보호에 무리가 없는 것으로 발표했다. 관계자들은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믿기에는 무리다고 말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통계에 불과한 것이라 정부부문 의무 고용율 달성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우선 87개 기관 중 행정기관(51개)은 1.96%, 헌법기관(4개)은 1.18%로 2%에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적용제외 직종이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부문 2%달성은 ‘허수’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현재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 재활법 시행령(제21, 23~24조)에는 정부, 민간부문 모두 적용제외 규정을 두고 있는데 정부부문은 법관, 검사, 경찰 등 장애인 공무원의무고용 적용제외 규정을 일일이 명시해 놓고 있다. 정부부문 직종의 68%가 적용제외 직종이고 이 가운데 특무직, 정무직은 100% 제외이다. 민간부문 역시 어업, 광산업 등을 규제하고 있지만 업종별 제외율은 22% 이내여서 오히려 정부가 민간보다 장애인 고용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들어도 할말이 없을 상황이다. ▶대기업 의무고용 미이행 심각 상시고용 300인 이상 의무고용대상인 민간부문은 이보다 심각하다. 의무고용율이 2%을 근처에도 못가기 때문이다. 민간부문은 2001년 처음으로 1%를 웃돌다가 지금은 점차 감소하는 추세이다. 전체의무고용대상 민간부문 2,141개 사업장 가운데 13.5%를 차지하는 289곳이 고용율 0%이다. 이에 모범을 보여야 할 대기업도 의무고용 미이행에 한 몫 하고 있다. 30대 대기업의 장애인 고용율은 3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2%에 미달했다. 자금이 충분한 대기업이 왜 의무고용을 지키지 않는 것일까? 장애인을 고용하는 것 보다 부담금을 내는 것이 훨씬 더 이익이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민간부문의 경우 의무고용을 지키지 못하였을 때 해당기업에 부담금을 지급하게 끔 하고 있다. ▶정부보조 '턱없이' 부족 ‘드르륵 드르륵’ 쉴새없이 돌아가는 미싱기 소리에 지친 듯 보이는 노동자들이 좁은 공장 속에 기력없이 모여있다. 누군가는 단추를 다는 작업에 실수를 용납지 않으려는 듯 주의깊게 집중하고 다른 누군가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 가위질을 하는데 여념이 없다. 재료를 챙겨 모아주고, 실밥을 뜯어주는 허드렛일은 일명 ‘시다’의 몫이다. 이 시다들은 7~8세 지능을 가진 정신지체자들로 다른 봉제 공장에 비해 그 손놀림이 조금은 느리고 더디다. 밀린 일감을 따라잡기 위해서 속도를 내보지만 별반 다를게 없다. 미싱사의 재촉에도 뭐가 그리 좋은지 얼굴에는 웃음이 만연하다. 아마 칭찬인지 타박인지 알아채지 못해서이리라. 이 장애우들을 보살피는 사회법인단체인 동천학원에는 전체 55명 가운데 39명의 장애인이 있다. 장애인의 비율이 높다보니 다른 사업체에 비해 능률에 대한 경쟁력이 뒤쳐져서 1~2년은 힘들었지만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그러나 성선경 원장의 고민은 끝이 없다. 정부의 고용 장려금이 2004년부터 절반으로 줄어 장애에 따른 생산량의 차이를 정부가 보조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 기업처럼 세금은 다 내는데 근로 시설은 은행 융자도 안돼요” 어음결제 관행이나 협력사의 부도로 돈을 떼이는 것은 다른 중소기업들도 겪는 일반적인 상황. 결국 운영자금은 성원장의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보조하고 있었다. ▶고용장려금의 어이없는 축소 정부는 지난해 늘려도 시원찮을 장애인 고용장려금을 대폭 축소시키면서 장애인들의 분노를 샀다. 정부는 부담금에 의존해왔던 장애인고용촉진 기금이 장려금증가 등으로 인해 지출이 수입을 앞섰다고 축소시키는 이유를 밝혔다. 그 때문에 장려금의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한국장애인 고용촉진공단에 따르면 기금재원은 대부분 사업주가 납부하는 고용부담금으로 충당되고 있으며 그밖에 정부출연금, 기부금, 운용수익금, 기타 차입금 등으로 구성돼 있고 장애인공단 사업경비, 고용 및 장려금 지원으로 쓴다고 한다. 그런데 2003년부터 부담금보다 장려금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금고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장애인고용촉진기금 구성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도외시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근본적으로 기금을 부담금에 의존해 운영해가는 것은 장애인 고용촉진을 위한 국가의 책임을 다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동안 기금구성에서 정부출연금의 지원은 미미하기 짝이 없었다. 정부는 91년 기금조성이 된 후에 95년부터 2002년까지 8년동안 달랑 10억원만 냈다가 2003년에 20억으로 늘렸다. 그러다 지난해 장려금 축소가 발표되고 장애인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부랴부랴 당초 편성된 30억에다 400억원의 추경예산을 편성하고 모자라는 예산을 메꾸었다. 임시방편 식 ‘땜방’으로 대처하는 정부의 태도에 장애인들은 한숨만 늘어간다. 장애우 권익 문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와 지자체는 아무런 책임도지지 않아왔다”며 “국가가 일반회계를 통해 근본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부도 이같은 관점에 동의 했다. 노동부 장애인고용과의 관계자는 “재특의 경우 재경부가 채권을 발행해 노동부가 빌려온 것으로 계속 빚이 쌓이게 돼 구조가 바람직하지 않다”며 “재특보다는 일반회계로 기금을 영구히 안정화시킬 수 있는 체계로 바꾸어야 한다”고 밝혔다. 재정안정이 이루어져야 장애인고용도 활발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기업이 장애인 고용을 늘릴 수 있도록 장애인고용정책의 방향을 정확히 제시해야 한다. 물론 대기업의 장애인 고용에 대한 자발적 의지가 가장 절실하다. 일할 의욕을 가진 장애인들이 노동을 통해서 자신의 주체성을 찾고 자기계발을 할 수 있도록 정부의 활발한 움직임을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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